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일 잊지 말라" 박원순 비서실 성폭력 피해자의 당부
“잠깐만요, 피해자 변호사님, 마지막 의견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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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시 공무원 성폭력 사건 항소심 결심
22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404호 법정. 고개를 숙인 채 최후 진술을 시작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의 발언이 재판장의 제지로 잠시 멈췄다.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문광섭) 심리로 열린 정씨의 준강간치상혐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다. 재판장의 물음에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전한 입장문이 있다며 의견서를 읽어내려갔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될 수 밖에 없는 고통입니다. 그 날이 제 인생에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 그 날 이후 저와 제 가족의 일상은 무너졌습니다.”
정씨와 피해자 A씨는 서울시청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였다. 지난해 4월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신 정씨는 술에 취한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준강간치상)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얻었고, 정씨는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힘들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제가 되찾은 일상은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피고인의 행위에 합당한 형사처벌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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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당부한 말은
재판부에 올바른 판단을 구한 피해자는 피고인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정씨 사건 재판이 시작된 뒤 A씨가 정씨에게 입장을 전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다.
“피고인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재판이 끝나더라도 그 날의 일이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이었는지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재판이 끝나더라도 재판받을 때 반성한다고 말했던 그 의지를 유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저도 한 때 동료였던, 제가 신뢰했던 피고인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심과 2심이 진행되는 동안 A씨는 재판부에 의견을 표명한 적은 있었지만 사건 당사자인 정씨에게는 어떤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재판 이후 중앙일보에 “항소심 결심 공판인 오늘이 사실상 피해자의 의견을 직접 전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A씨는 과거 믿었던 선배였던 그가 1심과 2심에서 혐의를 인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한 것 같고, 피고인이 법정에서만 선처를 바라며 용서를 구할 게 아니라 이후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후 진술을 하다 말고 피해자가 전해온 입장을 들은 정씨는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다시 진술을 시작했다. 정씨는 “사건 후 무섭고 힘든 나머지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 입장에서만 생각했다”며 “사건의 원인 제공자는 분명히 저고, 모든 것은 저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되고 단 하루도 그 날의 기억을 잊은 적 없고, 죄인으로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검찰은 1심과 같이 정씨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정씨의 변호인은 “정씨는 이 사건으로 공무원직에서 파면됐고, 반성하는 취지에서 불복 절차를 진행하지도 않았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정씨의 항소심 선고는 다음달 27일이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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