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우승 도전 손흥민, 골리앗 넘는 다윗이 될 수 있을까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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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흥민 골 세리머니 |
ⓒ EPA/연합뉴스 |
'한국 축구의 자존심' 손흥민이 프로 데뷔 후 첫 우승 트로피 획득에 도전한다. 토트넘으로서도 13년 만에 무관을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토트넘은 26일 오전 0시 30분(한국 시각) 카라바오컵(리그컵)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한다.이번 경기는 25일 일요일 밤 12시 20분 스포티비 온(SPOTV ON), 스포티비 나우(SPOTV NOW)에서 생중계된다.
리그컵은 토트넘이 최근 가장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대회다. 토트넘은 2007-2008시즌 당시 칼링컵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대회에서 2월 25일 열린 결승전에서 연장접전 끝에 강호 첼시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한국인 선수였던 이영표도 토트넘에서 뛰고 있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있던 상황이라 아쉽게 결승전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역대 한국인 선수 중 컵대회 우승을 경험한 것은 이영표를 비롯하여 박지성(3회, 맨유)-기성용(당시 스완지시티)까지 총 3명이다.
토트넘은 올 시즌 무관의 위기에 놓여있다. 리그에서는 15승 8무 10패 승점 53점으로 7위까지 떨어지며 우승은커녕 다음 시즌 유럽클럽대항전 진출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FA컵과 유로파리그에서도 모두 16강에서 탈락했다. 카라바오컵은 토트넘이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상대가 만만치 않다. 결승전에서 만나게 된 맨시티는 그야말로 리그컵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맨시티는 역대 리그컵에서 총 7번의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 중 5번이 최근 10년간 달성한 기록이다. 특히 펩 과르디올라 현 감독이 부임한 이후로는 지난 2017-2018시즌부터 무려 3시즌 연속으로 리그컵을 제패했다.
역대 리그컵 최다우승 기록은 리버풀이 보유한 8회다. 리버풀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유일하게 리그컵 4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만일 맨시티가 올해도 정상에 오를 경우, 최다 우승과 최다 연속 우승 기록에서 모두 리버풀과 타이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우승을 거의 확정지으며 더블을 노리고 있는 맨시티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토트넘보다 월등하게 앞선다.
사령탑의 격차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토트넘은 지난 19일 모리뉴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모리뉴 감독이 최근 성적 부진과 선수들과의 불화설로 사면초가에 몰려있기는 했지만, 유일하게 우승 가능성이 남아있던 컵대회 결승을 눈앞에 두고 경험이 풍부한 우승 감독을 경질한 것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았다.
토트넘은 현재 라이언 메이슨 코치의 감독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토트넘 출신인 메이슨 대행은 한때 손흥민의 팀 동료였고 1991년생으로 나이도 손흥민보다 겨우 1살 많다. 유럽의 모든 메이저대회를 석권했던 명장 과르디올라 감독과는 연륜과 경험의 차이가 넘사벽에 가깝다. 다행히 메이슨 대행의 사령탑 데뷔전이었던 지난 22일 사우샘프턴전에서 손흥민의 PK 극장골로 2-1로 승리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는 점은 한 가닥 위안이다.
또한 해리 케인의 출장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어쩌면 모리뉴의 부재보다도 토트넘에 더 심각한 악재다. 케인은 지난 17일 에버턴전에서 발목부상으로 경기막판 교체됐고 사우샘프전에도 결장했다. EPL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꼽히는 케인은 손흥민과 함께 토트넘 공격의 중추 역할을 맡아왔던 에이스다. 설사 무리해서 카라바오컵 결승에 출전한다고해도 최상의 컨디션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맨시티도 케빈 데 브라이너가 부상을 당했지만 케인을 대체할만한 선수가 아예 없는 토트넘과 달리, 선수층이 두터운 맨시티에는 백업 자원들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현지 전문가들도 대부분 토트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토트넘 입장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힌트가 될 수 있는 장면은 지난 18일 열린 FA컵 준결승이었다. 첼시는 FA컵에서 열세라는 예상을 꺾고 1-0으로 승리하며 맨시티의 4관왕 도전을 저지시켰다. 첼시의 토마스 투헬 감독은 당시 맨시티에 점유율(44.6%, 55.4%)과 슈팅 숫자(5-11)에서 모두 밀리고도 견고한 수비와 측면 역습 위주의 실리축구로 대어를 낚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올시즌 전반기 모리뉴 감독의 토트넘이 맨시티를 잡았을 때도 보여줬던 장면이기도 하다. 다만 모리뉴와 케인이 없는 토트넘에서 메이슨 대행이 이같은 실리 축구를 재현할 수 있을지, 과르디올라의 맨시티가 일주일 사이에 같은 방식으로 두 번이나 당할지는 미지수다.
토트넘의 우승을 좌우할 키는 손흥민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맨시티가 '골리앗'이라면, 이를 잡을 수 있는 '다윗'의 역할을 하기에는 손흥민이 제격이다. 손흥민은 맨시티를 상대로 통산 12경기에 나와 6골 1도움을 기록하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 손흥민이 출장한 경기에서서 토트넘은 맨시티에 6승1무5패로 오히려 근소하게 앞섰다.
토트넘이 결승까지 진출했던 지난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손흥민이 보여준 활약상은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손흥민은 1차전 선제 결승골에 이어 2차전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하며 맨시티에 탈락의 아픔을 안긴 바 있다. 다수의 해외 언론들도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 손흥민을 토트넘의 핵심 선수로 거론하며 선발 출격을 예상하고 있다.
우승이 간절한 것은 토트넘 뿐만이 아니라 손흥민에게도 마찬가지다. 프로 통산 12년간 유럽 무대와 한국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손흥민이지만 클럽무대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커리어에 '옥에 티'로 남아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 레버쿠젠(이상 독일) 그리고 현재 소속팀인 토트넘(잉글랜드)에서 명실상부한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16-2017시즌 프리미어리그(EPL)와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연이어 준우승에 그치며 트로피와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23세 이하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커리어 유일한 우승 경험이다.
올시즌 손흥민을 둘러싼 월드클래스 논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것도 바로 우승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승이 개인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손흥민이 팀을 우승으로 이끌 능력이 있는지' 혹은 '우승을 노리는 빅클럽에서 손흥민이 한번도 뛰지 못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가 의문의 핵심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을 비롯하여 모든 면에서 맨시티보다 '언더독'의 입장에 놓인 토트넘을 손흥민이 첫 우승으로 이끌 수 있다면 월드클래스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전망이다.
토트넘은 올 시즌에도 만일 무관에 그치거나 다음 시즌 UCL 진출권마저 놓친다면 주축 선수들의 연쇄 이탈이라는 엑소더스가 벌어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전성기에 접어든 손흥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번 카라바오컵 결승은 어쩌면 토트넘과 손흥민의 미래까지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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