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한미 '백신' 정상회담..文의 선물은

2021. 4. 2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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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일본 정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대부분 정권은 언제나 정권 말기에 ‘역사의 평가’를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많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정권이 역사를 의식한다는 것을 두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역사의 긍정적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그만큼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현 정권 역시 ‘역사의 평가’를 의식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장기적 안목으로 정권의 업적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다.

현 정권은 출범 초기 두 가지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으려 했다. 하나는 소득주도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의 급속한 상승으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와중에 코로나19까지 덮쳐 그 본래적 취지를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한계에 부딪혔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자체는 온 국민의 열망이다. 하지만 북한에 있어서 핵은 김씨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평화 프로세스가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는 많이 다르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대북 문제 전문가가 많지 않았던 반면, 바이든 행정부 내에는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다수 포진해 있다.

종합해보면 바이든 행정부에 남북 관계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겠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 관계 정상화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우리의 생존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안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다. 반면 코로나19 백신 문제는 국민 생존권과 관련한 발등의 불이다.

지난 4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는 미일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이 정상회담 뒤에 채택된 양국 공동성명에는 북한 핵에 대한 내용도 있다. 여기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라는 용어는 빠져 있다. 대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기 때문이다. 북한이 CVID라는 용어를 매우 싫어한다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여줬다고 평가할 만하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입장은 4월 19일(현지 시간) 공개한 미국 국무부의 ‘2021 군비통제·비확산·군축 이행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북한의 지속적인 핵개발이 2018년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를 지키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임을 지적했다. 결국 현재 미국은 대북 제재 완화를 통해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미일 정상 간 공동성명에는 중국 견제를 위한 강력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공동성명에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실현을 위한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시에 대만·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남·동중국해 관련 사안까지 거론하며 ‘중국 견제’에 미국과 일본이 함께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대만과 관련해서는 “대만 해협의 평화·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권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일 공동성명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일본은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 주도 쿼드에 호주, 인도 등과 함께 적극 참여하고 있고, 미국의 다른 대중국 압박 정책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미국 요구를 적극 들어주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 상원에서 발의된 ‘전략적 경쟁법 2021’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법안에서 우리나라는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권장하고 긴밀히 조율해야’ 하는 나라로 취급된 반면 일본은 군사·경제·과학·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 대상으로 기술돼 있다. 이런 미일의 화기애애한 정상회담 분위기 속에서 스가 수상은 화이자 측과 직접 통화해 전 국민 대상 접종이 가능한 수준의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 수급 수량과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최소 1억회 접종 분량에 9월 말까지 새로 공급받은 물량을 일본 전국에 공급할 예정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백신 물량 확보는 미국 정부의 묵시적 혹은 간접적 동의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은 백신 확보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구사하려 할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외교는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미국에 백신을 요구하려면, 우리도 미국에 뭔가를 내줘야 한다. 미일 정상회담을 보더라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대중국 압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쿼드에 참여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미국이 쿼드같이 대중국 압박에 우리도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면, 중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는 현 정권은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우리가 미국 요구를 거부하면 미국도 우리의 백신 요구를 거부할 것은 확실하다. 정부는 감염자 숫자가 늘고 있고 변이 바이러스 유행 가능성도 거론되는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결국 현재 중국보다는 미국 도움이 절실하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월 20일 국회에서 “(지난해 방역 상황과 관련해) 정부가 조금 안이하게 대처한 측면이 있다고 솔직히 인정을 한다”며 “백신 도입에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을 정도로 했느냐 하는 것에 대해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런 솔직함이 필요하다. 잘한 일이다. 그런데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쿼드 참여와 백신 문제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정부 입장이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미일 정상회담 결과와 비교되는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다. 일본은 정상회담 직후 충분한 백신을 확보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해 러시아 백신을 알아보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주목하는 이유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6호 (2021.04.28~2021.05.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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