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이야기하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하인드
[이영광 기자]
지난 4월 28일 개봉한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개봉 첫주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2주차에 들어서며 2위로 내려 앉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고 있다.
배우 강하늘씨와 천우희씨가 주연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비와 당신의 이야기>은 삼수생인 영호(강하늘 분)가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손수건을 건네준 소연(이설 분)을 잊지 못해 편지를 보내며 시작된다. 수소문 끝에 소연의 주소를 알게 된 영호는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는 아픈 언니(소연)을 대신해 소희(천우희 분)가 받게 된다.
2003년과 2011년을 오가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은 손편지라는 도구를 이용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또한 영화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첫사랑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여백을 두어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조진모 감독을 지난 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조진모 감독 |
ⓒ 조진모 제공 |
-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일주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잖아요. 기분이 어떠세요?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한테 기적 같은 일이라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감독님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기다림을 주제로 하신 이유는 뭔가요.
"기다림이라고 하면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모두 뭔가를 기다리면서 사는 것 같거든요. 그 기다림의 과정 안에서 기다림 자체가 역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게 뭘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기다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기다림이라는 걸 다르게 해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된 거 같습니다."
- 감독님은 기다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화에서 편지라는 소통의 도구가 나오죠. 전 기다림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 서로 나누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죠. 사람을 대할 때 말 한마디 한마디 자체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관객의 상상력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이 많은 거 같아요.
"저는 이 이야기를 관객분들이 보냈던 시간과 섞어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자체만으로도 이야기가 완벽해야 하지만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관객들이 지내왔던 시간 혹은 사람과의 관계, 내가 진짜 기다리고 있는 무엇들과 같이 공존하면서 보길 원했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할 그 쉼표같은 것들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영화가 멜로도 아니고 코믹도 아니고, 장르를 구분 짓기가 애매한 거 같아요.
"맞습니다.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게 정확합니다. 멜로영화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멜로에만 속한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남녀가 서로 좋아하고 느끼는 것만이 아닐 수도 있죠.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멜로 향기가 좀 나는 드라마라고 정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강하늘씨와 천우희씨가 주연을 맡았잖아요. 섭외 뒷이야기가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강하늘씨와 천우희씨 그리고 강소라씨도 모두 이 영화를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해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은 함께 영화를 만든 팀의 도움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또 작가님의 힘이 가장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영호에게 소연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영호가 사실 손수건 받은 것 때문에 소연이를 찾는 건 아니거든요. 영호는 (운동회 때) 자기가 달리기에서 1등을 하고 싶었는데 자기 욕심에 꼬꾸라졌어요.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결승 지점에서 도장을 찍어주곤 했는데요. 그때 결승 지점까지 20m 정도 남지 않은 그 거리를 기다려 줬던 한 친구가 너무 고맙지 않았을까 라는 거죠.
작지만 진실된 마음들이 한 사람의 엄청난 것을 바꿀 수도 있는거죠. 그래서 영호는 자기가 결승점까지 들어오는데 기다려 준 소연이 너무 신기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기는 이 경기에서 꼴찌를 했고 또 심하게 넘어졌고 더러워진 상태고, 표면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내적으론 아팠을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그것도 적인 백군 팀의 여자애가 아무런 표정 없이 영호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장을 찍어 주고 웃어주고 수돗가까지 와서 손수건 건넸으니 정말 이 친구가 궁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첫사랑하고 좀 다르죠. 나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아이가 나한테 갑자기 다가왔을 때 그 감정이 첫사랑으로 갈 순 있지만, 영호는 사실 (소연을) 그날 처음 본 거거든요. 이 아이가 나를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해동들을 한 것 자체가 신기했던 거죠. '얜 대체 왜 그러지'죠. 영화 속 대사에서도 영호가 '난 청군인데'라고 얘기하거든요."
▲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한장면 |
ⓒ 조진모 제공 |
- 그럼 영호에게 수진은 어떤 의미인가요(수진(강소라 분)은 영호가 재수학원에서 만나게 된 친구다).
"극 중에선 수진이가 영호를 좋아하는 느낌으로 많이 다가오긴 하죠. 근데 한편으로는 영호가 어릴 때 소연이를 궁금해했던 것처럼 수진이도 영호가 참 궁금했던 친구예요. 표현 방식이 다른거죠. 수진이 성격 자체가 워낙 털털하고 솔직한 스타일이라 대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상에서 수진이라는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않거든요.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영호가 '나도 너 알아, 나처럼 흔한 이름'이라고 얘기하지 수진아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영호가 소연이에게 할 때는 '소연아 안녕' 이렇게 얘기하지만, 누군가가 수진이라는 이름을 불러 주지는 않거든요. 그만큼 외로운 존재기도 한 거죠. (수진은) 솔직하고 털털하고 아픔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아픈 친구거든요."
- 아픈 소연을 대신해 편지를 쓰는 소희(소연의 동생)는 영호에게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고 해요. '안 만난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일까요?
"사실 제 생각은 반대예요. 영화상에서 엄마와 소회가 나오는 차 신이 있는데요. 소희는 엄마에게 '엄마, 왜 내 생일은 12월 31일이야'라고 물어요. 엄마는 '그때 태어났으니까 그렇지'라고 하죠. 12월 31일이라는 시간은 그해가 마무리되는 날이라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잖아요. 근데 소희한테는 12월 31일이 자기 생일이기까지 한 거죠. '12월 31일 비가 오면 만나자'는 이유를 영화에서 생략한 건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12월 31일 가지고 있는 특별함도 있지만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라는 의미도 있어요.
소희는 12월 31일 생일날을 항상 언니와 보냈거든요. 너와 편지를 주고받는 2003년도 12월 31일 언니가 살아있을 수 있다면 그때는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거죠. 근데 언니는 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일찍 세상을 떠났죠. 아마 언니가 살아 있었다면 영호와 소희와 소연이가 다 같이 만나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었겠지요."
- 배우 천우희씨가 한 인터뷰를 보니, 손편지에 대해 "제가 직접 작성하고 싶어서 손글씨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제 연습 글씨를 보고 감독님이 전문가를 섭외하셨다"면서 아쉬워하던데.
"저는 처음부터 천우희씨한테 직접 쓰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편지나 혹은 언니랑 대화할 때 쓰는 글씨체는 천우희씨가 직접 쓴 글씨체가 맞고요. 거꾸로 쓰는 글씨체 같은 경우에는 천우희씨가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근데 이게 사실 단기간에 터득이 될만한 건 아니더라고요. 거꾸로 써도 줄이 없는 편지지에 반듯하게 쓰길 원했는데, 우희씨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단기간에 하려니 느낌이 안 살더라고요. 천우희씨가 했으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 만약 감독님이 영호라면 8년 기다릴 수 있으세요?
"저라면 막연한 기다림을 했을 것 같아요. 아까도 기자님이 그 질문을 하셨지만 12월 31일 눈이 올 가능성이 더 크지 비가 올 가능성은 희박하잖아요. 근데 12월 31일 비가 많이 온다면, 기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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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WBC 복지TV 전북방송에도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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