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대신 조종간 잡고 추락···어린이 1300명 지켰던 김 중령 [영상]
2006년 5월 5일 오전 11시50분쯤 경기도 수원시 공군 10전투비행단 수원비행장. 어린이날을 맞아 에어쇼를 하던 공군 블랙이글팀 소속 전투기 6대 중 2대가 급강하를 한 뒤 ‘X자’ 형태로 교차 비행을 했다. 교차 후 전투기들이 동체를 한 바퀴 돌리자 관람석에 있던 어린이 등이 “와”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에어쇼 중에서도 고난도로 꼽히는 ‘나이프 에지(Knife Edge)’ 기술이었다.
이때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비행 공연을 하던 전투기 2대 중 1대는 곧바로 급상승해 정상 궤도를 찾았지만 나머지 전투기는 고도를 올리지 못했다. 지상 330m 공중에서 요동을 치던 전투기는 비틀대며 인근 잔디밭으로 추락했다. 1300여 명이 앉아 있던 관람석에서 불과 1.8㎞ 떨어진 지점이었다. 조금 전까지 공중곡예를 하던 전투기가 땅에 떨어지자 곳곳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당시 추락한 전투기 조종석에는 고(故) 김도현 중령이 타고 있었다. 김 중령은 당시 항공기 기체 고장으로 추락해 산화했다. 공군 사고조사위원회가 추락한 기체 잔해를 확인한 결과 고인의 왼손은 스로틀(throttle)을, 오른손은 조종간 스틱(stick)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전투기 조종석 의자는 ‘이젝션 시트(ejection seat)’로 유사시 손잡이만 당기면 의자째 공중으로 치솟아 조종사가 탈출할 수 있었지만 외려 조종간을 붙잡고 있었다.
당시 공군 관계자는 “김 중령이 평소 훈련받은 대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관람객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조종간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김 중령의 희생과 결단 때문에 대형 참사를 막았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로부터 15년이 지난 4일 오전 11시40분. 김 중령이 소속됐던 팀 블랙이글스 전투기 8기가 김 중령의 고향인 울산 하늘에 날아올랐다. 김 중령을 추모하는 비행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울산시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울산대공원 현충탑에서 김 중령의 순국 15주기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송철호 울산시장, 박병석 시의회 의장, 고 김도현 중령의 유족, 최광식 ‘김도현 공군중령 추모사업회’ 회장 등 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김 중령은 공군사관학교 44기로 1996년 임관한 전투기 조종사였다. 전사·순직한 진급 예정자의 진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소령에서 중령으로 한 계급 추서됐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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