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샌박은 어떤 게임단을 꿈꾸나

윤민섭 2021. 5.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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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샌드박스 정회윤 단장 인터뷰
2019년 사업부 총괄로 입사..올해 초 단장 취임
"e스포츠 미경험자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만한 팀 만들겠다"

리브 샌드박스 정회윤 단장은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IBM에서 시니어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오피지지, 아만다 등의 스타트업 기업 등에서 일했다. 2019년 4월 샌드박스 게이밍의 사업부 총괄로 입사했다. 올해 초 단장으로 취임했다.

국민일보는 이달 초 서울 구로구 소재의 리브 샌박 사무실에서 정 단장을 만났다. 리브 샌박은 어떤 게임단이 되고자 하는지를 물었다. 올해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시즌을 8위로 마무리한 소감, 서머 시즌에 임하는 각오 등도 함께 질문했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어떤 일들을 맡고 있나.
“리브 샌드박스의 단장 정회윤이다. 단장으로 취임한 건 지난 1월이지만, 그 전부터 게임단의 업무를 총괄해왔다. 2019년 4월 게임단의 사업부 총괄로 입사했다. 샌드박스의 LCK 프랜차이즈 지원 TF를 담당했고, 국민은행과의 네이밍 스폰서십 체결을 주도했다.
리그의 프랜차이즈화에 발맞춰 우리 게임단에도 장(長)이란 직함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겠다는 의견이 회사 내부에서 나왔다. 이전에는 리드(Lead)로 불렸다. ‘단장’이란 직함이 갖는 상징성과 책임감을 느낀다.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LCK가 프랜차이즈화된 후로는 업무 스펙트럼이 좁아졌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게임단에 많이 들어온 덕분이다. 현재는 게임단 산하 ‘리그 오브 레전드(LoL)’ ‘카트라이더’ ‘피파온라인4’ 팀의 전반적인 운영과 콘텐츠 제작을 총괄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북미와 유럽 게임단 관계자들을 만나 자문했다고 했다.
“북미와 유럽은 전 세계에서 스포츠 산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스포츠의 상업적 성공에 대한 고민을 수십 년째 해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북미의 팀 솔로미드(TSM)와 팀 리퀴드, 유럽의 로그 등 여러 게임단 관계자를 만났다.
크게 두 가지를 느꼈다. 첫 번째는 이들이 e스포츠를 굉장히 글로벌한 비즈니스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가령 한 북미의 한 게임단장은 유명 축구단과 농구단의 주주이기도 했다. 그는 ‘가장 글로벌한 세 가지 종목에 투자하고 싶었다’면서 ‘글로벌 트리니티(Trinity,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썼다. 축구, 농구와 함께 e스포츠를 지목한 게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e스포츠가 얼마나 많은 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존의 e스포츠 팬들은 이곳에서 펼쳐지는 ‘승부’와 ‘게임’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북미와 유럽 관계자들의 시선은 이 본질을 넘어서 시장을 얼마나 글로벌화, 상업화할 수 있는지로 향해있었다.
e스포츠는 미국 프로야구(MLB)나 프로농구(NBA) 등 국제적 인기를 누리는 레거시 스포츠 종목들보다 시청자 평균 연령이 낮다. 그들을 대체할 힘이 있다. 무조건 장밋빛 미래를 얘기할 건 아니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책임감과 목표 의식을 갖고 도전한다면 더 큰 상업적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스프링 시즌을 8위의 성적으로 마쳤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러나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려 한다. 시즌 시작 전 김목경 감독과 약속한 게 두 가지 있었다. ‘선수들끼리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의 팀 만들기’와 ‘재밌는 경기를 하는 팀 만들기’였다. 이것들이 잘 지켜진 것 같고, 좋은 과정을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본다. 물론 시즌 초반에 반드시 잡아야 했던 경기들을 놓쳐서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연말 스토브리그 당시에는 어떤 전략을 세웠나.
“앞서 ‘써밋’ 박우태, ‘온플릭’ 김장겸과 2021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기에 상체를 코어로 삼은 뒤 하체에도 좋은 자원을 데려오는 그림을 그렸다. ‘페이트’ 유수혁이 지난해 서머 시즌에 크게 발전한 뒤로는 하체 구성에 더 몰두했다. 특히 서포터가 더 중요하다고 봤기에 이적 시장에 나온 ‘에포트’ 이상호를 영입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원거리 딜러 포지션의 두 선수와는 재계약을 체결했다. ‘루트’ 문검수가 충분히 포텐셜을 폭발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레오’ 한겨레의 성실함, 진정성, 프로의식을 봤기에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막상 시즌에 돌입하니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있었나.
“적지 않았다. 이상호는 정말 좋은 선수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리더로서의 역량도 갖췄으며, 그의 승부욕과 프로의식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사실 이상호도 데뷔 후 처음으로 팀을 옮긴 것 아닌가.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적응기가 필요했다.
‘크로코’ 김동범 역시 야심 차게 데려온 유망주였는데, 마찬가지로 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유수혁도 ‘고릴라’ 강범현이라는 리더 없이 팀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선수에게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예상했던 것만큼 선수들의 퍼포먼스가 빠르게 나오지 않았다.”

