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굴레에서 벗어나자 생긴 꿈 같은 일

박미연 2021. 5. 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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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어바웃 리키>

[박미연 기자]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엄마로 살며 동시에 자기 꿈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진 걸까. 영화 <어바웃 리키>(2015년)는 세 자녀를 둔 엄마 리키가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다. 리키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다. 하나는 엄마로 사는 것, 또 하나는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그녀는 과연 이 두 가지 꿈을 다 이룰 수 있을까.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어머니가 되려는 여성은 자신을 파괴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남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62쪽


리키는 자신을 파괴하는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듯하다. 뮤지션이 되고 싶은 '자기'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녀와 남편을 위한 존재로만 살지 않았다.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했다. 과연 엄마로서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 <어바웃 리키> 스틸 이미지.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리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낮에는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밤에는 클럽에서 로큰롤 가수로 활동한다. 어느날 전 남편 피트에게 전화가 온다. 딸 줄리가 이혼하고 힘들어 하니 와달라고 한다. 리키는 인디애나폴리스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러나 줄리의 반응은 곱지 않다. 

전 남편 피트도 감정이 격해지자 리키를 비난한다. 그의 눈에 리키는 아이들에게 신경도 안 쓰는 엄마였다. 이혼 전에 리키는 캘리포니아와 인디애나폴리스를 오가며 뮤지션으로 활동했다. 이런 리키가 그의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리키는 남편이 애들에게서 자신을 밀어냈다고 항의하지만 그도 할 말이 있다.

"애들한테 좋은 엄마를 만들어주고 싶었어."
"난 꿈을 찾고 싶었어."
"난 '가족'이 당신 꿈인 줄 알았어."
"꿈이 두 개면 안돼?"
"꿈은 두 개일 수 없어."

피트에게 좋은 엄마란 꿈이 오직 가족인 사람이다. 피트의 기준에서 리키는 가족 외에 뮤지션이라는 꿈을 가졌기에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리키와 이혼하고 지금의 아내 모린과 재혼했다.

자녀들의 불행을 엄마 탓으로 돌리는 세상

현실의 세상도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엄마의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말한다. 둘째 아이가 7살 때, 놀이터 구름 사다리에서 뛰어내려 팔이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면했지만, 석고붕대를 4주간이나 해야 했다. 

주변에선 나를 비난했다. 애 엄마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가 팔이 부러졌고, 휴가도 같이 못가게 생겼다고. 이것이 우리집만의 이야기일까. 친구는 시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대학을 잘 못간 것이 다 엄마 탓이라는 소리를 들었단다. 

이런 사회 문화적 인식 아래 엄마들 스스로도 애들이 잘못되었을 때 모든 것을 다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리키도 딸 줄리가 사위의 불륜에 충격을 받아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자기 탓인양 죄의식에 휩싸였다. 

사실 리키는 딸 줄리의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했었다. 아들 조쉬가 약혼한 사실도 몰랐다. 그들은 결혼식도 몰래 할 계획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엄마로서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다. 아들 아담은 입만 뻥끗하면 엄마를 공격하기 바쁘다. 그녀는 아담의 비난도 감내한다. '좋은' 엄마 노릇을 못한 자기를 탓할 뿐이다.

리키는 몸은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한 순간도 아이들을 떠난 적이 없었다. 록밴드의 기타리스트 그렉의 구애도 모르척 했던 이유다. 지금껏 남모르게 '좋은' 엄마 콤플렉스로 전전긍긍했던 세월이다. 

그들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될 즈음, 모린(피트의 현재 배우자)이 친정 아버지 간병으로부터 돌아온다. 모린과 전남편 피트, 딸 줄리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본 리키는 소외감을 느낀다. 그들 사이에 리키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어바웃 리키> 관련 이미지.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리키는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그렉에게 절망을 토해낸다. 

"당신은 왜 날 좋아해? 왜...이해가 안돼. 난 늙고 돈도 없고 요리도 못 하고 살도 쪄가. 나 같은 게 왜 좋아? 난 다 망치는 여자야, 자식까지!"

'좋은' 엄마의 굴레에서 벗어나, 엄마 뮤지션의 꿈을 지킨 리키

리키는 아들 조쉬의 결혼식 초대장을 받지만,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클럽 바텐더에게 말한다.

"내가 가면 끔찍한 일이 벌어져. 넌 그들을 몰라. 그들은 날 멸시해. 그 사람들 내가 어떻게 사는 지도 전혀 몰라."
"그래도 아들에겐 때로 엄마가 필요하죠."

그렉은 리치를 위해 생명처럼 아끼는 기타를 팔아 결혼식에 갈 비용을 마련한다. 리치는 결혼식날 조차도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마침내 그렉의 도움에 힘입어 결혼 선물을 멋진 공연으로 대신한다. 

"전 생각했죠, 제가 가진 유일한 걸 애들한테 줘야겠다고... 전 살림도, 요리 솜씨도 별로였어요. 그치? 하지만 전 뮤지션이에요. 그게 바로 저고 제가 줄 수 있는 전부죠. 그래서 그 전부를 주고자 합니다."
 
 영화 <어바웃 리키> 스틸 이미지.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리키는 평범한 엄마가 아니어서, 아이들의 10대와 20대를 지켜주지 못해서, 살림과 요리를 못해서, 평생을 아파하며 살아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잊혀지고 아이들에게 비난받아도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동안 '좋은' 엄마의 굴레는 그녀를 이렇게 죄인으로 만들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것을 시인하며 비로소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가족과 친척과 하객 앞에서 자신을 뮤지션으로 선언한다. 로큰롤 음악이 자신의 전부이고 그 전부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고. 

따단딴따♬♩♪~! 리키의 연주를 따라 신랑 신부를 시작으로 다 함께 한 덩어리가 되어 춤추고 노래한다. 리키 자신과도 자녀들과도 전남편 부부와도 모두가 화해하는 멋진 모습이다. 리키의 마음에 몰입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벅찬 감격을 맛볼 수 있겠다. 

전통적인 엄마의 굴레를 끊고, 뮤지션으로 우뚝 선 리키! 앞으로는 엄마로서도 뮤지션으로서도 당당해질 수 있으리라. 두 가지 꿈을 다 이룬 리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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