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재인 대통령, 검찰총장 인선 '민심(民心)' 헤아리길

최석진 2021. 4.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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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 기자(법조팀장)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지난 4·7 재·보궐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순한 여당의 패배가 아니었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와 부산시 16개 자치구 중 어느 한 곳에서도 야당을 이기지 못했다.

원래 야당을 지지하던 시민들이나 중도층의 표심이 야당으로 기울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을 지지했던 지지층 상당수가 등을 돌린 결과다.

불과 1년 전 치러진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했던 여당이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가만히 원인을 살펴보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백신 문제 등이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고, 보궐선거 자체가 여당 지자체장들의 성추문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정치적으로는 1년 넘게 계속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후임 추미애 전 장관의 윤석열 전 총장 찍어내기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과 실망감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특히 법률가인 문재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에 대한 ‘마음의 빚’을 언급하는 등 사건의 실체와 엄격한 법의 잣대 대신 진영 논리에 매몰돼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윤 전 총장을 공격하는 여권과 법무부를 방임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준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수사의 선봉에 서며 승승장구하던 윤 전 총장이 문 대통령의 신임을 잃기 시작한 계기는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였다.

최근 발간된 윤 전 총장 관련 서적에는 윤 전 총장이 자신의 대학동기에게 조 전 장관 관련 수사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서’, ‘방치하면 정권에 막대한 타격을 줄 정도로 사안이 심각해서’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소개됐다.

반면 문 대통령과 여권은 당시 ‘우리 편’인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이적행위 취급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돌아보면 검찰의 수사에 강하게 반발하며 ‘법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던 조 전 장관은 정작 법정에서는 진술거부권과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며 자신이나 가족의 결백을 입증하지 못했고,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5촌 조카 조범동씨는 1심에 이어 함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소한 조 전 장관 일가의 비리에 대한 사법처리가 필요하다는 윤 전 총장의 판단이 완전히 잘못됐거나, 특정한 의도에서 비롯된 무리한 결정은 아니었다는 게 어느 정도 증명된 셈이다.

‘판사들을 불법적으로 사찰했다’며 요란하게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윤 총장을 ‘희대의 범법자’로 몰았던 추 전 장관은 법원에서 연이어 패소하며 결국 경질됐지만, 자신의 징계 청구에 대한 책임은 나 몰라라 한 채 또 다른 정치 항로 모색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법무부는 법원에 윤 전 총장의 징계 혐의를 입증할 추가 증거들을 제출하지 못하고 본안소송의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않고 있다가 법원이 석명준비명령을 내렸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뒤에야 허겁지겁 집행정지 사건을 대리했던 변호사들을 다시 선임했다. ‘아니면 말고’도 이런 ‘아니면 말고’가 없다.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시키고 대부분 사건의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검경 수사권 조정 입법을 마련했지만, 제도 시행 초기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부패 범죄에 대한 대응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건 경찰의 사건 송치 건수, 검찰의 기소 건수 등 각종 통계 수치가 말해주고 있다.

‘LH 사태’가 터지고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 역량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자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최소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여권에서 먼저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나 ‘특별검사 도입’ 주장이 나온 건 이율배반의 전형이다.

‘옥상옥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또 다른 검찰개혁 수단으로 도입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를 기관장 관용차로 모셔다가 조서도 안 쓰고 면담을 한 뒤 사건을 검찰로 보내놓고, ‘그래도 기소는 우리가 하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고 공수처가 도입되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외치며 기고만장했던 여권의 초선 의원들은 선거를 앞두고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니 선거 참패 이후엔 숨소리도 못 내고 있다.

‘검수완박’이 진정한 검찰개혁의 길이었다면 선거에서의 유·불리나 선거 결과에 따라 이렇게 태도를 바꿀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경찰은 현 정부 들어 광범위한 직접 수사권을 부여받았다. 눈엣가시였던 검찰의 수사지휘로부터도 벗어나게 해준 게 이 정부다. 그만큼 큰 빚을 진 셈이다. 그런 정부나 여권을 향해 추상같은 사정의 칼을 휘두른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란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공수처는 태생 자체가 현 정부와 여당에 의해 이뤄졌다. 역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당장은 무리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총수마저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깊이 공감하는 인사가 임명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손에 3개의 서로 다른 칼을 쥐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온전히 유지될 수 없을 게 뻔하다.

이번에 임명되는 검찰총장은 남아있는 정권 관련 수사들을 매듭짓고, 새로 신설된 공수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등과의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설정해야 할 중책을 맡게 된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성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번 주 윤 전 총장의 후임 검찰총장을 뽑기 위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린다.

검찰청법 제34조의 2에 따르면 추천위가 3명 이상의 후보자를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면, 박 장관이 그 중 한 명의 최종 후보자를 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는 구조지만, 사실상 추천위는 형식적 절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추천위 구성 자체가 법무부 장관에 의해 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은 전체 9명의 추천위원 모두를 임명 혹은 위촉한다. 위원장 역시 법무부 장관이 결정한다. 또 위원 중에는 법무부 검찰국장이 포함되고, 장관이 임명한 대검 검사급 이상 검사가 포함된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이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외부 위원들이 특정 후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 추천 후보에서 제외시킬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대개의 경우 장관이 생각하는 3~4명이 후보로 추천되고, 그 안에는 애초 대통령이 의중에 둔 사람이 반드시 포함되기 마련이다.

결국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나를 지켜줄, 내가 퇴임한 뒤까지 방패막이가 돼줄 수 있는 안전장치로 누구를 심을지를 고민할 것인지, 아니면 정말 지금 위기에 처한 검찰 조직을 다시 정비하고 바뀐 수사 환경 속에서 검찰 본연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조직을 이끌 사명감과 역량을 갖춘 인물을 발탁할 것인지.

결정은 오로지 문 대통령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바랄까’에 대한 고민의 답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박 장관이 검찰총장의 인선 기준으로 ‘대통령의 국정 철학 상관성’을 언급한 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박 장관은 두 달 전 신현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하기 전 함께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유임이나 심재철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의 서울남부지검장 영전에 이견을 보이는 신 수석을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고 몰아세웠다는 언론보도가 여권 관계자발로 나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장관이 검찰 고위간부 인사라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내 편’과 ‘네 편’을 염두에 둔 게 사실이라면 정말이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후임 총장이 임명되면 곧 대규모 검찰인사가 이어질 텐데 박 장관이 정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누가 총장이 되든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응천 의원이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총장 인선 기준으로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상관성이 크다’고 답한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제 귀를 의심했다”, “말 잘 듣는 검찰을 원한다는 걸 장관이 너무 쿨하게 인정해버린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했을까.

분명한 건 검찰총장 인선의 기준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낼 의지와 용기’지 ‘대통령의 국정 철학’도, ‘내 편인지’도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문 대통령이 생각할 건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국정을 맡긴 국민들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주길 기대할지’ 민심(民心)을 살피는 것, 그것 한 가지다.

어떤 권력도 영원할 순 없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각 5년, 4년이라는 기간 국민으로부터 주권의 일부를 위임받았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 제1조가 천명한 대한민국의 제1 규범이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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