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중 반도체 전쟁 와중에 이재용 사면 필요한 이유

2021. 4. 2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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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대한민국 사활 직결돼
공동체에 끼친 손해 변상할 기회
김진명 소설 ‘사드’ 작가

금속활자, 한글, 그리고 반도체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세 기둥이다. 금속활자의 현대판이 반도체인 만큼 한국이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이자 버팀목인 반도체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마비시킨 데 이어 신임 바이든 대통령은 아예 웨이퍼를 손에 쥔 채 반도체 세계 장악을 선포했다.

바야흐로 불붙은 이 전쟁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팹리스(Fabless)와 파운드리(Foundry), 즉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와 위탁 생산이다. 한국은 이 부문에서 미국 인텔은 물론 대만 TSMC보다도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이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 100명을 만난다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을 비롯한 경쟁자들이 세계를 누비는 동안 이 부회장은 교도소에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격렬한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삼성전자가 두 손 두 발 묶인 채 시간을 허비하는 현실을 대하며 우리는 ‘이재용 없는 삼성전자’라는 화두에 관심을 뻗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회장이 없다고 삼성전자가 안 될 게 뭐 있나” “전문경영인이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이 한국사회 일각에 팽배한데 과연 그럴까.

LG와 SK하이닉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착각이란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생전에 노구를 이끌고 반도체에 뛰어들 때 LG의 우수한 전문경영인들은 주저하다가 오늘날의 격차를 야기했다. 하이닉스가 인수자를 찾아 헤맬 때 외면하기 바빴던 유수의 전문 경영인들은 최태원 회장이 지금의 SK하이닉스를 이루자 아쉬워하고 있다.

1년간 주가가 열 배로 뛴 테슬라를 보라. 일론 머스크의 존재야말로 수십조원 투자를 시시각각 결단해야 하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이재용 없는 삼성전자’가 버틸 수 없다는 걸 웅변한다. 결론적으로 반도체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이기느냐, 지느냐는 이 부회장의 사면·복권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법적 정의를 포기하고 무조건 사면하자는 게 아니다. 그의 사면·복권이 현대 국가의 형법에 내재한 시대정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과거의 국가는 범죄를 처벌할 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보복적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현대 국가는 인격과 범죄를 분리해 범죄자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공동체에 초래한 손해를 변상하도록 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려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복잡한 현대 사법에서는 행형(行刑)이 보복 수단으로 전락하는 걸 막는 게 공동체 구성원을 위한 최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특검이 제기한 죄목이었지만, 청탁하지 않으면 ‘이재용이 아닌 박재용’이 승계했을까. 대법원 판결이 끝났으니 사법적 판단에 왈가왈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처벌에 있어서만은 이 부회장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해서 사회에 끼친 손해를 변상토록 하는 게 가장 효과적 단죄라 본다.

미·중 패권 전쟁과 한반도 생존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의 흉중을 드러내자면, 이 부회장의 사면·복권과 경영 복귀가 지금 대한민국의 시급한 선택지가 돼야 한다. 또한 광복절도 연말도 아닌 부처님오신날이 타이밍이다. 시간을 더 잃으면 지금 한창 이합집산하는 반도체 산업은 치명타를 입고, 대한민국도 타격받을 것이다. 현대차가 시스템 반도체를 못 구해 휴업하는 걸 보라. 문재인 대통령도 이 부회장의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돕겠다 하지 않았는가.

김진명 소설 ‘사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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