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의 미래 당겨보기]디지털 분산 의료와 중소도시

이준형 2021. 5. 7. 15: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의료비 비중 높아도 코로나19 사망자 등 개도국보다 많아
예방의료비 지출 5% 불과..병원 중심 의료시스템 한계
디지털헬스가 미래 의료 해결책..대·중소도시 의료 불평등 해소

코로나19는 보건의료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줬다. 5년 전 한 세계적인 포럼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자동화로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고에 사람들이 걱정을 했는데, 지금 우리는 그보다 100배 더 많은 5억명이 실직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세계대전을 한 번 치른 것처럼 32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사망자는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손실은 전 세계적으로 매달 444조원에 달한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며 팬데믹이 종식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됐지만 몇 년 내에 또 다른 팬데믹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전 세계는 그동안 많은 의료비를 지출해왔다. 선진국들의 의료비 비중은 OECD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8.8%에 달한다. 미국은 무려 18%에 달하는데도 팬데믹 상황에서 개도국보다 높은 코로나19 환자 발생 및 사망자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유럽을 포함해 선진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사망 선고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보건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심각하지만, 의료비 낭비를 보면 현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비대해졌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의료비 지출의 4분의 1(연간 약 1조달러, GDP의 약 4.5%)은 낭비라고 한다. 의료행정의 복잡성, 중복 서비스, 불필요한 치료, 높은 약값, 병원 재입원 등으로 낭비되고 있다. 미국은 사보험 제도를 취하고 있어 공보험 제도의 우리나라와 의료 환경은 다르지만 현재의 병원 중심 의료 시스템이 가진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 중심의 의료 시스템에서 의료비 지출의 약 80%는 진단과 치료에 사용된다. 그러나 2040년에는 의료비 지출의 60%는 예방과 건강관리에 사용하게 될 것이다. 현재 예방에 지출되는 비중은 5%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병이 발생하기 전과 진행되기 전 단계에서 예방하고 조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1년에 1번꼴로 받는 건강검진으로는 충분한 예방 효과를 보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은 이런 한계를 돌파하는 데 획기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디지털 헬스는 일반적으로 모바일 건강, 의료 정보기술(IT), 웨어러블 장치, 원격 건강관리, 원격의료, 개인화된 의료, 디지털 치료제라는 6가지 범주로 구성되어 있고 주로 예방과 건강관리에 집중되어 있다. 디지털 헬스가 미래 의료의 해결책으로서 조명받고 있는 이유다. 딜로이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디지털 헬스를 적극 도입해 예방과 건강관리에 집중하면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와 같은 의료 시스템에서 미국의 의료비 지출은 매년 5.3%가량 증가해 2040년에는 11조8000억달러로 GDP의 26%에 이른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를 적극 도입하면 2040년에 현재와 같은 18.4% 수준으로 증가세를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료비 비중이 2010년 5.9%, 2016년 6.9%, 2019년 8%로 급증해 매년 9% 정도 의료비가 증가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전망이다.

디지털 헬스는 우리 의료가 안고 있는 또다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의료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기대수명(서울은 83.3년, 전남은 80.7년으로 2.6년 차이)과 건강수명(서울은 69.7년, 경남은 64.9년으로 4.8년 차이)의 격차가 크다. 이는 주민 1000명당 활동 의사 수(서울 종로구는 16.29명, 강원도 고성군은 0.45명)의 차이 때문이다. 인구 10만명당 치료 가능한 사망자(서울은 44.6명이고 충북은 58.5명, 서울 강남구는 29.6명이고 경북 영양군은 107.8명)의 차이는 더 크다. 심근경색 환자의 응급실 도착 시간(서울은 150분 미만으로 전북 진안군의 410분과 2.7배 차이)의 격차, 즉 종합병원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느냐의 차이다. 결국 의사 수와 종합병원이 의료의 불평등을 가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의료의 격차는 삶의 격차로 이어지며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부에서는 의료 불평등을 공공의대와 지방의료원 신설 등 공공의료 시스템 강화로 완화하려 했지만 의사들의 반발로 동력을 잃었다. 현재 병원 중심 의료 시스템에서는 양적 확대가 해결책일 수 있지만 디지털 헬스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10~20년 후의 해결책이 되기에는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헬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환자 중심의 예방적 건강관리이다. 병원에 갈 필요가 없게 만들고 치료 중심인 병원의 필요성을 줄인다. 유전자를 비롯해 신체 장기에 대한 정밀 검사로 신체 정보를 디지털 트윈으로 모델링하고,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일상적인 신체 활동을 모니터링해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인공지능으로 예측한다. 개인의 신체적 특성과 생활습관 및 환경(식사, 운동, 대기환경 등)에 맞게 적절한 건강관리 활동을 조언하고 이를 따르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면 질병으로 발전하는 걸 획기적으로 줄 일 수 있다. 주치의는 환자, 관리하는 주민이 병원에 오지 않아도 매일 개개인의 건강 정보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체크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명의는 잘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의사라는 속담에 맞게 모든 의사가 명의가 되는 셈이다.

종합병원은 희귀병이나 수술 등에 특화된 병원으로 바뀌고 일반적인 환자 관리는 지역의 병원과 주치의가 담당하게 되는 구조다. 지역 병원과 특화병원은 환자 정보를 공유하며 수술이 끝난 환자는 거주지역 병원에서 담당한다. 응급실도 분산적으로 설치돼 응급 전담 병원에서 지역 병원의 응급실을 관리하게 된다. 이 같은 디지털 분산 의료 모델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선진국의 의료 전문가들이 구상하고 있는 미래 의료 모델이다. 이렇게 되면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의료 불평등도 해소되고 어느 지역이나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된다. 미래의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