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올드무비㊴] 임영웅의 시작, '영웅본색'

홍종선 2021. 4. 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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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웅본색'의 히어로, 배우 주윤발 ⓒ조이앤시네마 제공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 전성시대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시기, 국내 또한 일색인 게 자연스러운 현상일 터인데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TV조선 ‘미스터트롯’이 배출한 트롯맨들이 있다. 경연이 끝난 지 1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개별 스타가수를 배출한 게 아니라 가요계 프레임을 바꿨다. 족히 20년 이상 지속해 온 걸·보이그룹 중심의 인기 체제를 트로트를 축으로 다시 세웠다.


지난주 ‘올드무비’ 코너에서 영화 ‘나비효과’를 소개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커다란 폭풍을 몰고 온다는 카오스이론을 주인공 에반이 다시 쓰는 네 번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2020년 시동을 건 ‘트로트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한 ‘나비의 날갯짓’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텍사스주의 허리케인의 원인을 중국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까지 역추적하듯 되짚어보면 수많은 변수가 관여하고 공헌했음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더 멀리 가지 않아도 한 세기 전의 김정구, 현인, 백설희, 신카나리아 시대로부터 트로트라는 장르에 묶이지 않아도 우리의 감성을 담은 노래를 불러 라이벌 구도 속에 불세출 스타로 남은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를 지나 주현미, 김연자처럼 일 순간 남녀노소가 함께 따라부르는 히트곡을 내던 가수들과 ‘4대 천왕’이라 불리는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가 받던 인기를 한 몸으로 감당해 낸 장윤정이라는 거물, 그 사이사이 강진, 진성, 김용임, 김혜연, 유지나, 박주희 등 TV에 얼굴 자주 비추지 않아도 혹은 출연한 적조차 없어도 전국의 행사 무대와 장터에서 온 국민과 호흡을 맞췄던 이들이 트로트를 일구고 지켜왔기에 오늘의 ‘트로트시대’가 가능했다.


'미스터트롯' 톱6. 왼쪽부터 임영웅, 영탁, 김희재, 정동원, 이찬원, 장민호 ⓒTV조선 제공

그러함에도,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약을 치며 정성을 들인 농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활짝 핀 꽃들에 화분을 옮겨줄 나비가 필요하다. 그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미스터트롯’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고, 그중에서도 톱7의 역할이 크다. 특히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 김희재, 정동원은 마치 혼자 또는 다 함께 시리즈를 이어가는 ‘어벤져스’ 팀처럼 개별 신곡을 발표하는가 하면 여러 예능을 넘나들며 2021년 가요계를 트로트로 물들이고 있다. 신의 아들 ‘토르’ 영탁, 바름의 표본 ‘캡틴 아메리카’ 장민호, 정통트로트 괴물 ‘헐크’ 이찬원, 활 쏘듯 몸 잘 쓰는 ‘호크 아이’ 김희재, 귀여운 막내 ‘스파이더맨’ 정동원, 그리고 리더 격의 ‘아이언맨’ 임영웅.


누구 하나 빠져도 안 되는 각자 개성이 다르고 매력이 다른 어벤져스 톱6이다.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기의 선봉에 서서 트로트시대의 지속가능성을 키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아이언맨’ 임영웅이다. 1등으로 미디어의 조명 등 혜택도 많이 누리지만 거센 바람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도 그다. 1등의 무게, 진의 책임감은 만만치 않다.


임영웅을 놓고 나비효과를 역추적해 본다. 살아온 마디마디의 선택과 노력이 오늘의 가창력, 환한 미소, 어쩐지 정이 가고 지켜주고픈 매력을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가수는 노래, 그것도 제목처럼 산다고들 말한다. 사람은 이름값을 한다고도 한다. 지난해 초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을 처음 보았을 때, ‘영웅’이라는 이름에 깜짝 놀랐다. 본명이 영웅,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희망도 컸겠지만, 고충도 있었을 것이다. 독특한 이름, 그것도 비범한 ‘HERO’를 본명으로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고충이 엄마의 마음으로 느껴졌다.


조회수 7억 8000만을 돌파한 임영웅의 'Im HERO' 채널. 임 히어로, 나는 영웅, 영웅시대. 센스 넘치는 작명 ⓒ유튜브 화면 캡처

2021년 새해 첫날, 임영웅의 큰아버지 임비호 씨는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임영웅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사연을 전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영웅의 아버지 임용호 씨와 그 형의 30년 전 대화가 복원됐다.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하자면,


“영웅이가 백일쯤 됐을 때일까요? 동생이 아기 이름을 지어왔어요. ‘영웅’이라데요. 내가 뭐라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군인 출신 아버지가 우리 이름을 비호며 용호로 지어놔서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는데, 이제 아기 이름까지 ‘영웅’이라 지어서 무슨 ‘무협지’ 쓸 거냐 하면서요.”


