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대구의 거장, 이인성과 이쾌대

이은주 2021. 5. 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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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1934), 이쾌대의 ‘항구’(1960), 서동진의 ‘자화상’(1924), 서진달의 ‘나부입상’(1934), 변종하의 ‘오리가 있는 풍경’(1976)···. 무슨 목록인지 눈치채셨나요? 지난주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들이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작품들입니다. 작품 다섯 점이 기증된 유영국(1916~2002)은 경북 울진이 고향이지만, 위에 소개한 작가는 모두 대구 출신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중 많은 작품이 여러 미술관에 기증됐는데요, 대구미술관은 이인성(1912~1950) 그림 7점, 이쾌대(1913~1965) 그림 1점 등 근대 대표 작가들의 작품 21점을 기증받았습니다. 소장품이 턱없이 빈약한 지역 미술관에 기증된 미술품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귀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쾌대 작품은 대구미술관에 단 한 점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인성, 사과나무, 캔버스에 유채, 91x116.5㎝, 1942. [사진 대구미술관]

이인성과 이쾌대, 두 작가의 작품을 접하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그동안 두 거장은 박수근(1914~1965)과 이중섭(1916~1956)보다 덜 조명됐을까? 물론 한국 근대 미술사 연구자들에게 이인성과 이쾌대를 항상 중요한 작가로 거론하고 있습니다만, 우가 이인성과 이쾌대의 작품을 충분히,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여기엔 작가의 단명(短命)과 월북(越北), 미술시장 메커니즘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요.

이인성과 이쾌대는 대구 수창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입니다. 이인성은 1930년대에 일찍이 두각을 드러냈고, 이쾌대는 1940년대에 절정기를 보여준 작가로 꼽힙니다. 두 화가는 또 작품의 형식과 기법에서 당대 최고의 기량과 원숙함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이인성은 만 서른여덟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고, 이쾌대는 월북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 대구미술관에선 두 거장의 작품을 나란히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대구 근대미술을 망라해 조명하는 ‘때와 땅’ 전입니다. 작가 64인의 작품 140여 점을 소개하는 큰 전시인데요, 여기서 우리는 ‘가을 어느 날’(1934)과 ‘경주의 산곡에서’(1935) 등 이인성의 대표작 8점과 함께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등 이쾌대 작품 6점을 볼 수 있습니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한국 미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걸작들”로, 각각 개인·기관 소장품으로 흩어져 있던 것을 한자리에 모은 것입니다.

100여 년 전에 태어난 이인성과 이쾌대, 두 거장이 한 걸음 더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은 여기에 더욱 불을 붙였습니다. 지역 미술관의 컬렉션은 더욱 풍부해져야 하고, 작가의 위상은 재정립돼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 거장들을 만나고 응답할 차례입니다. 전시는 30일까지입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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