- 2라운드 시작을 앞두고 ‘프린스’ 이채환을 영입했다.
“이채환이 작년에 ‘LoL 챌린저스 코리아(챌린저스)’에서 팀을 하드 캐리 했다는 건 업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았다. 많은 팀이 눈여겨본 선수였다. 사실 스프링 시즌이 끝난 뒤 그의 영입을 추진하려고 했는데 이전 소속팀인 FPX가 호의를 베풀어줘 그를 빠르게 데려올 수 있었다.
우리가 이채환을 영입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게 샀다. 이채환은 소위 말하는 ‘오더가 되는 원딜’이다. 반드시 ‘이 플레이를 하자!’가 아니더라도 ‘나 지금 이 플레이는 돼, 이 플레이는 안 돼’ 같이 팀이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정보를 끊임없이 준다. 여기에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단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마인드가 팀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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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검수와 한겨레를 후보로 두지 않고 로스터에서 말소 처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2라운드 개막 전, 김 감독과 팀의 방향성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이채환이 팀에 입단하면 정글러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은 고정 로스터로 가기로 정했다. 베스트 라인업을 꾸렸다면 그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두 선수가 로스터에 등록돼있었다면 이채환이 2라운드 초반처럼 부진했을 때 ‘돌림판’이 떠오르지 않았겠나.
문검수와 한겨레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줘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두 선수는 로스터에 등록이 돼 있어도 실전 참여 기회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군 로스터에도 장래가 유망한 원거리 딜러들이 있던 차였다. 다른 팀에서라도 활동할 수 있게끔 돕고자 말소 처리를 빠르게 결정했다.
팬분들께서는 팀의 입장 표명이 늦어진 것을 의아해 하셨다. 그간 e스포츠에선 전례가 없었기에 레거시 스포츠 종목들의 로스터 말소 사례를 참고했는데, 돌이켜보면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몰입해주시는 팬분들의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레거시 스포츠 종목들의 사례를 참고하되, e스포츠 팬분들의 감정 또한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서머 시즌에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스프링 시즌에는 ‘누구한테도 이길 수 있고, 누구한테도 질 수 있는 팀’을 보여드렸다고 생각한다. 바꿔서 얘기하면 선수들의 경기 당일 컨디션이나 준비 수준에 따른 기복이 크다는 얘기다.
프런트는 팀의 밴픽 전략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는다.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선수의 컨디션을 화살표로 분류하는 축구 게임이 있다. 프런트의 역할은 선수 컨디션을 위로 향하는 빨간색 화살표로 만들고, 그걸 유지케 하는 것이다. 선수가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피로가 누적될 만한 일정은 없었는지 등을 더 신경 쓰겠다. 선수들의 역량 자체만 놓고 본다면 서머 시즌에 충분히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말을 김목경 감독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팀이 서머 시즌에 4~6위를 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LCK는 ‘3강 체제’가 확고하다. 담원 기아, 젠지, T1이 확실히 다른 팀들보다 강하다. 담원 기아가 아이슬란드에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시드권을 하나 더 확보해준다면 우리도 충분히 롤드컵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LCK가 프랜차이즈 리그로 거듭난 뒤 첫 시즌을 보냈다. 이전과 차이점이 있던가.
“확실히 한 경기, 한 경기에 덜 목매달게 됐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닌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들겠다. 하위권 팀이 팀원 간 신뢰를 해치는 승리와 팀원 간 신뢰를 얻는 패배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작년엔 무조건 전자를 택해야 했다. 올해는 후자를 택할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리그가 아니었다면 우리와 농심 레드포스, KT 롤스터, 아프리카 프릭스, 프레딧 브리온이 마지막까지 승강전행을 피하기 위해 피를 말리는 싸움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2라운드 막판 DRX전에서 이채환이 사미라로 ‘지옥불난사’ 캐리를 못했다면 꼼짝없이 우리가 승강전으로 갔을 것이다.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변화를 실감한다. 리그 주최측과 각 팀 사무국이 주기적으로 회의를 한다.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이 리그를 키워나간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리그 발전을 위해 각자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건전한 토론을 하고 있다. 영광스러우면서도 뿌듯하다.”

-롤 모델로 삼는 스포츠 구단이나 게임단이 있나.
“각 리그의 좋은 점만 가져오려 한다. 팀을 구성할 때의 재정적, 행정적 구조는 NBA 사례를 많이 참고한다. 마케팅, 글로벌 규모 확장 사례는 영국 프로축구(EPL)를 참고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은 MLB를 많이 참고하려 한다. 현재 목표로 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스카우팅 팀의 정립인데, 이 역시 스카우팅의 역사가 오래된 MLB를 롤 모델로 삼으려 한다.”

-게이밍 하우스 건설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나.
“아직 게이밍 하우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각 구단의 현황에 맞는 환경과 인프라가 있다. 리브 샌박은 아직 빅마켓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스몰마켓 게임단이 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인프라를 선보이려 한다. 서울 구로에서 1, 2, 3군이 함께 연습하고 사무국도 같은 건물에 상주할 예정이다.
선수와 직원 등 게임단에 소속된 50여 명이 함께 생활하고, 더 나아가 의식주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부지를 서울 안에서 찾는 게 쉽지 않다.”

-리브 샌박은 앞으로 어떤 게임단이 되려 하나.
“선수들의 플레이어 사이클(Player Cycle, 선수 생명)이 계속해서 순환되는 좋은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 되려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소속 선수들의 플레이어 사이클을 늘리고 싶다. 선수와 선수의 실력은 우리 팀의 자산이다. 선수들이 더 오래 실력을 유지하거나 발전할 수 있게끔 고민하겠다.
우리 게임단을 좋아한다는 게 메인스트림(Mainstream, 주류)화되고, 또 대중적으로도 인정받는 일이 됐으면 좋겠다. e스포츠 산업이 크게 성장했지만, 프로게이머와 게임단을 좋아한다는 건 여전히 마이너한 영역의 일이다. 아직까지 e스포츠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만한 매력을 갖춘 팀을 만들고 싶다.”

-끝으로 인터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e스포츠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해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쯤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LCK 10개 팀의 일원으로서,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리그와 게임단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우리 팀을 좋아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하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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