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탄소중립 시계.. '웃픈' 현실의 철강업계

정진영 2021. 5. 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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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부정 반반.. 깊어가는 고민
국제 수요 증가·중국 감산 겹경사
탄소배출권 거래로 부담도 늘어


탄소중립을 향한 전 세계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2050년 또는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고, 한국 정부도 ‘국가별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연내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업종 특성상 탄소배출량이 많은 철강업계는 전 세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 중 하나다. 다만 그 영향이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해 철강업계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열연강판(철강 반제품 슬래브를 고온·고압으로 얇게 만든 기초 철강재) 유통가격은 t당 100만원을 넘어서며 2008년 집계 이래 최고점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급격한 생산 위축으로 재고 수준이 낮아진 데다 주요국에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면서 수요가 증가한 영향 등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중국 정부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0월 최대 철강 생산지인 탕산시 23개 철강사에 최대 50% 감산을 지시하며 호재가 겹쳤다. 또 이달부터 열연, 철근, 선재, 스테인리스스틸(STS) 등 146개 품목에 대한 수출보조금격인 수출환급세 13%도 완전 폐지하면서 국내 철강사들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중국의 탄소배출 규제가 국내 업계엔 긍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런 영향 덕에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최근 발표한 1분기 실적에서 연달아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포스코는 영업이익 1조5524억원을 달성하며 10년 만에 최대실적을 세웠고, 업계 2위 현대제철은 영업이익 3039억원을 기록하며 시장의 전망치를 크게 뛰어넘었다. 업계는 이 같은 호조가 2분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탄소배출 관련 규제가 전 세계에서 강화되고 있어 철강업계는 웃을 새도 없이 긴장하고 있다. 고로(용광로)를 사용하는 철강사들은 주원료로 탄소 덩어리인 석탄을 사용하고 있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탓이다. 2019년 기준 국내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17억t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16.7%를 차지했다.

그런 데다 올해부터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3기(2021~2025년)에 돌입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 3기부터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탄소배출권 유상할당량이 3%였던 2기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10%로 확대됐다. 다행히 철강업계는 산업 영향을 고려해 탄소배출권 유상할당에선 제외됐지만 탄소배출권 가격 변동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상할당 규모가 늘어나면 탄소배출권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 중 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KAU20(2020년 할당배출권)은 4일 기준 t당 1만7050원에 거래됐다. 2019년 말 4만원을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증권가는 올해 하반기부터 탄소배출권 가격이 최소 3만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업계의 배출부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BNK경제연구원은 지난 4일 보고서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 3차 계획 시행과 더불어 탄소세 도입 논의 및 세계 주요국 탄소국경세 추진도 가시화하면서 철강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미 국내 철강업계 1, 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2019년 대비 2020년의 탄소 배출부채(탄소배출권 구매를 대비해 미리 장부에 쌓아두는 충당금) 규모가 증가한 상태다.

업계는 탄소중립의 방향성엔 공감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수소환원제철공법’이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점에서 부담이 훨씬 크다는 분위기다. 더군다나 중국의 감산이 주는 긍정적 영향도 그리 오래 갈 것으로 전망하지는 않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도 장기적으론 철강시장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호재가 지속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탄소배출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선제적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 2월 ‘그린철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엔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케이지(KG)동부제철·세아제강·심팩 등 6개 철강기업이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저탄소 원료 대체, 철 스크랩 재활용 증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소를 이용한 수소환원제철공법 개발 등을 통해 탄소중립 제철소를 구현키로 했다. 현재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국책연구과제로 수소환원제철공법 개발에 참여 중이다.

전문가들은 철강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소환원제철공법의 개발에 정부의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고 관련 일자리도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않을 경우 산업과 일자리 모두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준호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수소환원제철공법 기술 개발에 국운을 걸고 투자하는지 여부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것”이라며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만큼 지원에도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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