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격권 침해" vs "엄연한 창작물" 리얼돌 논란 재점화
"여대 아가씨들" 빗대..성적 수치심 유발 논란
"나쁜 성관념 심어줄 것" vs "자아실현 순기능" 이견 갈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최근 성인용품 '리얼돌'을 대여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업소인 이른바 '리얼돌 체험방'이 늘어나면서 리얼돌 허용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특히 한 체험방이 리얼돌 제품을 특정 여대 학생들에 빗대며 홍보한 사실이 알려지며 '성적 수치심' 유발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리얼돌은 과거 국내에 수입되던 시점부터 지속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 제품의 수입·판매 등을 반대하는 이들은 리얼돌의 특수성을 지적한다. 인간의 신체·얼굴 등을 정밀하게 모방하는 제품 특성상, 잘못된 성관념을 심어주고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선 성인의 자유로운 성기구 사용을 제한할 수 없다는 반박이 나온다.
◆"여대 아가씨들 미용실 다녀와"…끊이지 않는 리얼돌 논란
지난달 12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대 아가씨들 미용실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서울 성북구 한 리얼돌 체험방 운영업체가 홍보 목적으로 쓴 글이다. 이 업체는 ××여대가 위치한 곳 인근에서 영업하는데, 자신들이 보유한 리얼돌을 여대생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홍보글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학생들은 대응에 나섰다. ××여대 페미니스트 동아리 'RADSBOS'는 지난 20일 '우리는 인형도 성기구도 아니다'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내고 "해당 지점은 남성들의 '여대생 판타지'를 영업전략수단으로 삼았다"라며 규탄했다.
리얼돌 체험방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일부 업체가 초·중·고등학교 및 유아교육시설 밀집 지역 인근에 문을 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강력 반발로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리얼돌은 국내 수입 당시부터 통관 허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앞서 관세청은 리얼돌이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이유로 수입을 불허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17년 한 리얼돌 수입업체가 세관을 상대로 수입통관 보류조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지난 2019년 6월 대법원이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며 수입업체의 손을 들어준 2심 재판부 판결을 확정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후로도 리얼돌 대여·판매 사업 등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명인 얼굴 모방·AI 탑재까지…성적 대상화 우려
리얼돌의 사용을 반대하는 이들은 제품의 특수성을 지적한다. 인간과 최대한 흡사하게 만들어진 리얼돌이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리얼돌은 실리콘을 원료로 만들어낸 인형이다. 인간의 신체 부위, 질감 등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묘사한 게 특징이다. 특히 최신 제품은 기술 발전으로 정밀성이 더해져 인간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갖추게 됐으며, 유명 연예인·방송인의 얼굴을 도용하거나 아동 신체를 묘사한 리얼돌이 개발되기도 했다.
일부 고급 제품은 인공지능(AI) 등 IT 기술을 탑재해 현실감을 강화한다. 중국 리얼돌 제작업체 'Exdoll(엑스돌)' 사는 최근 음성 인식, 말하기 기능, 와이파이 등을 추가한 리얼돌을 생산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여성계는 리얼돌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리얼돌은 단순히 여성을 재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의 성욕을 풀기 위한 존재로 치환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여성에게 느끼게 하는 것"이라며 "이것은 여성에 대한 인격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문제 터져 나올 것 뻔해" vs "자아실현 순기능 있어"
리얼돌의 수입·판매 허용 여부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엇갈렸다.
20대 직장인 A 씨는 "다른 사람의 얼굴, 신체를 모방한 리얼돌이 나오는 것을 막기 힘들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초상권 침해가 아닌가"라며 "문제가 터져 나올 게 뻔한 데 사용을 금지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주부 B(48) 씨는 "아이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장소에서도 버젓이 인형 사진을 걸어놓고 영업을 한다는 것에 충격받았다"라며 "성적 대상화 등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쁜 성관념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리얼돌 사용 또한 개인 자유라는 취지로 반박이 나오기도 했다. 직장인 C(28) 씨는 "성인용품이 다소 불쾌한 점은 있다고 해도 결국은 인형이 아닌가"라며 "리얼돌을 사용한다고 누가 실제로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이유 없이 단순히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금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리얼돌이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자아실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한 리얼돌 수입업체 대표 이상진 씨는 지난 21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한 자리에서 "장애인 단체 대표도 리얼돌에 찬성했다. 배우자가 없는 결핍, 외로움 등을 달랠 뿐만 아니라 자아실현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라며 "실존 인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리얼돌도) 권리가 인정돼야 하는 창작물"이라고 강조했다.
◆리얼돌 산업 규제 법안 발의되기도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는 리얼돌 산업을 규제하는 법안들이 발의된 상황이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9일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교육시설 인근 지역에서 리얼돌 체험방 영업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달 4일에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리얼돌 소지를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당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발의 했다. 해당 법안들은 아동·청소년 형상의 리얼돌 제작과 판매, 소지를 규제하는 내용 및 유명인·주변 지인·전 연인 등 특정한 사람의 모습을 본떠 리얼돌을 만드는 일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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