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누구와든 만난다..내 아이 채팅방, 아시나요①

조민영 2021. 4. 23.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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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공간·앱 아닌 어디든 평범하게 '오픈'된 위험
익명성에 오히려 보호받는다 착각하는 아이들
외부와의 접촉이 줄고 디지털 이용시간이 늘어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아동·청소년들은 온라인 세상 속 관계 맺음에 거리낌이 없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이 위험하다는 경고가 계속되지만, 아이들은 각종 게임이나 SNS 등 어디에서나 ‘랜선 친구’들과 손쉽게 대화(채팅)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보호하고픈 부모들은 막연한 걱정을 하지만, 막연히 ‘내 아이는 아닐 것’이라 믿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쩔 줄 모르겠는 무력감에 빠진다. 피해를 경험하거나 들여다본 학부모, 아이,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실태와 대응 방법을 2부에 걸쳐 풀어본다.

초등 5학년 딸을 둔 신모씨는 지난 겨울방학 딸과 대화를 나눈 뒤 수일간 밤잠을 설쳤다. 아이는 두어 달 전 시작한 ‘제페토(ZEPETO)’라는 게임을 그만하겠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제페토는 원격수업으로 외로워하던 딸이 직접 꾸민 아바타로 노는 거라면서 친한 친구들도 다 한다고 졸라서 허락한 게임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좋아하던 게임을 스스로 끊었다는 말에 신씨는 반가우면서도 한편 불안했다. 신씨가 이유를 캐묻자 아이가 들려준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이는 아바타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앱 채팅을 통해 이름 모를 친구들을 사귀었을 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기프트카드를 사서 게임 속 친구들에게 선물 이벤트를 하거나 원하는 아이템 거래에 썼다는 것이다.

‘소통’의 대가는 예상을 넘는 수준이었다. 겨우 두 달 사이 아이는 세뱃돈으로 받은 10여만원을 다 썼고, 지갑이 텅텅 비고 나서야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고 했다. 심지어 기프트카드를 보내고도 약속한 아이템이나 대가를 받지 못하고 되레 협박을 당하거나 욕먹는 등 일종의 ‘사기’까지 당하며 상처도 입은 듯했다.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고, 알아들은 줄 알았던 아이가 이런 일을 벌였다니. 신씨는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날 밤 잠자리에서 “실은 사진을 보낸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아바타로 하는 일종의 역할놀이 코너에서 갠톡(개인적인 대화)을 주고받던 상대방이 얼굴을 궁금해 해서 ‘셀카’도 보내고 몸 사진도 보냈다는 것이다. 아이는 “영상 대화하면서 상대방이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진짜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신씨는 차마 그 ‘이상한 행동’이 뭔지 더 묻지 못했다. 신씨는 “N번방이니 ‘그루밍’이니 하는 사건들이 평범하고 순진한 초등학생 딸내미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머리가 새하얘졌다”며 “화를 내거나, 큰일이 났다는 식으로 대응했다가 아이가 더 큰 두려움에 빠질 것 같아 아무 말도 못 한 채 몸만 떨었다”고 말했다.

유튜브·SNS·게임 ‘대화 되는’ 어디든 찾는 아이들
신씨가 받은 충격이 컸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아이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제어 프로그램을 깔아 관리도 하고, 문제가 많다는 카카오톡도 허용하지 않았던 터였다. 가정생활이나 학교생활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름대로 옳고 그름도 잘 판단하는 아이였으며, 집에 어른 없이 혼자 남겨져 있는 경우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속 아이들의 디지털 노출 나이가 크게 낮아지고, 이용 시간은 증가하면서 신씨와 같은 사례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학부모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역 커뮤니티나 맘 카페 등에서도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 등에서 신씨의 딸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거나,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불안감을 느낀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글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수도권의 한 지역 맘 카페에 초등학교 6학년 딸 사례를 공유한 이는 “딸이 제페토에서 누군가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고 너무 놀랐다”면서 “본 적도 없는 애랑 사랑한다는 이야기까지 주고받았더라. 그 상대방이 동갑인지, 성인인지도 모르는데. N번방이 생각나서 가슴이 철렁했다”고 토로했다. 아바타를 내세운 SNS 형태인 제페토의 특성상 아바타를 대상화한 성희롱이나 비방, 욕설 등으로 아이가 상처를 입었다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례가 제페토 같은 특정 앱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초등 저학년부터 미취학 아동들도 즐기는 게임인 브롤스타즈나 로블록스, 카트라이더 등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연은 비일비재했다. 부모들은 “채팅 보고 너무 놀라서 탈퇴시켰다” “중고등학생들이 나이 속이고 남친, 여친 구한다며 초등학생들을 나쁜 쪽으로 유도해 정말 위험하다”며 게임 앱 채팅 공간의 문제를 토로했다.

