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거래소 폐쇄" 엄포뿐..암호화폐 광풍 손놓은 당국

황의영 2021. 4. 2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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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에 대한 우려가 커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난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다. 그런데도 이 내용이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 22일 "9월까지 실명 계좌로 전환하지 않는 거래소는 다 폐쇄될 수 있다"고 말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경고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3년 전과 비교해 암호화폐 시장이 급격히 커졌지만, 정부의 대응은 그대로다. 시장을 겨냥한 엄포만 늘어놓을 뿐,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는 형국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래소 폐쇄" 엄포 놨지만…
정부의 입장은 한결같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다. 은 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암호화폐는 인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다"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의 실체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니, 투자 역시 투자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5일 "암호자산이 지급 수단으로 제약이 많고 내재가치가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 인식이 이렇다 보니 대응책도 원론적 수준에 그친다. 암호화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다 보니 관련법이나 규정이 사실상 전무하다"며 "직접적인 규제나 투자자 보호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자금 세탁과 사기, 불법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이 전부다. 오는 6월까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10개 부처가 진행한다. 하지만 '칼날 없는 칼'을 뽑았다는 지적이다. 투자자 피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금융당국은 시장 관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몇 곳인지, 거래대금이 얼만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은 위원장도 "암호화폐 거래액 17조원의 실체도 확인이 안 되고 있다"며 "도박판의 판돈처럼 (돈은) 조금 들어갔는데 계속 손 바꿈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빗썸 강남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에 책임 돌린단 지적도
당국이 암호화폐에 대한 관리책임을 은행 등에 떠넘기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국내의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려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산 뒤 국내 거래소에서 비싸게 팔아 차익을 챙기는 일명 '환치기'가 성행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 은행들에 현행법 안에서 암호화폐 관련 내부 통제를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내부 통제에 의존해 잘 막아달라는 것인데, 은행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거래소 검증도 은행 몫이 됐다. 최근 개정된 특정금융거래법상 암호화폐 거래소는 은행에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좌를 받아 영업하고, 은행은 해당 거래소가 안전한지 등을 검증해야 한다. 현재 은행과 실명 계좌를 개설해 영업하는 곳은 업비트(케이뱅크), 빗썸과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4곳뿐이다.

정부의 안일함에 여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암호화폐 정책,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며 박 전 법무장관과 은 위원장을 모두 비판했다. 이 의원은 "2018년 이후 별다른 정책 없이 3년이 지났다. 암호화폐 시장을 막기보다 시장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를 보호하고 신산업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암호화폐로 번 소득에 세금(연간 250만원 넘는 금액의 20%)을 걷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비판이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금융위는 정신 좀 차리라"며 "인정할 수 없으면 대체 왜 규제를 하고, 세금을 매기느냐"고 질타했다.

이미 커져 버린 시장에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제도화 불가'만 외쳐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암호화폐 문제를 해결하려면 '업권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업권법은 영업·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법을 뜻한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업권법 제정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라고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의 투명성,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시 제도 등이 담긴 암호화폐 규제 방향과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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