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도 맞았다, 자궁경부암 백신".. 남녀 같이 접종 때 효과↑

민태원 2021. 4. 2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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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암外 남성암 원인되기도
40개국, 남자청소년에 예방접종
한국도 무료접종 대상 포함 검토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해 남성의 HPV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TV광고. HPV백신은 여성의 자궁경부암 뿐 아니라 남성의 생식기 사마귀, 음경암, 항문암 등도 예방하는 걸로 밝혀져 남자 청소년과 젊은 남성의 접종이 함께 권고되고 있다. 제약사 제공


“나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받으러 가.” “형은 자궁이 없잖아.”

최근 유명 남성 연예인들이 출연한 TV광고의 내용이다. 남성들의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에 대한 인식이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하면서 남성의 접종 필요성을 담은 TV광고까지 등장했다. 실제 산부인과를 찾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대학생 정하동(20·가명)씨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가 남녀 누구에게나 흔히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여자친구와 함께 산부인과에서 예방주사를 맞았다. 이후 두 차례 추가 접종하며 SNS에 인증해 다른 친구들의 접종을 권하고 있다. 직장인 김세훈(21·가명)씨는 최근 사귀게 된 여자친구로부터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권유받고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병원을 찾으니 자신처럼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온 젊은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


국내 여성암 8위인 자궁경부암은 HPV 감염에 의해 대부분 발생하는데, 주로 성관계나 성접촉을 통해 옮는다. HPV는 생식기와 항문 주변에 서식한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돼도 특별한 증상이 없고 감염 또한 일시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기적 검진(자궁세포진 검사)을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제때 접종할 경우 90% 이상 예방효과를 볼 수 있어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의 접종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여성만 해당되는 자궁경부암 백신 대신 ‘HPV 백신’으로 불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HPV는 성접촉(구강성교 포함)을 통해 여성 파트너에게 전파되기도 하지만 남성의 생식기 사마귀, 항문암, 음경암, 두경부암(특히 목구멍 안쪽 깊숙한 곳에 생기는 편도암, 구인두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은정 인제대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26일 “HPV 유형 중 16형과 18형은 항문암의 약 90%, 편도암·음경암의 상당 부분을 유발한다. 또 6형과 11형은 재발이 잦은 성기 사마귀 원인의 9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기경도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근래에는 일부 두경부암도 HPV 감염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했다.

남녀 모두 HPV 백신을 접종했을 때 HPV 관련 질환으로부터 예방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 유럽연합의 모델링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 청소년과 20대 여성이 단독으로 백신을 맞았을 때보다 남녀 모두 접종했을 때 HPV 유병률이 현저히 감소했고 남성의 HPV 감염이 줄면 여성의 HPV 관련 질병도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HPV 백신은 HPV에 노출되기 전, 성경험 전에 맞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는 정규 HPV 예방접종은 남녀 모두 11~12세에 권장하되, 9세부터도 투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6년부터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NIP)으로 만 12세 여성 청소년에게만 2회 무료로 맞게 하고 있다. 2가 백신(16·18형 HPV 예방)과 4가 백신(6·11·16·18형 예방)이 NIP에 사용된다. 첫해 완전 접종률(1·2차 모두 완료)은 54.1%에 그쳤으나 2019년엔 71.8%로 높아졌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만 12세 여성 청소년만 지원해 ‘반쪽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NIP 대상 17종 가운데 HPV 백신만 성별을 갈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도 HPV 백신 접종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남녀 모두의 건강을 위한 것’으로 의미를 확대하고 있다. HPV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도입한 전세계 113개국 중 미국 캐나다 호주 등 40개국이 이미 남아(청소년) 접종까지 확대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HPV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도입한 35개국의 절반 이상(18개국)이 접종 대상을 남아까지 넓혔다.

이런 추세에 맞춰 보건복지부도 최근 공개한 ‘4차암관리계획(2021~2025년)’에 예방 가능한 암의 하나로 자궁경부암을 정하고 HPV 백신 무료 접종 대상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하반기에 전문가 논의를 통해 현재 만 12세 여성 청소년으로 한정된 무료접종을 11세로 낮추거나 남자 청소년을 포함하는 등 지원 확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청도 올해 2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의 HPV 백신 대상 확대에 대한 서면 질의 답변에서 “남자 청소년까지 확대하며 제공 백신도 2, 4가 백신에서 9가 백신(6·11·16·18·31·33·45·52·58형 HPV 예방)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 효과성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9가 백신에 포함된 9가지 HPV 유형은 자궁경부암, 질암, 외음부암, 항문암 등 HPV 관련 질환 원인의 약 90%를 차지한다. 최 의원은 지난해 11월 HPV 백신 접종 연령과 성별을 18세 미만의 남녀 모두를 포함하는 내용의 ‘감염병 예방·관리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와 별도로 대한감염학회는 2019년부터 HPV 백신 접종 권고 대상에 남자 를 새롭게 추가했다. 개정 지침서에 따르면 HPV 16·18형과 관련된 음경암·항문암 구인두암 및 HPV 16·11형이 일으키는 생식기 사마귀와 재발성 호흡기 유두종(주로 감염 임신부에서 태아로 전파됨)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9~21세 남성까지 접종을 권고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감염인을 포함한 면역 저하자,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26세까지 받도록 했다. 학회는 “남자 청소년이 HPV백신을 맞을 경우 미래 성 파트너의 자궁경부암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11~12세 접종을 권장하되 이전에 백신을 맞지 않았거나 정규 백신접종 일정을 완료하지 못한 경우 13~26세에도 접종하도록 권하고 있다.

최 교수는 “백신 효과가 가장 좋을 때는 HPV에 최초로 노출되기 전이지만 백신 적정 연령 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항체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방 접종으로 보호할 수 있는 HPV 유형에 이미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성경험 및 접촉 후에 HPV 백신을 맞을 경우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HPV 백신 접종이 보호하는 유형 가운데 아직 감염된 적 없는 유형에 대해서는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 감염될 수도 있는 HPV 유형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접종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PV 백신은 3회 접종 기준으로 2가 백신은 평균 42만원, 4가 백신은 50만원, 9가 백신은 60만원이 든다. 남성의 경우 산부인과는 물론 비뇨의학과, 일반내과 등에서도 접종 가능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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