[글로벌포커스] 반도체 보릿고개 5~6월 최고조.."車 생산 절반 준다"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열린 올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동차 업계의 감산 상황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연초 가시화된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며 대규모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팔리 CEO는 올해 생산 차질 대수가 당초 예상한 20만~40만대를 크게 넘은 110만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이 올 2분기에 가장 강하게 반영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2분기 생산 대수가 절반가량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제너럴모터스(GM)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GM은 반도체 부족으로 현재 최소 8만대 이상의 차량 생산이 멈춰 선 상태다. 자구책으로 쉐보레, 실버라도, GMC, 시에라 등 인기 모델에 생산을 집중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수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GM은 결국 긴급 처방으로 반도체가 필요한 옵션 사양을 뺀 차량을 출시하기로 했다. 메리 베라 GM CEO는 반도체 부족 사태가 복잡하고 유동적인 상황이라면서도 "최악의 영향이 이번 2분기에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옵션도 빼고 휴업하고… 車 업계 생존기= 포드와 GM의 경고대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 위기가 5~6월 정점 국면을 맞고 있다. 반도체 부족이 장기화되자 완성차 업체들은 고육지책으로 반도체가 필요한 고급 옵션 사양을 뺀 차량을 출시하고 있다. 닛산차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제외한 차량을 일부 내놨고, 스텔란티스 산하의 자동차 브랜드 램도 최근 생산한 1500대의 램 1500 픽업 트럭에서 사각지대를 없앤 지능형 백미러 기능을 제외했다. 르노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르카나에 적용되는 대형 디지털 화면 기능을 제외한 차량을 내놨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업체들은 휴업과 감산을 반복하고 있다. 포드는 최근 미시간 공장을 비롯해 일리노이, 미주리주 소재 공장 가동을 이달 2주간 중단하기로 했고, 독일 퀼른 공장의 근로자 1만5000명의 약 35%에 해당하는 근로자 5000명의 작업시간도 단축하기로 했다. 폭스바겐은 오는 17일까지 2주간 멕시코 공장을 셧다운하기로 했다. 4월 들어 셧다운 위기는 고급차 브랜드들로 번졌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생산하는 독일 다임러도 직원 1만8500명이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갔고, 재규어랜드로버는 영국 캐슬브롬위치와 헤일우드 공장의 생산 라인 가동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반도체 기근… 언제까지 갈까= 이번 위기는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기 소비 위축을 우려한 미 완성차 업체 대부분이 부품 재고를 낮게 유지한 가운데 IT 관련 반도체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IT 제품으로 생산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신차 수요는 빠르게 반등했다. 이 가운데 지난 3월 미 텍사스 이상한파로 오스틴 소재의 반도체 생산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지난달 19일에는 3대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일본 르네사스 화재까지 발생하며 공급망 위기는 더욱 심화돼 왔다. 연초만 해도 ‘곧 끝날 것’으로 전망됐던 피해 규모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은 1분기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은 130만대가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정상화 시점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업계는 하반기면 공급난 숨통이 다소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최근 CBS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6월이면 고객사의 주문량을 충족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폭스바겐의 브랜드 CEO 랄프 브란트슈타터는 최근 독일 통신사 dpa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수급 상황이) 여전히 타이트하지만 하반기가 되면 상황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아직 요원하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차량용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가전 등 전 분야로 확산되는 가운데 반도체 제조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시설(일명 팹)을 건설하려면 수십억 달러의 자본 투자와 2년 이상의 건설 기간이 필요한 데다 위기의 장기화로 리드타임(발주에서 납품까지 소요시간)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미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수급난이 심화되면서 리드타임이 기존 업계 평균 3개월에서 7개월로 증가했다.
미 자동차 전문 매체 TTAC는 "칩 제조업체의 공급 정상화가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내년 말까지도 상황이 안정화되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포브스도 "높은 수요와 공급 제한이 이어지는 상황이라 칩 부족 사태는 내년을 넘어 후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적기 생산 방식 한계… "공급망 모델 변해야"= 외신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문과 거의 동시에 부품을 공급 받아왔다. 생산성 제고를 위한 이 같은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적기 생산)’ 방식은 자동차 산업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물류 차질과 미 텍사스주 한파, 일본 르네사스 화재 등의 악재 등장으로 서플라이체인(부품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결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업계 안팎에서는 완성차 업체나 이들 협력사인 부품업체들이 과거보다 핵심 부품의 재고를 늘려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ST마이크로의 장 마크 쉐리 CEO는 "칩 제조사는 언제든 원할 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은행이 아니다"라면서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들이 칩 제조사가 공급 물량을 예측 가능하게 관리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재고 쌓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인피니언의 라인하드 플로스 CEO는 "완성차 업체들이 반도체 칩을 조달하기 위한 다른 공급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증가하는 고급 기술에 대한 수요와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자동차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에서 2030년 45%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베어드증권의 루크 정크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태는 자동차 공급망에서 반도체 가격, 구매량, 주요 부품의 재고 보유 비용 부담 등과 관련해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제조사 간 주도권 다툼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유리 "억울하다" 했지만…남편 안성현, '코인상장뒷돈' 실형 위기 - 아시아경제
- "결혼해도 물장사할거야?"…카페하는 여친에 비수꽂은 남친 어머니 - 아시아경제
- "37억 신혼집 해줬는데 불륜에 공금 유용"…트리플스타 전 부인 폭로 - 아시아경제
- "밤마다 희생자들 귀신 나타나"…교도관이 전한 '살인마' 유영철 근황 - 아시아경제
- '814억 사기' 한국 걸그룹 출신 태국 유튜버…도피 2년만에 덜미 - 아시아경제
- "일본인 패주고 싶다" 日 여배우, 자국서 십자포화 맞자 결국 - 아시아경제
- "전우들 시체 밑에서 살았다"…유일한 생존 北 병사 추정 영상 확산 - 아시아경제
- "머스크, 빈말 아니었네"…김예지, 국내 첫 테슬라 앰배서더 선정 - 아시아경제
- "고3 제자와 외도안했다"는 아내…꽁초까지 주워 DNA 검사한 남편 - 아시아경제
- "가자, 중국인!"…이강인에 인종차별 PSG팬 '영구 강퇴'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