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에 구멍 뚫어 인간의 내면을 본다는 괴상한 사람들

김준모 2021. 4. 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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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호문쿨루스> 괴기함으로 인기 끈 일본 만화 원작

[김준모 기자]

 <호문쿨루스> 포스터
ⓒ 넷플릭스
 
'호문쿨루스'는 과거 연금술로 만들 수 있다 여겼던 인조인간을 뜻하는 용어다. 신경해부학에서 신체기관을 대뇌피질에서 담당하는 비율에 따라서 그려놓은 머리와 손이 크고 이외의 부위가 작은 인형 그림을 뜻한다. 라틴어의 의미인 '작은 사람'처럼 우리 뇌에 들어가 있는 작은 난쟁이란 의미가 있다. 일본 만화 <호문쿨루스>는 이 아이디어에 착안해 머리에 구멍을 뚫어 인간의 본질을 본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발매 당시 독특한 소재와 설정으로 철학적인 의미를 담아내 수작이란 평가도 많았다. 연기파 배우 아야노 고를 주연으로 내세운 넷플릭스 영화 <호문쿨루스>는 <주온> 시리즈로 유명한 시미즈 다카시가 연출을 맡아, 영화의 기괴한 측면을 강조한다. 원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재를 강조하며 후반부에는 감정을 넣고자 노력한다.
  
 <호문쿨루스> 스틸컷
ⓒ 넷플릭스
노코시는 큰 빌딩이 위치한 도심과 노숙자들이 사는 공원, 그 사이의 도로에 정차한 차 안에서 사는 존재다. 그는 부유한 컨설턴트이면서 노숙자로 살아간다. 기억을 잃은 그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정체를 숨기고 노숙자처럼 생활한다. 그런 노코시를 찾아온 건 병원 인턴으로 인하는 마나부다. 그는 병원 밖에서는 가발을 쓰고, 귀걸이를 차는 등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다.

마나부가 노코시를 찾아온 이유는 인간의 '본질'을 보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유아기 때 두개골이 벌어진 채 태어난다고 한다. 왜 인간은 두개골이 벌어져 태어나는 것일까. 태어난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무언가 새로운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호기심 때문에 이마의 한 가운데에 두개골을 가르는 구멍을 뚫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인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것을 마나부는 '본질'이라 여긴다.

그가 노코시를 택한 이유는 그가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 있기 때문이다. 방랑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노코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나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머리에 구멍이 뚫린 그는 한쪽 눈을 가리면 다른 모습으로 사람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개인의 트라우마,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 어린 시절 친구의 로봇을 보려다 실수로 상처를 입힌 조직보스는 로봇의 모습으로, 강압적인 부모 아래에서 반항으로 사창가에서 일하는 고등학생은 존재가 무너지는 모래인간으로 보인다.
 
 <호문쿨루스> 스틸컷
ⓒ 넷플릭스
이런 혼란 속에서 노코시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미스터리한 여성과 만난다. 이 여성은 노코시의 잃어버린 기억, 그의 본질과 연관되어 있다. 영화는 원작의 난해한 지점을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는 방향으로 각색한다. 머리에 뚫린 구멍을 이미지로 강조하며, 노코시가 이 구멍을 통해 기억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자신을 찾는 초현실적인 연출로 이어진다. 구멍을 뚫는다는 행위를 내면의 본질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각화한 장면인 셈이다.
원작에서는 노코시-마나부-미지의 여성 사이의 관계가 파편적으로 등장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좀 더 촘촘하게 엮고자 시도한다. 연속성을 갖춰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이 선택은 감정선이 부족한 원작을 영화화하기 위한 필수였다. 만화는 표현 자체가 파편적이나, 영화는 연속적이다. 이 연속성 속에서 관객이 인상을 느낄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이 과제를 치정극으로 풀어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호문쿨루스> 스틸컷
ⓒ 넷플릭스
원작 역시 노코시가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로맨스가 본질에 대한 실증적인 탐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원작 노코시의 기묘함을 살리는 데는 실패한다. 마나부가 노코시와 미지의 여성 사이에 비밀을 알고 있다는 점은 서스펜스를 강조하는 요소로 사용되지만, 이후 전개를 허술하게 가져가며 밍밍한 맛을 남긴다.

<호문쿨루스>는 원작의 기괴한 느낌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만화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초반부와 창작한 후반부가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못한다. 차라리 소재만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했다면 기괴함을 살리면서 감정 역시 군데군데 배분할 수 있는 미덕을 선보이지 않았을까. 이와 별개로 난해한 원작의 파편적인 의미를 연속적인 장면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노력한 영화의 시도는 꽤나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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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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