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법체류 외국인 아동, 합법체류 가능해졌다?
[송하성 기자]
▲ 불법체류 외국인주민이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단칸방. |
ⓒ 송하성 |
법무부가 불법체류(미등록) 중인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불법체류 상태로 살고 있는 아동들에 대한 구제 대책을 내놓았다. 법무부가 한국에서 태어나고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강제 출국될 아이들을 위해 정책을 마련했지만 이주다문화 현장의 목소리는 부정적이다.
법무부는 지난 4월 19일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을 발표하고 2025년 2월까지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신청일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체류하고, 2021년 2월 28일 이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해 국내 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교를 졸업한 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외국인 부모와 함께 출입국외국인청(사무소)를 방문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는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국내에서 15년 이상 거주한 미등록 체류 아동이 조건부로 합법 체류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이미 고교를 졸업해 성인이 된 경우에도 취업 또는 대학 진학 등의 조건을 달고 1년간 임시체류 자격(G-1)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미등록 아동은 강제출국되지 않고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미성년자를 단속해 강제출국 시키는 것이 인권국가의 모습에 부합하지 않고 아동의 마지막 기본권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미등록 상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고 마땅한 일자리도 찾기가 어려워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여있었다.
이 아이들이 이번 조치를 통해 고교 졸업시까지 학업을 위한 체류자격(D-4)를 부여받는다면 대학교 진학과 함께 취업을 기대하며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다.
부모 역시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임시 체류자격 비자(G-1)를 발급받고 근로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대다수 미등록 외국인은 이용할 수 없는 제도
그럼에도 불법체류 기간에 따른 범칙금 납부 문제와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가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점 등 2가지가 큰 걸림돌이 됐다.
구제를 신청한 미등록 외국인 부모가 7년 이상 미등록 상태에 있고 통지 후 3개월 이내에 범칙금을 낼 수 있다면 900만 원(3천만 원 중 70% 감경)을 납부해야 한다. 통지 후 3개월을 넘어서 범칙금을 내면 감경 비율이 줄어들어 납부금액은 증가한다.
미등록 기간이 5년 이상 7년 미만이라면 2500만 원 중 70%를 감경받아 750만 원을 납부하면 된다. 하지만 15세 이상 자녀를 낳고 생활하는 대다수 외국인주민들의 미등록 기간이 7년을 넘는다는 점에서 900만 원을 납부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과연 최근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도 부족해진 마당에 900만 원의 범칙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주다문화 현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경기글로벌센터 송인선 대표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900만 원의 범칙금을 마련하라는 것은 이 제도에 참여할 수 없다는 통보와 같다"며 "미등록 이주민 자녀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좌절감을 안기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번 조치로 구제를 받았다고 해도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조건도 가혹하다는 지적이다. 대학교에 진학했다면 가장 많은 돈이 필요한 시기인데 부모가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그 아이가 어떻게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주민 단체를 이끄는 중국 출신 A씨는 "한국 아이들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면 성인이 되었더라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900만 원을 마련하기도 어려운데 부모가 한국을 떠나야 하는 조건이라면 이 제도를 이용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내국인들의 법감정과 형평성 논란 사이에서 크게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자기 잘못으로 미등록 체류를 하는 것이 아닌 외국인 아동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법무부가 화답한 것이 이번 구제 방안"이라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음을 잘 알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통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근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한 것은 큰 변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소 터프한 제도가 된 것 같다"며 "23일 현재 불법체류 외국인 3가족이 이 제도를 통한 구제를 신청했다. 앞으로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을 잘 살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가 이 구제방안의 대상 아동을 국내 체류 기간 15년 이상으로 설정한 것은 15세 이상이 되면 사실상 한국인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말자님 더 기분 나쁘게 한 건 궁서체 재심 결정문"
- '귀신 나오는 집'이라 부른, 행촌동 1-88번지의 정체
- 선거 이기자 바로 '박근혜 사면론', 국민의힘 체질인가
- 거짓 의학정보에 안 속는 법, 한의사가 알려드립니다
- '또 세월호냐'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
- 노회찬은 왜 기업의 '손배소 폭탄'에 주목했을까
- 충남 사람들, 오늘도 '걷쥬' 하고 있쥬?
- "위안부 피해자 패소한 날, 보수단체 소녀상 옆에서 환호 질러"
- 고려시대 석탑 옆 불상, 신고 안 하고 묻어버린 서산시, 왜
- 문 대통령 "세월호 참사 의혹 남아, 한 치 의문없게 수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