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패소한 날, 보수단체 소녀상 옆에서 환호 질러"
[김종훈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네트워크 소속 대표자들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4월 21일에 예정된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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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난리가 났더라."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소송에서 패소한 후 열린 수요시위에 보수단체 회원들도 자리했냐'는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한 답이다.
그는 "이미 평화의 소녀상 주변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패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면서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라고 되물으며 한숨을 쉬었다.
앞서 제1488차 수요시위가 열린 21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 민성철 부장판사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청구 각하 판결을 했다. (관련 기사: '위안부 배상' 패소... 재판부, '마지막 구제' 책임 정부로 넘겼다 http://omn.kr/1sxee)
각하 판결의 주된 이유는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 질서에 반하지 않고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한일합의 효력이 존속하며 ▲국가면제 예외조항 등이 국내법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같은 내용의 소송에서 다른 결론이 난 것인데,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끔찍했다"면서 "민성철 재판부가 정말로 참담한 일을 벌였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2015 한일합의로 해결됐으니 '그 입 다물라'라는 것과 차이가 없다. 이를 위해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꺼내 들어 끼워 맞춘 건데, 아무리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더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말한 거다. 인권과 인간에 대한 처참한 인식 수준이 아닐 수 없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 참석한 뒤 법정을 나서며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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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일정 부분 예측된 상황이었다. 당장 우리 정부부터 이번 판결의 근간이 된 2015 한일위안부 합의를 인정했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1월 8일 1차 판결 이후 보름이 지난 1월 23일,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 사이에 체결된 한일위안부합의에 대해 "우리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 간의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 법원의 2차 판결이 내려진 당일 오후 일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적절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도 "지극히 보통의, 타당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해 <산케이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다수 일본 언론 역시 "대한민국 재판부가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면서 "한국 법원이 옳은 판단을 내렸다"라고 보도했다.
한 마디로 한국 법원의 판결을 일본 정부와 언론이 격하게 환영한 것인데, 이에 대해 야지마 츠카사 나눔의집 국제실장은 "현재 상태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바꾼다거나 일본 사회가 극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2015년 한일합의를 통해 일본 사회는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문제들이 정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주장했을 땐 일본사회 내부에서도 이를 국가 간 문제로서 이해했다. 그래서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지원하고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맺은 한일합의로 국가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줄었다. 이번 한국 사법부의 판결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왼쪽)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공판에서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실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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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차 소송 결과를 두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겠다"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가 이미 한일합의를 인정한 상황에서 이 사안을 과연 국제사법재판소로 제소할지 불투명하다. 혹여 우리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 할지라도 한일 양국이 재판에서의 쟁점을 합의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은 23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재판만큼 중요한 것이 생존해 계신 피해할머니들을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할머니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드시고 싶은 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실 때 하나라도 더 고려하고 지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현재 생존한 인원은 15명뿐이다.
한편 이나영 이사장은 이날 통화 말미에 "이번 판결을 깊은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면서 "왜 이번 일이 부정한 일인지, 동북아 인권사를 후퇴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알려야 다음 세대를 위한 가치가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역사 부정의가 계속되고 거기에 또 다른 부정의가 자꾸 얹히면 한국사회 전반의 가치가 무너져 내린다. 이번 판결은 그 의미의 연장선에 있다. 헌법의 가치가 무너졌고, 피해자들의 인권과 재판받을 권리 역시 무너졌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피해자 할머니들과 유족들, 피해자 지원단체가 함께 모여 항소에 대해 논의 중이다"라면서 "굴하지 않고 항소 등을 통해 사건의 본질을 계속 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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