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학③] 복통 원인도 달라.. 성차 따져야 '정밀의료' 가능

전혜영 헬스조선 기자 2021. 4. 23. 1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부근육염은 '젊은 여성'에 집중.. 성차의학, 진단 단계부터 중요

남성과 여성은 질병 양상이 다르며, 따라서 진단과 치료도 달리해야 한다는 '성차의학' 개념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름부터 생소한 성차의학, 일반 환자들은 그 필요성을 실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성차의학은 '여성'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흔하다. 정확한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성(Sex)'과 '젠더(Gender)'를 왜 고려해야 할까. 남녀, 그리고 다양한 연령층에서 성차의학 적용 사례를 알아봤다.

◇성차의학 적용 사례, '인식'만 바꿔도 정밀의료 실현

여성의 기능성 소화불량증은 남성과 달리 심리적 원인인 경우가 많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40대 여성 A씨는 반복되는 상복부 중심의 복통과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았다. 혹시 위암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위내시경과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A씨처럼 위장관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데도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기능성 소화불량증'이라고 진단한다. A씨는 의사로부터 "여성의 기능성 소화불량증의 경우, 남성과 달리 심리적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이야길 들었다. 최근 가족 문제로 우울감을 느꼈던 A씨는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를 통해 우울증이 회복되자, A씨의 복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남성은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이 늦어져 여성보다 빠른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50대 남성 B씨는 평소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독 지난 여름은 더욱 버티기가 어려웠다. 평소보다 더운 듯한 느낌에 땀도 더욱 많이 흘리고, 체중도 조금 빠졌다. 올여름이 유독 더운 탓이겠거니 생각한 B씨는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듬해 등산을 하러 갔던 B씨는 다리를 다쳐 수술을 받게 됐다. 수술 전 혈액검사 결과, B씨는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B씨는 갑상선 질환이 여성들만 걸리는 것으로 생각해 매우 놀랐다. 갑상선 질환은 주로 약물치료 기간을 길게 두고, 경과가 나아지지 않으면 수술을 고려한다. 담당의는 "남성은 갑상선질환을 오래 방치해 이미 악화된 경우가 많다"며 "약물치료를 단기간 해본 후, 여성보다 빨리 수술을 고려하자"고 했다. 이후 수술을 받은 B씨는 무사히 회복해 약도 끊을 수 있었다.

간의 크기가 의학적으로 정상이어도, 일부 여성에겐 비정상처럼 느껴질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대 여성 C씨는 어느 날 오른쪽 윗배에 큰 혹이 만져져 곧바로 대학병원을 찾았다. 원인을 찾기 위해 위·대장내시경, CT 촬영, 복부 초음파 등 모든 검사를 다 해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소화불량까지 반복돼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C씨는 결국 증상 완화를 위해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먹어야 할 정도였다. 이곳저곳 병원을 전전하던 C씨는 한 가정의학과에서 놀라운 답을 들었다. 의사는 C씨의 혹을 만져보더니 "이것은 간(肝)"이라며 "간은 정상 크기지만, 여성치고도 작은 체구로 인해 간이 튀어나와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CT 화면을 보며 C씨에게 간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의학적으로 간의 크기는 정상이지만, 여성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차이를 인지한 C씨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 소화불량 증상도 나아졌다.

◇쉽게 치료했을 수도 있는데… 편견이 진단 늦춘다

남성은 골다공증 진단이 늦어져 이미 골절로 진행된 후에야 발견하곤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80대 남성 D씨는 젊은 시절 안 해본 운동이 없었으며, 나이가 든 후에도 주기적으로 등산하러 다니며 체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았는데, 아내가 골다공증 검사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평소 근육이나 관절에 통증을 느낀 적도 전혀 없는 데다, 남성은 골다공증에 걸릴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밭일을 돕기 위해 종일 쪼그려 앉아 일했던 D씨는 다음 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D씨의 뼈는 이미 골다공증으로 속이 텅 비어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노동으로 인해 허벅지뼈에 피로 골절이 발생한 것. 진작 골다공증 검사를 받고 치료했다면 다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후회스러웠다. 골다공증은 '여성 질환'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65세 이상 성인 남성 5명 중 1명은 골다공증 골절을 경험한다.

여성에 흔한 피부근육염은 예사롭게 여겨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40대 여성 E씨는 한 달 전부터 몸이 이곳저곳 아팠다. 평소 즐겨하던 운동 동작도 하기 어려웠고, 팔을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근력이 약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원을 찾았지만 단순 근육통이나 만성피로로 여겨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고통이 심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E씨는 한 병원에서 근육효소수치 검사를 받은 후 '피부근육염' 진단을 받았다. 이는 젊은 여성에게 흔한 자가면역질환으로, 온몸의 근육이 줄어드는 병이다. 심하면 폐 근육까지 약해져 숨쉬기도 어려워진다. 치료를 위해 입원한 E씨는 병동에서 같은 질환을 겪는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처음엔 병원에서 예사롭게 여겨 진단까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 E씨는 젊은 여성의 통증에 조금 더 귀 기울였다면 진단이 늦어지지 않았을 거란 마음에 아쉬움이 들었다.

- Copyrights 헬스조선 & HEALTH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