“그랬더니 용호가 형이 알아서 지어보라더군요. 근데 영웅이란 말에 나도 끌렸던지 아기를 향해 ‘영웅아’ 하고 불렀더니 배시시 웃어요, 그 조그만 것이. 그래 이게 네 이름인가 보다 하고 ‘영웅’이로 하자고 했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당신이 영웅 ⓒ조이앤시네마 제공

임영웅도 영웅의 탄생, 작명 스토리를 보탰다. 지난 3월 10일 방송된 ‘뽕숭아학당’에서 임영웅은, 아버지가 영화 ‘영웅본색’을 좋아해 아들의 이름을 ‘영웅’으로 지었다고 전했다. 세상에 영화 제목에서 아이 이름을 따오다니! 싶지만 당시를 회상해 보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영웅본색’은 1986년에 나온 1편의 범 아시아적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2편, 1989년에 3편까지 내리 제작·개봉했다. 주윤발의 롱 트렌치코트와 입에 문 성냥개비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형제애와 우정, 그를 바탕으로 한 ‘의리’라는 뭇 남성들의 로망을 대변했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본 듯 열광했다.


아마도 임영웅의 선친께서는 영화 제목보다는 그 주제의식에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유지를 담아 이름을 지으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이름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임영웅은 평범을 넘어 비범하게 이름값 하는 가수가 됐고, 2020년대를 ‘영웅시대’로 만들고 있다.


마크, 아호, 아걸의 사투 ⓒ조이앤시네마 제공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 지난달 배우 박성웅이 트롯맨의 액션스쿨 멘토로 등장한 ‘뽕숭아학당’을 보며 ‘영웅본색’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1편을 봤다. 디지털 리마스터링도 된 상황, 휴대전화 작은 화면으로 보고 싶지 않아 TV로 구매해 홀로 추억에 젖었다. 청춘에 봤던 영화를 나이 들어 다시 보면 무척 새로울 때가 많다. 내가 이 영화를 봤던가 싶을 만큼 변화된 가치관과 깊이 알게 된 인생의 맛으로 음미하니 처음 보는 영화처럼 다가온다. 신기하게도 ‘영웅본색’은 처음 봤던 느낌 그대로다.


‘영웅본색’ 1편(감독 오우삼, 수입·배급 조이앤시네마)의 배우 이름은 적룡, 장국영, 주윤발 순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필자의 눈엔 주윤발이 주인공으로 보였다. 분명 아호(적룡 분)과 아걸(장국영 분) 형제의 이야기인데, 경찰이 된 동생을 위해 흑사회 큰형님의 자리를 포기하고 새롭게 살려는 형과 그런 형을 믿고 기다려주기는커녕 원망에 혈안이 되어 못 잡아먹어 안달인 동생이 주인공인데. 혈육이라는 이유로 아호의 1순위는 늘 아걸이건만, 마크(주윤발 분)는 아호에게 친형제 이상의 우애와 헌신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질투는커녕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형제애를 넘어서는 우정과 의리를 마크가 보여준다.


35년 전에도, 지금도 주윤발이 연기한 마크에 이입시켜 영화를 보는 나를 발견한다. 멋진 트렌치코트와 성냥개비 덕만은 아니다. 다시 보니 그때 잘 못 봤던 게 보이기도 했다. 마크를 멋있게만 기억했는데, 영화 중반까지 주윤발이 ‘깨방정’을 떨며 귀여운 연기를 한다. 아호를 위한 복수를 하고 조직에서 밀려나 쇠락해 갈 때, 뭘 먹어도 분노를 표출해도 망가지는 외모 신경 쓰지 않고 참으로 비루하게 표현한다. 매 맞고 총 맞고 쓰러져도 처절히 몸을 던진다. 이토록 열심히 했나, 괜히 관객 마음을 얻은 게 아니었다.


장국영이 부른 '당년정'. 영웅의 본색을 보여준 마크의 주제곡 ⓒ

마크가 아걸에게 말한다. “형은 새 삶을 사는 용기를 가졌는데, 너는 왜 형을 용서할 용기가 없어? 형제란…”. 어긋나기만 하는 형제를 하나로 만들어 주고, 하던 말을 끝까지 못 하고 마크는 스러져간다. 그 위로 비감의 노래가 흐른다. 영화 초반 가사 없이 흘러나왔던 음악에 지나간 날에 대한 회한과 희망을 담은 가사를 더해 장국영이 부른다. ‘당년정’, 그때의 감정.


홍콩뿐 아니라 우리나라 가수들도 숱하게 불렀고,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가 주연하고 신하균 오정세가 조연한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의 마지막에 흘러나왔던 그 노래다. ‘영웅본색’ 1편을 명작으로 만들고, 그 시리즈를 계속 생각나게 하는 노래 ‘당년정’. 영화가 끝나도 노래는 계속 듣는다. ‘그때의 정’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영웅본색’과의 재회, 역시 후회는 없다.


가벼운 웃음소리, 따스함으로 날 감싸고

너는 내게,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지.

가벼운 위로의 말, (나는) 길고 긴 길을 지나

결국, 맑고 아름다운 길에 들어섰네

환호성을 외치며 뛰어오던 (너), 아침 해가 금빛 화살을 쏘는 듯하고

내가 너와 만나며 지난날의 미소를 되찾네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 고개 들고 함께 하늘을 보니

모처럼, 푸른 하늘은 너를 축복하듯 아름답구나!

너를 안으니, 그때의 따스함이 다시 느껴지고

마음속의 어린 시절 희망찬 꿈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듯한데

오늘의 나, 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때의 정, 이제 더 새로워지는데

너를 보니 눈 속도 이미 따스함으로 가득 차고

마음속 지난날의 꿈은 아직 변하지 않은 듯한데

오늘의 나, 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때의 정, 더욱더 새로워지는데….

(광둥어 버전 가사)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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