아이들의 게임 속 채팅 등으로 인한 고민을 토로하는 학부모들의 글들. 여러 온라인 카페 등 캡쳐

부모들이 털어놓은 고민이나 충격의 원인은 대부분 ‘아이가 모르는 사람과 무분별하게 채팅을 했다’는 데 있다. 동시에 대부분 ‘내 아이만 이런 건가’하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이런 현실은 통계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와 사단법인 탁틴내일이 12~19세(서울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3학년) 1607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명 중 1명(36%)이 메신저나 SNS 등을 통해 낯선 사람으로부터 쪽지나 대화 요구를 받아본 적 있다고 답했다.

낯선 이와 대화하는 창구도 다양하다. N번방 사태로 주목받은 텔레그램이나 디스코드와 같은 채팅앱부터 카카오톡 오픈 채팅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이 외에도 유튜브나 SNS 댓글창, 게임 속 채팅 등 아이들은 어디서든 ‘대화’를 하고 있었다. 특히 12~13세 초등학생들의 경우 응답자의 30%가량이 메신저 외에 게임 채팅을 통해 낯선 이의 연락을 받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채팅 범위가 통계보다 훨씬 광범위할 것으로 분석한다. 36%라는 수치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대화 요구를 받은 경우’인데, 여기엔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거나 찾아 들어간 채팅 등은 포함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게임을 하며 대화를 하던 사이, 유명 유튜브 채널의 ‘반모(반말모드) 이벤트’에 참여한 사이, SNS에서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쌓은 인맥 등은 아이들에게 더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랜선 친구’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인터뷰한 아이들은 게임 등에서 만난 ‘누군지 모를 친구’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평범한 일로 설명했다.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은 “게임 하다가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귀는 경우가 많다. 크게 무게를 두는 건 아니지만, 남들도 있으니 나도 있어 보이고 싶어 만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현실)친구들도 같이 (채팅)하지만, 어떤 필요 때문에 모르는 애들과도 친해지고 싸움이 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익명성’에 오히려 안심하는 아이들 …“숨겨진다” 착각에 과감해져

디지털 성범죄 등 피해자 지원사업을 하는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이희정 팀장은 22일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일수록 관계를 맺는 방식은 너무나 자유롭고 방대하다”면서 “어떤 나쁜 특정 앱이나 위험한 게임이 따로 있지 않다. 어디든 ‘대화’가 가능하면 아이들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위험성을 키우는 것은 온라인에서 맺는 관계에 대해 아이들의 경계심이 낮다는 점이다. ‘익명’인 상대방이 누구인지 몰라서 더 위험하다는 어른들의 인식과 달리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자신 또한 ‘익명성’으로 보호받는다고 생각해 쉽게 많은 것을 털어놓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90% 이상이 온라인상에서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위험하다고 인식했지만, 낯선 사람에게 대화 요구를 받은 아이 중 64%는 실제 개인정보를 알려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제페토 애플케이션 사용자들이 만든 부문별 톡방 캡쳐. 오른쪽 아래는 게임 이용자 카페에 올라온 계정거래글 캡쳐.


부모들로서는 상상도 못 해 본 성적인 대화나 무모한 거래 등이 오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팀장은 “성적인 주제를 비롯해 호기심이 생긴 일이 궁금하거나 해보고 싶은 아이들에게 온라인에서 만난 상대는 ‘자신을 모른다’고 생각해 쉽게 대화를 시작하거나 요구에도 응한다”고 전했다.

피해를 입었던 신씨 딸도 “내 또래라는 상대방 얘기가 딱히 거짓일 거라는 생각은 딱히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 모르니 그 안에서 그냥 놀이니까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채팅 자체를 막거나 사전에 검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온라인 세상과 현실의 구분은 더 흐려지고 있다. 신씨 딸이 빠졌던 ‘제페토’처럼 현실에서 가능한 모든 일을 온라인에서 해볼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MZ세대들로부터 주목받으며 더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친구를 만나고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이자 현실이 된 세대에게 ‘랜선 친구’와 학교 등에서 만나는 ‘진짜 친구’의 경계는 모호하다.

청소년인터넷지킴이 모니터링단 활동을 했던 A씨는 “게임이든 어디든 대화가 가능한 공간에선 너무 쉽게 상상도 못 할 채팅이 이뤄진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A씨는 “부모들은 어떤 특정한 앱이 문제다, 이런 식으로 잡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모르는 얘기”라면서 “내 아이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들을 하는데, 지금 시대 아이들한텐 온라인 채팅창이 너무 쉬운 놀이터다. 모두에게 열린 위험”이라고 강조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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