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에겐 윤여정같은 '어른 친구'가 필요했다

김용현 2021. 4. 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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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전설적인 배우"라는 정이삭 미나리 감독의 소개에 그가 "내가 늙었다는 뜻이잖아"라고도
영화 '미나리' 윤여정.


“나는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한 외신 기자가 윤여정을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불린다’는 데에 관한 그의 답이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조연상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그의 대답이 ‘자랑스러운 한국 배우’라는 ‘국뽕’ 류의 답변으로 소비되기도 하지만, 그가 그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믿을만한 어른이었기 때문에 울림이 큰 건 아닐까.

영어 문화권 사람들에게 ‘세비지(Savage: 거침없이 솔직한)’로 표현되는 윤여정의 모습에는 권위 앞에서도 자기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 담겨있다. 윤여정은 지난 11일(현지 시간) 영국 아카데미상 수상 당시 영국인을 향해 ‘Snobbish(콧대 높은)’라는 표현을 썼고, 지난해 초 선댄스영화제에서 “한국에서 온 전설적인 배우”라는 정이삭 미나리 감독의 소개에 그가 “내가 늙었다는 뜻이잖아”라고 답했다.

이런 표현은 말 한마디 찰나에도 ‘권위 높은 상’ ‘연륜’ 등 권력을 내려놓으면서도 윤여정을 드러낸다. 스브스뉴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도 ‘윤며들다(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젊은 세대의 신조어를 듣자 그는 “비호감 1위였던 때도 있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답한다. 그 모습에서도 “고맙다”는 뻔한 답 대신 스스로 존재하고 싶어하는 균형 감각이 엿보인다.

20·30세대가 윤여정에게 ‘윤며드는’ 이유는 그가 만드는 거리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과거 tvN ‘꽃보다 누나’에서 “60세가 돼도 인생은 몰라요. 나도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살은 처음이야”라는 발언은 자주 회자된다. ‘꼰대’ 어른들의 섣부른 간섭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윤여정의 거리두기에 환호하게 된다. 그의 표현에는 무관심한 듯 같은 층위의 인간으로서 공감이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조금 부족한 자신의 모습이라도 꾸밈없이 솔직히 드러낸다. 특히 영어에 관해서라면 자신 없는 그다. 윤여정이 최근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tvN ‘윤스테이’에선 외국인 숙박객을 접객하는 호스트를 맡았는데, 영어를 쓰는 데에 어색해한다. 그러면서도 역할에 충실해 최선을 다해 외국인들을 맞이한다. “영어 못하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 그 프로그램 안 봤다”고 말하기도 한다.

윤여정은 지난해 EBS 아동용 캐릭터 ‘펭수’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나온 펭수의 특유의 돌직구 발언으로 2030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 끈 바 있다. “사장님이 친구 같아야 회사도 잘된다”라는 발언으로 권위에 도전하고, “화해했어요. 그래도 보기 싫은 건 똑같다”며 통념을 무너뜨리는 모습에서 펭수는 도드라졌고, 젊은 세대는 공감했다.

윤여정 특유의 균형 감각은 그의 삶이 비주류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조영남과의 결혼에 실패한 후 ‘이혼녀’라는 낙인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데에 어려움 겪었다. 결혼 생활을 포함하면 10여 년의 공백이었다. 당시 이혼에 관한 국민 정서는 격했다. 절친한 친구인 김수현의 드라마들(‘어미’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이 윤여정을 구원했다. 윤여정은 그래서 그런지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야”와 같은 말을 인터뷰에서 자주 되새긴다.

그의 ‘홀로서기’가 곧 외톨이를 말하는 건 아니다. 2005년 ‘바람난 가족’ 개봉 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애들 맞춰서 열 번, 스무 번을 찍더라고. 돈은 알고 보면 걔네들이 더 많이 받는데. 나 그럼 미치겠어”라고 하다가도 “인정옥 작가가 계속 신인 애들이 나오니까 나는 앞으로도 험난한 길을 걸어야 된다는구먼”이라며 자신을 긍정한다. “내가 원치 않은 경험에서도 얻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 그의 뿌리들이다.

윤여정은 그래서 열려있다. tvN ‘윤식당’에서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된다.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소신 발언을 던지기도 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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