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로스코 등 서양 현대미술 선물받은 '리움' 재개관 모색
지자체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
지방 미술관 5곳 기증작 특별전
"이참에 근대미술관 건립" 논의도
전국이 ‘이건희 컬렉션’으로 들썩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증한 3조원 규모 컬렉션을 수장·전시할 ‘국립이건희미술관’ 유치 경쟁에 나섰고 전문가들은 미술관 성격을 두고 갑론을박에 들어갔다. 컬렉션 일부를 기증받은 지역 5개 공립미술관도 홍보를 위한 전시 준비에 돌입했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알베르토 자코메티, 마크 로스코 등 서양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출연받은 삼성미술관 리움도 재개관을 모색하고 있다.
기증 물량은 국립중앙박물관에 2만1600여점, 국립현대미술관에 1400여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7일 “2019년부터 2년에 걸쳐 수장고를 복층화했기 때문에 수장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정이 다르다. 관계자는 “기증 작품이 입고되면서 수장고의 93%가 차는 등 포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어떤 형태든 미술관과 수장고를 새롭게 건립할 생각도 있다. 이건희미술관으로 명명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수도권이 주춤하는 사이 박형준 부산시장이 전격적으로 유치 의사를 밝히면서 이건희미술관 건립은 지방 분권 문제로 확전됐다. 경남 의령, 경기도 수원, 대구, 세종 등도 가세해 미술관 건립 논의는 설립장소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 됐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미술인 100여명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한국만 근대미술관이 없다. 이번 기회에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국립근대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근대미술작품 2000여점과 삼성가 기증 근대미술품 1000여점 등을 기반으로 설립하면 된다”며 “이번 기회에 근대미술이 현대미술관에 더부살이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술관 건립 후보지로는 서울시 소유로 전환된 종로구 송현동 문화공원 부지를 제시했다. 서울시가 땅을 제공하고 건축은 국비로 하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적지 않다. 한 공공미술관 관계자는 “왜 ‘근대’로 성격을 좁히는지 모르겠다”며 “작품이 흩어지는 것은 애초의 기증 취지를 살리는 데 좋지 않다. 이건희 컬렉션 전체를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성격을 넓혀야 국제적 관광상품이 되고 문화적 국격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마크 로스코의 ‘무제: 붉은 바탕 위의 검정과 주황색’(1962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여인 조각상, 윌럼 데 쿠닝의 ‘무제’(1975년)…. 이들 작품은 삼성가가 민간 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한 작품들이지만 지난달 28일 이뤄진 삼성가의 ‘세기의 국가 기증’ 발표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작품은 2차세계대전 이후의 서양 현대미술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삼성미술관 리움에 출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는 기증 당시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두아르 마네 등 19세기 말∼20세기 전반 서양 근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보냈다. 따라서 ‘서양현대미술=리움’ ‘서양근대미술=국립현대미술관’ 식으로 성격을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리움은 서양현대컬렉션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된다. 리움에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국보 제217호)와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국보 219호) 등 고미술의 명작들도 보강해 컬렉션의 품격을 높였다. 미술품의 경우 국가 기증뿐 아니라 민간 문화재단 출연 때도 상속세가 면제된다. 미술계 관계자는 “관장이 1∼3년마다 바뀌는 국립 기관보다 민간 리움미술관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라며 “국가 기증은 안타까운 차선”이라고 평가했다.
지역 연고가 있는 작가들 중심으로 각각 10∼30점의 작품을 기증받은 지역 5개 공공미술관은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한다. 강원도 양구 출신 박수근 작가의 작품을 받은 양구 박수근미술관이 가장 먼저 포문을 연다. 6일 오픈한 ‘한가한 봄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10월 17일까지)에서 대표작인 ‘아기 업은 소녀’ ‘한일(閑日·한가한 날) 등 기증작 18점을 만날 수 있다.
김환기 천경자 김은호 오지호 등 지역 출신을 중심으로 9명의 작가 작품 21점을 기증받은 전남도립미술관은 9월 1일부터 두 달간 ‘이건희 컬렉션’전을 갖는다. 기증작 가운데 천경자의 ‘만선’은 흙에 물감을 섞어 종이 위에 바른 실험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대구미술관은 ‘웰컴 홈’(가제)이라는 제목으로 12월부터 기증 특별전을 시작한다. 이인성 이쾌대 변종하 등 이번에 기증받은 8명의 작가 21점을 전시한다. 이인성이 당시 대구 남산병원장 딸이었던 멋쟁이 아내를 그린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조선대 교수를 지낸 한국적 인상주의 작가 오지호의 ‘추경’ 등 30점을 받은 광주시립미술관은 내년 개관 30주년에 맞춰 기증섹션 전에서 컬렉션을 선보인다. 이중섭 작품 12점을 받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은 9월 5일부터 ‘70년만의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연다. 피란 시절 제주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낸 이중섭은 1951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남겼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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