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연하에 금발, 완벽한 정치인 아내..진통제 중독이었다
새빨간 명품 정장에 단아하게 틀어 올린금발 머리,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네일과 메이크업까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화제의 인물 중 한 명은 야당 공화당의 후보 존 매케인의 부인, 신디였다. 남편의 곁에서 자랑스러운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열렬히 박수를 치는 그의 모습을 두고 전형적인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라는 평가도 나왔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트로피 와이프는 성공한 중장년층 남성과 결혼한 젊고 화려한 외모의 여성을 일컫는다. 존 매케인은 1936년, 신디는 1954년생으로, 18년의 나이 차를 극복했다.
신디 매케인의 진가는 그러나 남편이 2018년 뇌종양으로 사망한 이후 더 빛나고 있다. 최근엔 자서전 『더 강하게: 존 매케인과 함께한 삶의 용기와 희망 그리고 유머(Stronger: Courage, Hope & Humor in My Life with John McCain』도 펴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일(현지시간) “신디 매케인은 2008년 대선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정치인의 아내’ 이미지였다”며 “이번 자서전은 그가 그 완벽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솔직하게 드러낸다”고 전했다. WP는 “그에게 완벽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며 “그가 솔직히 털어놓는 이야기에 많은 보통의 여성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의 남편 존의 별명은 ‘이단아(maverick)’였다. 공화당 소속으로 뼛속까지 보수였지만, 때로 당이 결정한 방침에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도 여러 번이다. 그 덕에 민주당에선 ‘합리적 보수’ 이미지로 존중받았다.
남편 사후 신디는 그의 뒤를 이어 정계 진출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대신 정치적 목소리는 계속 내고 있다. 남편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다. 최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이 조작됐다며 애리조나주(州) 선거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자 “그만 좀 하라”며 “이미 선거는 끝났고 공정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매케인 가(家)의 정치적 본거지가 애리조나 주로, 존 매케인은 1982년부터 36년간 애리조나 주 상하원의원을 내리 역임했다. 공화당 텃밭으로 여겨지는 애리조나이지만, 지난 대선에선 트럼프가 아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신디 본인은 정계 진출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지만 이번 자서전은 남편을 기리는 의미에서 냈다고 한다. 그는 WP와 인터뷰에서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 특히 힘들 때마다 그와 나를 지탱해주었던 그의 유머를 기억하고 종이에 꾹꾹 눌러 적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디를 존 매케인에게 소개한 것은 현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였다고 한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데다 정통 군인 집안 출신의 정치인 존 매케인은 당시 유부남이었다. 질 바이든은 둘은 친구가 되길 바라며 소개했지만 둘은 결국 바람이 났다. 존 매케인의 두 살 연하 당시 부인 캐럴은 정치 보좌관 출신으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백악관에서 방문객 센터장 직 등을 역임한 여성이었다.
이후 캐럴 매케인은 “이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며 “내 남편은 물론 내 최고의 친구까지 잃어버려야 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존 매케인은 그러나 캐럴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부동산 및 평생의 현금 지원을 약속했다. 캐럴은 존 매케인과의 결혼이 재혼이었고, 그 전남편과 사이에서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까지 모두 대주기로 약속했을 정도. 이후 둘은 우호적 관계를 이었고, 2008년 대선에서도 캐럴은 전남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캐럴 매케인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신디 매케인은 완벽한 정치인의 아내 이미지에 집착했다. 2008년 경선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당시 완벽한 이미지를 보여줬지만, 사실 뇌졸중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몸에 통증이 계속됐지만,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고 2004년엔 급기야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갓 50이었다. WP는 “진통제에 중독이 된 것을 모르고 자신을 계속 몰아붙이다 탈이 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치인 남편의 완벽한 내조자 이미지를 보이려다 쓰러졌다는 것.
그런 신디의 롤모델은 현 영부인인 질 바이든이었다고 한다. 신디 매케인은 WP에 “존과 결혼했을 당시 나는 다른 정치인의 아내들과는 달리 너무 어렸고, 다들 ‘새로 온 금발 여자애’ 정도로 날 생각했다”며 “당시 질 바이든이 유권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남편을 지원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WP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정계 진출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신디의 답은 이랬다.
“저는 그럴 생각 없습니다. 대신 매케인 가의 누군가는 존의 유지를 이어 정계에 진출했으면 해요. 나와 존 사이의 아이들 4명도 있고, (존과 캐럴 사이의) 또다른 아이들 3명도 있으니 그중 누군가는그리해주길 바랍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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