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6연패 수렁.. 그래도 즐거운 '스크린 원정대'

이동환 2021. 4. 2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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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연맹·FC 서울·CGV, 코로나 시대 기획 이벤트 가보니
기성용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FC 서울 팬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CGV아트레온에서 열린 ‘CGV 스크린 원정대’ 서울-제주 유나이티드전 경기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입장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걸 진짜로 누가 보러 온다고.’

21일 오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FC 서울, CGV와 함께 기획했다는 ‘CGV 스크린 원정대’를 취재하러 가면서 든 생각이었다. 코로나19 시대, 방역지침 탓에 원정석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며 ‘직관’하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접근성 좋은 영화관에서 중계영상을 틀어주는 이벤트였다. 신촌 CGV아트레온 지하 3층 프리미엄관 앞에 다다를 때까지만 해도 ‘오늘 취재 공치지 않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K리그는 각종 포털사이트를 통해 선명한 고화질로 중계된다. 영화관까지 가지 않아도 편안히 집 안에서 누워, 심지어 치맥을 즐기면서 관람할 수 있다. 게다가 이날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경기 전까지 서울은 컵대회 포함 5연패를 하고 있었다. 경기 직전 발표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23.6세. “서울이 아닌 서울의 18세 이하(U-18) 팀 오산고 라인업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CGV 스크린 원정대 상영을 알리는 상영관 앞 푯말.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기우였다. 상영관 앞엔 남녀노소 많은 사람이 앉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간이 서울의 ‘검빨’ 유니폼을 입은 ‘찐팬’들도 눈에 띄었다. 모두 1만 4000원(홈경기 티켓 1장 포함)을 내고 온 유료관객이었다. 소셜미디어 홍보글을 보고 예매했다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는 곳도, 서울 팬이 된 시점도 제각각이었다.

10년차 서울 팬 심주안(28)씨는 이날 경기를 보러 경기도 수원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원정경기 때 팬들이 함께 모여 맥주 한잔하면서 단체 관람했는데 코로나19 이후엔 힘들어졌다”며 “이렇게라도 모일 기회가 생겨 응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아직 K리그 팬도, 서울 팬도 아니지만 찾아온 이도 있었다. 직장인 전모(32·여)씨는 “월드컵 때 극장 응원전을 펼쳤던 것도 생각나고 신기하기도 해서 보러 왔다”며 “축구는 한 번도 직관한 적 없어 오늘 이벤트가 더 기대된다”고 했다.

영화관 환경은 축구 경기를 보기 안성맞춤이었다. 축구장과는 달리 ‘일행 간 거리두기’가 허용돼 일행 2~3명씩 줄지어 앉아 함께 응원할 수 있었다.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를 보니 선수들이 땀 흘리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전달돼 전용구장 맨 앞줄에서 직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가로 13m, 세로 5m의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중계화면을 보는 관객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렇게 약 60명의 팬들이 객석을 채운 상영관은 이내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됐다. 권성윤이 1분 만에 얻어낸 페널티킥을 신재원이 성공시키면서다. 상영관 안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가득 찼고, 미소 짓는 박진섭 감독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자 팬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 밀폐된 영화관에서 한 팀만을 응원하는 팬들만 모여 경기를 시청하니 2002년 월드컵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서울 선수가 공을 빼앗기거나 반칙을 당하면 “이건 아니지”란 고함이, 골 찬스를 놓쳤을 땐 “아아~”하는 탄식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처음 진행하는 이벤트여서 차질도 빚어졌다. 전반전에 중계 화면이 멈추는 일이 발생한 것. 처음엔 “그럴 수 있지”라며 웃어넘기던 팬들도, 문제가 반복되자 하나둘 스마트폰을 꺼내 영화관에서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시청하는 웃지 못할 풍경을 연출했다. 연맹 관계자는 “영화관 지하 네트워크 문제와 영상 재생 프로그램 변경 과정에서 오류 메시지가 뜨는 문제가 발견됐다”며 “25일 수원 FC전엔 IPTV 수신기를 달아 영상을 재생하는 등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후 CGV는 팬들에게 영화 무료 관람권을 나눠주며 사과했다.

서울 팬 김수진씨(왼쪽)와 손하현씨가 기성용이 선물한 응원 머플러를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이동환 기자


관람에 불편함이 있었고 이날 서울의 어린 선수들도 1대 2로 패했다. 그래도 팬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대학생 손하현(19)씨는 “친구들끼리 보는 것 같고 눈치 안 보고 소리도 지를 수 있어 좋았다”며 “앞으로도 갈 수 없는 원정경기는 다 보러 올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직장인 정다훈(39)씨도 “대형 스크린으로 K리그를 모여서 본다는 것 자체가 경기 결과를 떠나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영화관을 나오는 팬들의 밝은 미소를 보니, 축구와 영화관이 꽤 어울리는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코로나19시대에 볼 수 있는 진풍경 중 하나가 아닐까.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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