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트코인 최고가 찍은 날, 2030은 예·적금 통장 깼다
안정적 투자금 암호화폐 유입

비트코인이 8000만원을 넘나들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기간 동안 2030세대가 예·적금을 무더기 중도해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부터 2030세대의 예·적금 해지 증감률도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시세 변동을 추종하며 이뤄졌다. 이 세대의 ‘벼락거지’ 공포증이 안정적 투자자금마저 투기성이 큰 암호화폐 시장으로 견인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국민일보가 27일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2030세대 월별 예·적금 중도해지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달 둘째 주에 보기 드문 현상이 눈에 띄었다. A은행에서 지난 10~11일 각 1000여좌에 불과했던 중도해지 건수가 12일 3309건으로 3배 넘게 급증했다. 13일(3042건), 14일(3269건)을 거쳐 15일(4303건) 최고치를 기록한 뒤 16일에도 3214건이나 해지됐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에 비트코인 시세는 8000만원을 돌파했다. 비트코인은 지난 11일 7800만원 고지를 달성한 뒤 13일 8000만원을 넘어섰다. 14일에는 8199만40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16일까지 8000만원대를 넘나들다 7900만원 선에서 장을 마감했다. A은행 지점 직원은 “요새 2030세대가 창구에도 예·적금 해지를 하러 많이 온다”며 “암호화폐 투자용인 것 같은데 말리고 싶어도 말도 못 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 은행 통계를 합산해보면 이 세대의 예·적금 해지 건수는 지난해 4분기부터 비트코인 시세를 한 달의 시차를 두고 따라 움직였다.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해 10월부터 월별로 24.3%, 36.6%, 50.3% 급등하다 올해 1월 13.6% 오르며 상승 폭이 꺾였다. 2030세대의 예·적금 해지 건수도 11월 5.2%에서 7.8%(12월), 8.1%(1월)로 늘어났다.

지난 1월 비트코인 시세가 꺾이자 2월 해지 건수는 20.0%나 급감했다. 그런데 다시 2월 비트코인이 42.3% 오르며 '불장'(대상승장)을 이어가자 3월 해지 건수도 갑자기 12.2% 급증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11월 최고 14.3% 상승한 뒤 횡보하면서 3월에 1.6% 오르는 데 그쳤다. 사실상 상승장에서 추격 매수하기 위해 해지 자금 상당 부분이 증시가 아닌 암호화폐 시장으로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원회가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분기 4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신규 가입자 249만5000여명 가운데 63.5%인 158만5000여명이 2030세대로 집계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1월은 연중 중도해지 건수가 가장 적은 달인데 올해엔 해지 건수가 상당히 많았다"며 "주식과 암호화폐 등에 대한 투자 수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세대에서 예·적금을 해지해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드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모(27)씨는 지난해 12월 아르바이트 월급을 저금해온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원화시장에 상장된 '앵커' '스와이프' 등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암호화폐)에 투자를 시작하다 성에 차지 않자 더욱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마켓의 '레이븐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씨와 함께 투자를 시작한 유모(27)씨는 "'불장에 벌어놔야 한다' '지금 돈을 못 벌면 바보'라는 말에 급하게 투자를 시작했다"면서 "어차피 예금에 돈을 넣어놔도 이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월급쟁이로 살면서 집을 사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계속되는 정책 실패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로 정부의 '투기 경고'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모(33)씨는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엔 폭등했다"며 "고위층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데 젊은층이 코인으로 돈을 번다고 비난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조바심이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트코인 구매는 투자라기보다 투기에 가깝다"면서 "비트코인을 소유한다고 해서 그 기술력을 소유하는 게 아니다.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자산"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가상자산(암호화폐)을 거래하며 발생한 소득에 대해 조세형평성 상 과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와 관련한 입법조치는 완료됐다"고 강조, 일부에서 제기된 암호화폐 과세 유예 주장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지훈 강준구 조민아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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