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익숙함을 되돌아 볼 때

문채석 2021. 4. 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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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스스로 저장된 사진 몇 장을 편집해서 바탕화면에 띄워 놓는다.

주차장은 마치 전기기호 옴(Ω)처럼 입출구가 하나로,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아 주차하는 것 같았다.

돌아보면 1980년대 음주운전도, 1990년대까지 교통경찰에게 지폐를 내미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비서에게 성희롱하는 언사는 농담과 비슷한 익숙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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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스스로 저장된 사진 몇 장을 편집해서 바탕화면에 띄워 놓는다. '2년 전 오늘' 사진이 열린다.

일본 사가현의 환상적인 15만평 철쭉의 장관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에 이어 유명 건축물인 다케오시 도서관에서 찍은 사진이 나온다. 그런데 일행 모두 얼이 빠져 있다. 창피했던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 일이 일어나리라곤….

갑자기 싸게 나온 주말 항공료에 싼 렌터카 비용, 예상치 못했던 미후네야마 라쿠엔의 철쭉의 장관을 보니 이번 여행, 참 운이 좋다고 생각들 했다. 그런데 인구 5만의 소도시 다케오시의 공공 도서관은 100만이 찾는 명소라 주말 차량이 몰려 주차장 근처부터 줄을 서야 했다.

주차장은 마치 전기기호 옴(Ω)처럼 입출구가 하나로,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아 주차하는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반대편에 주차된 차량이 나가는 것을 보고 운 좋게 몇 미터쯤 후진해 깔끔하게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저 멀리서 모자 쓴 주차 요원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손짓 발짓 서툰 영어와 일어를 통해 일방통행인 주차장 안에서 우리는 몇 미터 역주행을 해 차례차례 주차하는 규칙을 어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더니 줄줄이 서 있는 차 속 운전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빵!빵 !'하고 경적을 울리진 않지만 머릿속에서 더 큰 경적이 울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스미마센"을 연달아 외치며 차에 올라타 다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주차를 마쳤다. 사진 속 얼빠진 표정은 그렇게 나타났다. 이게 문화의 차이인가? 우리나라 주차장에선 들어온 순서에 상관없이 빨리빨리 주차하면 그만인데…. 그후 주차장에서 많은 시간이 걸리고 새치기를 당해도 역주행하는 버릇이 없어졌다.

얼마 전 대구의 한 식당 주인이 도로 가운데에 차를 주차해 놓고 짐을 부리다가 뒤차와 시비가 붙어 욕하는 장면이 뉴스를 탔다. 뒤차에 '중앙선 넘어 지나갈 수 있는데' 왜 시비냐고 아들과 같이 욕을 했다가 가게 간판을 내릴 정도로 후폭풍이 거세다. 동영상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2년 전 그 사진을 보고 생각해 본다. 도로에 험하게 주차한 이는 자기 가게 앞이라 익숙해서 그랬을 터다. 아주 오랫동안 매일 편하게 주차하고 짐을 부렸을 것이다.

그의 거침없는 도로의 불법 주차와 우리가 일본서 저지른 주차장에서의 역주행도 익숙함에서 나온 실수 아닐까? 대구 사건은 도가 지나쳤다고? 그렇다면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현재 공유되는 시민의식의 수준인가?

돌아보면 1980년대 음주운전도, 1990년대까지 교통경찰에게 지폐를 내미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비서에게 성희롱하는 언사는 농담과 비슷한 익숙함이었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을 가혹할 정도로 훈육하는 것도 허용되는 익숙함이었다. 군대 내무반이나 학교에서의 익숙했던 폭력이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공무상 알게 된 정보로 투기해서 부를 키우는 것도 과거부터 익숙해져 있던 것 아닐까?

우리에게 무서운 것 두 가지가 있다. 몸에 밴 익숙한 것과 그 익숙함을 거부하는 시민의식의 변화다. 익숙함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어느 순간 성숙해진 시민들의 무서운 질타를 받을 것이다.

익숙함을 돌아볼 때다. 익숙함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 개혁이다.

서재연 미래에셋증권 갤러리아WM 상무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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