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흔네 살의 김두엽 화가입니다"

김남중 2021. 5. 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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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도 다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네요. 그 새록새록한 추억들을 밑천 삼아 오늘도 그림을 그리는 나는 아흔네 살의 김두엽 화가입니다."

김 할머니의 그림을 보며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미국의 국민화가가 된 모지스나 75세에 신진 작가로 선정된 후 80대에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영국의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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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에 그림 시작한 94세 할머니 화가 김두엽의 그림에세이집 출간
94세 화가 김두엽 할머니가 전남 광양의 자택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북로그컴퍼니 제공

“고생도 다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네요. 그 새록새록한 추억들을 밑천 삼아 오늘도 그림을 그리는 나는 아흔네 살의 김두엽 화가입니다.”

83세에 그림을 시작한 94세 화가 김두엽 할머니의 그림에세이집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가 출간됐다.

소박하지만 놀랍도록 따뜻한 그림 110여장과 그 그림들에 담긴 살아온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적은 아름다운 책이다. 노년에 기다리고 있는 어떤 놀라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두엽 할머니는 94세 현역 화가다. 현재 서울 서소문 일우스페이스에서는 김두엽과 그의 아들 이현영 화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그동안 십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드라마작가 노희경씨도 그중 한 명이다.

“젊지 않은 아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화가에 택배 기사, 그 아들을 기다리는 게 하루 일과인 팔십 넘은 노모가 심심해서 붓과 무딘 손끝으로 십여 년간 그렸다는 숱한 그림 그림 그림들. 글도 아닌 그림을 보고, 울었다. 슬퍼서 운 게 아니고, 예뻐서 아름다워 울었다.”

학교를 못 다녔고 그림을 배운 적도 없다는 김 할머니는 83세의 어느 날 종이에 사과 하나를 그렸고, 이를 본 화가이자 막내아들인 이현영씨의 칭찬에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김 할머니는 전남 광양의 집에서 택배 일 나간 막내아들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렸다. 집과 가족, 동네, 꽃, 나무, 개, 닭 등이 그의 그림 소재들이다.

“너는 공부한 그림이라 참 잘 그리는구나.”
“어머니 그림이 제 그림보다 나아요.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어머니처럼 예쁘게 못 그리네요.”

아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던 김 할머니는 89세인 2016년에 생애 첫 전시회를 하게 된다. 92세인 2019년에는 KBS ‘인간극장’의 ‘어머니의 그림’ 편 주인공이 되면서 전국적으로도 알려지게 된다. 지난 달엔 광양에 김 할머니의 갤러리가 생겼다.

작품 '꽃밤 데이트'(김두엽, 2019년). 며느리가 그림을 보고 해준 말이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북로그컴퍼니 제공

평생 농사를 지었고 오십이 넘어서는 세탁소를 했으며 팔십이 넘어서야 노동에서 풀려난 인생사와 달리 김 할머니의 그림은 유쾌하고 순수하고 따뜻하다. 친근하고 귀여운 소재들, 단순하지만 과감한 구도, 밝고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진다. 그 그림들이 아름답고 다정했던 시절들을 환기시키며 미소를 짓게도 하고 살짝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김 할머니의 그림을 보며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미국의 국민화가가 된 모지스나 75세에 신진 작가로 선정된 후 80대에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영국의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은 동화 같은 김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가 그리는 그림처럼 따뜻하고 희망차다. 김 할머니는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참이라는 걸 내가 보여주게 되었네요”라며 “내일도 그릴 거예요”라고 썼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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