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장소는 날개 위입니다" 이 애드립으로 흑자된 항공사

김기찬 2021. 5.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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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빅토빌 공항에 계류 중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보잉737 맥스기. REUTERS 연합뉴스

"흡연하실 분은 우측 비상구로 나가셔서 항공기 날개 위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됩니다. 흡연 중에 감상하실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입니다."

"항공법에 따라 기내 흡연이 금지돼 있습니다"라는 식의 딱딱한 안내방송을 이 항공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이 항공기를 탄 승객들은 "웃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착륙해서까지 승객의 배꼽을 잡는다. 착륙 과정에 충격이 생기면 곧장 이런 안내방송이 나와서다. "여러분, 방금 매우 강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이는 항공사의 책임도, 조종사나 승무원의 책임도 아닙니다. 오직 아스팔트 탓입니다." 승객들은 "놀이공원에 온 듯 즐기게 된다"고 한다.

운항 내내 승객을 즐겁게 하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올 1분기 20억5000만 달러의 매출에 순이익 1억16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웃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이익을 낸 미국 최초의 항공사다. 전 세계 항공사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가운데 나온 서프라이즈다.

코로나19는 항공산업을 블랙홀에 빠뜨렸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장 오래된 항공사(설립 98년)인 체코항공은 올 3월 파산했다. 일본 전일공(ANA)은 5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항공사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기지를 발휘해 외형상 흑자를 기록했지만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이 합병을 꾀할 정도로 경영 사정은 최악이다. 특히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는 존폐의 갈림길에 몰렸다.

미국 시카고 미드웨이 국제공항 사우스웨스트항공 발권 데스크에 늘어선 승객 EPA 연합뉴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LCC다. 화물이 아닌 여객 수송만 한다. 그런데도 미국 유일의 흑자 항공사가 됐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난해까지 코로나19로 49년 역사상 처음 적자를 기록하는 등 초유의 경험을 했다. 시장의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LCC의 한계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주당 20달러 밑으로 떨어졌던 주가는 1년 여 만에 62달러 선으로 급등한 뒤 고공행진 중이다. 최근엔 "항공기 100대를 신규 주문하겠다"며 공격적인 투자 계획까지 밝혔다. 17개의 도시를 운항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계획도 내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스웨스트는 몇 달 안에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어떻게 이 항공사가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것일까.

승객들이 미국 덴버 국제공항 사우스웨스트항공 발권 키오스크와 데스크에서 항공권을 발권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선 사우스웨스트는 미국 국내 수송 중심이다. 국내 여객 수송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각국의 봉쇄조치로 인한 국제선 여객 급감의 영향을 피할 수 있었다. 경영 전략이 시장 환경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 서프라이즈 실적을 낸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국내 수송에 집중하는 다른 항공사나 LCC는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리 켈리(Gary C. Kelly) 사우스웨스트 회장 겸 CEO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켈리 회장은 올 1분기 실적발표를 하면서 "PSP(급여지원프로그램, 한국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에 감사한다"며 연방정부에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이런 지원이 없었으면 1분기 순손실은 10억 달러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직원들의 인건비를 회사가 모두 부담했다면 엄청난 손실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직원을 해고할 뜻이 없었다는 의미다.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공항 사우스웨스트항공 탑승 카운트 앞에서 승객이 의자에 앉아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PSP는 연방정부가 지난해 3월부터 전체 고용인원의 90%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6개월 동안 250억 달러를 항공사에 지원한 고용유지지원금이다. 지난해 9월 PSP가 끊기자 각 항공사는 곧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유나이티드항공은 3만6000명에게 해고 통지를 했고, 델타항공은 기장과 부기장 2000여 명을 감원했다. 그러나 사우스웨스트는 "우리에게 직원 해고는 없다"고 천명했다.

이전에도 사우스웨스트는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다. 당시 미국 항공업계에선 12만명이 해고됐다. 사우스웨스트는 단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그 DNA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도 빛을 발한 셈이다.

켈리 회장은 연방정부에 감사를 표한 뒤 "특히 수 만명의 직원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비행수당 등이 사라져 월급봉투가 쪼그라든 상황에서도 견뎌준 직원에게 서프라이즈 실적의 공을 돌린 것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직원이 발권 키오스크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직원들은 코로나19로 경영 사정이 나빠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통을 분담했다. 직원의 28%인 1만7000여 명이 자발적으로 휴가 연장(또는 휴직 연장)을 하거나 교육을 받겠다고 신청했다. 남아 있는 직원은 예전보다 더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하고 고객을 대했다. 승무원이 승객의 짐을 날라주는가 하면 발권기 등을 환경미화원에게 맡기지 않고 직원이 직접 소독작업을 하는 등 치열한 생존 경쟁에 동참했다.

이런 정신은 고(故) 허버트 D. 켈러허(Herbert D. Kellerher, 애칭 Herb) 회장 시절부터 다져졌다. 직원과 함께 하는 'FUN 경영'이다. '직원이 웃어야 고객을 잘 대하고, 주주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정신이다. 주주나 고객보다 직원 우선주의다. 실제로 켈러허 회장은 생전 "고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켈러허 타계 소식에 직원들이 실은 전면 광고. 딕테일러 블로그 캡처

2001년 6월 켈러허 회장이 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 조종사들은 돈을 모아 'Thank you HERB!'라는 신문 광고를 냈다. 2019년 1월 켈러허 회장이 타계하자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Thank you for always remembering our names(우리의 이름을 기억해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전면 광고를 실었다. 애사심과 충성심을 짐작케한다.

향후 경영전망도 밝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몇 달 동안 휴가 중인 조종사와 승무원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켈리 회장은 "6월 예약의 35%가 완료되는 등 예약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며 "직원들에 감사하고, 우리는 갈 길이 멀지만 매우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백신 효과와 맞물린 덕도 있지만 결국 사우스웨스트 특유의 직원 중심 경영 방침이 원동력인 셈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는 "한국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 사우스웨스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창사 이래 최대 이익'이라는 실적발표를 할 때 '직원들과 제대로 나누고 있는지'를 따지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경영 상황이 조금만 어려우면 구조조정 카드부터 꺼내는 기업에 경종을 울릴 만하다. MZ 세대가 문제 삼는 것도 이런 경영 태도다. 단순히 성과급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최근 ESG 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 양태를 보면 수치 맞추기식 포장형 ESG로 흐른다"며 "사우스웨스트항공처럼 스토리가 흐르고, 감동과 공감이 있는 ESG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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