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첩보 영화 아니라 실망? 그래서 볼 가치 있었다
[김형욱 기자]
▲ 영화 <더 스파이>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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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소련 모스크바, 평범한 미국인 관광객 둘은 어느 소련인한테 정체불명의 쪽지를 전해 받는다. 관광객은 CIA에 전해 달라는 그의 말에 쪽지를 미국 대사관에 전달한다. CIA는 쪽지의 주인인 GRU의 올레크 펜코프스키 대령을 철저히 조사한 후 폭로의 범위와 깊이가 남다르다는 점까지 감안해 그와 계속 연결하기로 한다. 펜코프스키는 소련에 의한 핵전쟁의 위험성을 폭로하며 소련의 핵무기 핵심 정보들을 빼돌리고자 했다. 전 세계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이 자유롭게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에서 제아무리 CIA라도 한계가 있는 법, 영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영국의 첩보기관 M16과 CIA는 아무 의심도 받지 않고 모스크바와 런던을 자연스레 오가며 펜코프스키와도 접촉할 인물로 평범한 무역업자 그레빌 윈을 지목한다. 그는 나라를 위해 또는 나라의 지시에 따라 '운반책' 역할을 맡지만, 오래 가지 않아 일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그만둔다고 말한다. 돌아온 답은, 핵전쟁 위기 상황에서 네가 발을 빼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네 가족은 반드시 죽을 거라는 협박이었다. 윈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을 계속해야 했다.
윈은 계속해서 모스크바와 런던을 오가며 펜코프스키와 사업적으로 만난다. 물론 실상은 펜코프스키의 수많은 1급 기밀을 M16을 거쳐 CIA로 전하는 운반책 역할이었지만 말이다. 소련은 미국의 턱 밑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하고, 미국은 강경하게 대응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을 태세였다. 와중에 펜코프스키와 윈의 합작에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의심을 더해 가는데... 윈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평범한 영웅 이야기
영화 <더 스파이>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시대의 한가운데인 1960년대 초 핵전쟁의 위기 속에서 세상을 구한 평범한 영웅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를 보기 전 '평범'에 초점을 맞춰야 할 텐데, 이 영화는 지난 수십 년간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수많은 첩보 영화 속 '날아다니는' 스파이들의 서스펜스와 액션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목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원제를 그대로 가지고 온 듯한 냄새를 풍기는 '더 스파이'라는 제목이 원제와 비슷한 듯 실상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원제는 'The Courier'로 '운반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또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를 생각하고 대하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윈이 명명백백한 스파이였다면,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와 메시지가 이상해져 버린다.
여하튼, 주인공 그레빌 윈은 엄연히 스파이가 아니라 운반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파이 작전의 일부인 운반책으로, 자세한 계획이나 목적은 알지 못한다. 윈이 평범한 사업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거니와, 그리하여 그에게서 아마추어로서의 어정쩡한 긴장감을 기대할지언정 적진 한복판을 뚫고 뛰어다니는 첩보원의 액션이나 아주 세밀하게 계획된 작전의 핵심 첩보원이 보여줄 만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우정'을 전하다
이 영화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다름 아닌 아마추어 운반책 윈에게서 나오는 건, 영화적으로 당연하지만 일면 숭고하기까지 하다. 나라를 위한다는 CIA와 M16 요원들의 생각과 행동과 말들은 허공을 가를 뿐이지만, 가족을 위하고 또 서로를 믿으려 하는 펜코프스키와 윈의 우정은 현실에 맞닿아 있다. 그들에게 이 스파이 작전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영화에서 펜코프스키와 윈의 투샷은 앞 모습, 옆 모습, 뒷 모습 할 것 없이 유난히 많이 잡힌다. 혼자 있는 모습이 힘 없고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생각이 통했던 것일까, 신념이 맞닿아 있던 것일까. 아무래도 후자보단 전자가, 즉 살아가는 데 통상적으로 하는 생각들이 통했기로서니 그들은 국경과 이념을 넘은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첩보 영화를 표방했지만, 타 첩보 영화들의 그것을 갖출 수 없었기에 선택한 게 바로 '우정'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첩보를 보여 줬다면, 영화의 후반부에선 우정을 보여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적으로 그레빌 윈으로 분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요리조리 이것저것 다 해내는 출중한 연기 덕분이었다. 능동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정적이지 않게 발현해냈으니 말이다.
아쉬움들을 뒤로 하고
아쉬운 부분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니, 자잘하게 많이 퍼져 있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애초에 '더 스파이'라는 제목으로 대중적인 첩보 영화인 듯 낚아 놓곤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점수를 깎아 먹었다. 포스터에서 유독 '스릴러'라는 걸 부각시켰는데, 이 역시 실상은 드라마에 차라리 가까웠기에 점수를 깎아 먹었다. 영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국내 수입 배급 전략의 문제라고 하겠다.
또한 '첩보'가 주가 되는 영화 초중반이 오히려 지루하다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후반부의 '우정'에 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윈과 펜코프스키의 우정 이야기가 절절하게 가슴을 후벼 팔 정도까지는 아니다.
윈과 펜코프스키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그 어떤 특별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면적인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두 주인공의 가족들을 주인공을 설명하며 돋보이게 하는 도구로 쓴 것 같아 안타까웠다. 다양한 아쉬움들을 뒤로 하고 볼 만한 영화일지? 볼 만한 구석들이 충분히 많다는 것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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