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몸테크 한다 생각해"..잠실주공5, 재건축 더딘 속도에도 '잠잠'
전문가, "국토부와 협상 위한 시간벌기"..순차적 개발에 무게
"'이번에는 통과되겠지'라는 기대를 아주 안 한 건 아니어서 화도 나죠. 그렇지만 별다른 수 있나요. 언젠가는 되겠거니 '몸테크' 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찾은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에서 만난 주민은 서울시의 재건축 정비계획안 심의 보류와 관련해 이렇게 답했다. '오세훈표 재건축 1호' 사업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만큼 주민들의 실망감도 클 것으로 예상됐으나, 현장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송파구청은 지난달 19일 오세훈 시장 취임 직후 서울시에 이곳 사업장 정비계획안을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에 상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주민 의견을 보강해 재상정하라며 이를 반려했다.
1978년 준공된 이 단지는 2017년 단지 내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상향하는 서울시 일부 심의를 통과해 최고 50층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기존 3930가구를 6402가구로 확대하고 이 중 427가구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서울시와 협의했다.
잠실주공5단지 정비계획안이 보류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부터 송파구는 서울시에 관련 공문을 보냈으나, 시는 부동산시장 과열 등을 우려해 번번이 이를 보류해왔다.
수권소위는 도계위의 권한을 위임받아 정비계획안을 검토하고 용적률과 가구 수, 층수 등을 결정하는 기구다. 개최 여부는 서울시 의지에 달려있어 오 시장 취임으로 사업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신 셈이다.
주민들은 오 시장 당선 이후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면서 서울시가 이에 부담을 느끼고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라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여기서 산 지 30년이 넘었는데 재건축된다고 한 게 20년 됐다"라며 "오세훈 시장이 의지가 있더라도 정부에서 떡하니 막고 있는데 1년 안에 사업이 어떻게 되겠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4년 전에 리모델링 다 하고 들어왔다"라며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불편하지만, 교통도 편리하고 생활하기도 좋다 보니 버티자는 심정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서 거래가 좀 뜸하다가 오 시장 당선 가격이 좀 올라서 거래가 이뤄졌다"라며 "작년 하반기와 비교하면 로얄층 기준 36평은 3억원 정도 올랐고 34평은 많이 오른 게 2억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정비계획안 심의 보류와 관련해선 "이미 현 정부 들어서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그건 쏙 빠지고 자칫 오세훈 시장이 당선돼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고 화살을 돌릴 수도 있지 않겠냐"라며 "빨리 추진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불투명해 모니터링만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규제 완화 방안 없이 시간 끌기만 하다 임기가 끝나면 4·7 보궐선거로 잡은 표심이 다시 돌아설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제 장기보유공제 받으려면 10년 실거주해야 하니까 요즘 수리하는 집들이 많다"라며 "일단 내 돈 들여서 수리하고 기다린다는 건데, 기대감만 한껏 부풀리고 실질적인 방법이 뒤따르지 않으면 주민들은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계획안 심의 보류 이면에는 서울시의 권한으론 한계가 있으니 국토부와 여러 가지 협상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라며 "서울시가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이 어느 정도 추진되면 그와 맞물리는 시점에 재건축 사업 인허가가 떨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서진형 대한부동한학회 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집값 상승의 부담을 느끼는 만큼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접근하겠다는 행보로 읽힌다"라며 "임기 1년 내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기는 힘들더라도 차기 시장에게 넘겨 순차적으로 재건축, 재개발을 진행하려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일리안 배수람 기자 (ba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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