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자기 신념화된 신앙 방식과 자녀의 삶

2021. 5. 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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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우리 손암 선생만이 나의 지기였는데 이제 잃어버렸으니… 어느 곳에 입을 열어 함께 말할 사람이 있겠는가.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차라리 진즉에 죽는 것만 못하다. 아내도 자식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형제 종족들이 모두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처지에 나를 알아주는 우리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슬프지 않으랴.’

손암은 영화 ‘자산어보’의 실제 인물 정약전(1758~1816)을 말한다. 둘째 아우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형님 잃은 슬픔을 논하는 글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각각 유배지인 흑산도와 강진으로 끌려가던 형제가 전라도 나주 율정목에서 헤어지는데 이때 다산이 남긴 시가 ‘율정별리’다. ‘일어나 샛별을 보니 헤어질 일이 참담하다’고 했다.

명문가 정재문 슬하에는 약현 약전 약종 약용 등 4남1녀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문은 예수를 알고자 했다는 이유로 순교, 유배 등 멸문지화를 당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용납할 수 없는 대목이 봉제사 거부였다. 또 하나는 충효 기반의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역모와 다를 바 없고 천륜을 어기는 행위로 보았다. 사학에 대한 척사 이유다.

조선 후기 기독교 박해사는 개화 좌절과 직결된다. 그런데 정치·종교적 해석을 떠나 정씨 가문 가족사로 보자면 이런 비극이 없다. 장자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백서’ 사건의 당사자다. 황사영은 신유박해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이니 당연히 참수당했다. 약현의 처남으로 기독 교리를 연구했던 이벽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죽었다. 약전은 뭍으로 나오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죽었다. 약종은 큰아들 철상과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약종의 둘째 아들 하상은 기해박해 때 어머니, 누이동생 등 가족과 함께 순교했다. 형제 가운데 가장 늦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던 약종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신주를 모시지 않는 추도 형식의 제사조차 거부해 본가 남양주 마재에서 한강 건너 광주 분원리에 따로 살 정도였다. 정재문의 사위는 이승훈으로 제사 문제로 배교와 복교를 거듭하다 4대에 걸친 순교자 집안이 됐다.

‘황사영백서’ 사건은 신앙을 위해 외국의 군대를 요청한 반민족 행위였음이 분명하다. 나라는 없어져도 교회의 표적은 남아야 한다는 지나친 신념으로 볼 수 있다. 황사영의 심문관이 “그대는 수백 척의 전함과 수만 명의 군사를 청해 오더라도 백성과 국가에 피해가 없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그대도 이 나라 백성인데 어찌 차마 이런 수치스러운 생각을 하였는가” 하고 호통을 쳤다. 초기 기독교 수용 과정에서 전통 가치와의 첨예한 대립이었으며 이는 훗날 프로테스탄트의 선교에 많은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한데 정씨 가문 가족사에서 다산의 태도는 매형 이승훈과도 결이 달랐다. 이승훈은 전도하다가 발각돼 참수 지경에 이르렀고 그 가족의 간곡한 호소에 척사문을 쓰고 배교했다가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다 신앙의 양심에 꺼려 복교했다가 제사 문제에 부딪히자 다시 배교했다. 인간적 갈등이 배교와 복교 사이에 잘 드러난다.

반면 다산은 이벽 등으로부터 신앙을 접하고 이것이 발각되자 정조에게 “젊은 혈기에 학문적 차원에서 받아들였다”고 변명한다. 찰방으로 관직이 강등당하는 수모도 감당한다. 또 제사 문제를 탄력적으로 해석해 신학자 같은 자세도 보인다. 그는 신유박해 때도 살아남아 실학사상을 체계화하고 개화의 밑거름이 됐다. 배교자 논란을 떠나 지식인답게 멀리 본 듯하다. “아내도 자식도 알아주지 못한다”는 푸념을 알 듯도 하다. 한데 이 간난의 가족사에서 집안을 보전한 이가 따로 있다. 맏형 약전이다. 그는 비그리스도인 척하고 고향 마재를 지키며 모든 형제와 조카들을 뒷바라지했다.

자녀의 삶을 이기는 신앙이 있을까. 자기 신념화된 신앙 방식의 강요는 가족 간 화목을 해친다. 부모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면 들어 쓰시는 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5월이다.

전정희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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