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남는 美 "관광 오라, 공짜 접종"..텍사스 경기 살아난다
태국 여행사 캘리포니아 백신관광 상품 출시
뉴욕시, 센트럴파크 등 명소에 무료 접종 차량
남는 백신으로 관광객 유치, 경제 활성화 노려
캐나다 퀘벡시티에 사는 31세 앤드류 다무르는 지난 4월 10일 미국 텍사스주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캐나다에서 웹사이트를 통해 얀센 백신 접종을 예약한 뒤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절차는 간단했다. 그는 "클릭 몇 번으로 미국 슈퍼마켓 내 약국에서 백신 접종을 예약할 수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 사는 37세 남성 데이비드는 여자친구와 댈러스에서 예약도 하지 않고 백신을 맞았다. 신청서 주소란에는 댈러스에서 묵고 있는 호텔을 썼다. 그는 "2차 접종을 하러 갔을 때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면서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남는 백신을 버리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캐나다로 귀국하면 2주간 격리해야 하지만 이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했다.
백신이 부족한 나라에서 미국으로 백신을 맞으러 오는 '백신 관광'이 본격화하고 있다. 뉴욕, 댈러스 등 미국 주요 도시는 아예 공개적으로 백신 접종 특전을 앞세워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남는 백신을 활용하기에 주민들의 반감이 없고, 지역 경제를 빨리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아직은 국경을 맞댄 캐나다와 멕시코인들이 '백신 관광객' 주류다. 자국이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각자도생을 택한 이들이다.
멕시코 언론인 에두아르도 후에르타(56)는 미국 원정 접종이 "부끄럽지 않다"면서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 절차가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멕시코 백신 접종률은 인구의 약 6%에 그친다. 미국은 1회 이상 접종한 인구가 46%에 이른다.
38세 멕시코 여성 패트리시아 리두르호는 백신을 맞고 연로한 어머니를 마음 편히 만나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그는 "돈이 있는데,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멕시코시티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항공 여행객은 2월 9만5000명에서 4월 2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백신 접종 관광객으로 추정된다. 국적 정보를 집계하지 않는 데다 접종자들이 대부분 주소란에 미국 내 숙소 주소를 적기 때문에 정확한 외국인 백신 관광객 규모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WSJ에 따르면 멕시코의 한 여행사는 "댈러스를 즐기세요. 코로나19 백신 포함"이라는 홍보 문구로 관광객을 모집하고 있다. 항공료와 호텔, 백신 접종을 포함한 패키지가 699달러(약 78만원)이다. 간편하게 백신 접종을 예약할 수 있는 여행지로 휴스턴과 라스베이거스, 로스앤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뉴욕, 시카고, 피닉스, 뉴올리언스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태국의 한 여행사는 캘리포니아주에서 1회 접종하는 얀센 백신을 맞은 뒤 LA와 샌프란시스코 등지를 10일간 여행하는 단체 상품을 내놨다. 항공료를 제외하고 2400달러(약 268만원)로 가격을 책정했는데, 예약 첫날 200명이 신청할 정도로 성황이었다고 한다.
뉴욕도 곧 백신 관광에 뛰어든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타임스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센트럴파크, 브루클린 브리지 등 관광 명소에 이동식 접종소인 '백신 밴'을 띄우겠다고 지난 6일 발표했다. 뉴욕을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누구나 원한다면 얀센 백신을 무료로 맞을 수 있다. 뉴욕주의 승인을 얻은 뒤 이르면 다음 주 초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앞서 알래스카주는 6월 1일부터 주 내 4개 공항으로 도착하는 모든 관광객에게 공항에서 백신을 접종해 주기로 했다. 2회 맞는 화이자, 모더나 백신과 1회 접종하는 얀센 백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연방 정부가 전액 지원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무료다. 백신 관광을 추진하는 주와 도시들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에게도 백신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신 접종 자격은 각 주가 정할 수 있다고 일임한 상태다.
각 주는 백신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굳이 외국인이라고 제한할 이유가 없고, 관광이 활성화되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백신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다. 실제 최근 백신 접종률이 오르고 수요가 줄면서 백신 공급 과잉 현상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연방 정부가 백신을 일괄 구매해 각 주에 배정하는데, 할당량을 모두 받을 수 없다며 거부하는 주가 부쩍 늘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쓰지 않은 백신이 쌓인 위스콘신주는 다음 주에 당초 할당량의 8%, 아이오와주는 29%만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외국인이 백신을 맞으러 오는 지역은 호텔과 식당, 쇼핑 등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텍사스주 맥앨런시는 지역 소매 판매의 3분의 1을 외국인 관광객이 일으키는데, 국경 봉쇄로 지난 1년간 얼어붙었던 경제가 최근 풀리고 있다. 한 상인은 WSJ에 "미국이 멕시코인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도와주고, 그들이 다시 우리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신 관광을 마냥 반길 일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몰려드는 관광객에 코로나19가 재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로버트 앰러 뉴욕의대 교수는 NBC 지역방송에서 "무증상 상태로 입국했지만, (관광객들이)그 나라에서 유행하는 변이 바이러스를 갖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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