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풀리면 10~15년 된 아파트 타격..서울집값 어디로
‘거래 절벽’.
요즘 서울 신축 아파트 시장을 한 단어로 설명하면 이렇다.
여러 사례가 있다. 송파구 헬리오시티는 총 9510가구로 서울에서 가장 가구 수가 많은 단지다. 하지만 올 들어 매매 거래는 32건에 불과하다.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역시 3658가구지만 매매 거래는 13건에 그친다.
정부가 다양한 주택 공급 대책을 쏟아내면서 매도자와 매수자 간 의견 차이는 커졌다.
매수자들은 공급량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만 집주인들은 좀처럼 호가를 내리지 않는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전반적인 집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재건축 활성화는 다른 신축이나 준신축, 리모델링 추진 아파트에도 영향을 준다. 재건축 규제 완화 기조가 서울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을 모은다.
▷구축 오르고 신축은 안정
올해 서울 집값은 그런대로 안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3월 서울 아파트값은 1.05% 상승했다. 상승폭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경기(5.6%)나 인천(5.4%)과 비교하면 안정적인 수준이다. 서울 집값 상승률이 둔화된 이유는 올해 입주 예정 물량의 40%가 1분기에 집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올해 서울 아파트 시장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서울의 준공 20년 초과 아파트값 상승률은 1.27%로 같은 기간 준공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상승률(0.7%)보다 높다. 오래된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말부터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의무를 피하기 위해 주요 재건축 단지는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6·17 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아파트를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구입하면 입주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조합설립절차를 마치려 사업에 속도를 냈다. 재건축 사업 추진이 빨라지자 매수세가 몰리며 집값이 뛰었다.
여기에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이 확대된 것도 오래된 아파트 가격이 오른 이유로 꼽힌다. 지역별로 살펴봐도 이 같은 특징은 잘 나타난다.
서울에서는 송파구가 1.64% 상승해 가장 많이 올랐다. 강남구(1.33%), 마포구(1.32%), 서초구(1.3%), 양천구(1.29%), 노원구(1.25%) 등이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모두 재건축 단지가 밀집된 곳이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은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중심으로 사업 추진 기대감이 확대되며 매수 수요가 유입되고 있다. 재건축 단지는 일반 아파트 시장과 다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지금과 같은 거래 절벽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는 시각도 있다. 수요자는 가격이 떨어지면 사려 하고 집주인은 가격 상승 기대감이 있으니 호가를 내리지 않는 지금 상황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부동산 전망은
▷7년 연속 올랐는데 또 오를까
매경이코노미는 부동산 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부동산 시장 전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단지 위주로 호가가 오르고 있지만 서울 전체 집값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내다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해까지 서울 집값이 워낙 많이 올라 마냥 오르기 어렵다”며 “지금부터 서서히 조정에 들어가거나 안정된 상황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은 2013년, 강북은 2014년부터 7~8년간 집값이 고공행진했다. 올해 상반기 정점을 찍고 하반기 주택 시장은 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고종완 원장의 생각이다.
재건축 단지는 전반적으로 그 지역 내에서 입지가 좋은 곳에 위치했다. 입지가 괜찮은 곳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기존 다른 아파트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부동산 시장은 상황에 따라 상품별로 다르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신축, 준신축, 구축 등 모든 아파트 가격이 다 오른다. 반면 집값이 하락하거나 혹은 안정된 시기에는 모든 물건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시장이 필요로 하는 물건은 오히려 오르기도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잘 드러난다. 2003년 10·29 대책 이후 2004년에는 각종 규제로 매수 심리가 위축되면서 시장이 위축됐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1.2% 하락했다. 입주 3년 이상 된 아파트 가격은 1.3% 하락했지만 신축 아파트는 오히려 가격이 4.1% 올랐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거나 하락장이 와도 신축 아파트 가격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15년 이상 된 구축 아파트는 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건축 규제 완화는 결국 신축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단기간에 충분한 물량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축 아파트 강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재건축 규제 완화는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부르고 이는 신축 아파트에 영향을 준다. 지금처럼 재건축 조합설립 후 매매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신축을 대안으로 보는 매수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장·단기 관점에서 전망한 의견도 눈길을 끈다.
김종선 BSI경영연구원장은 “단기적으로는 신축이나 재건축 가능 연한에 도달한 구축 아파트는 가격 상승 압력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오세훈 시장 공약대로 재건축을 통한 공급 물량이 시장에 공급되면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재건축 활성화는 준공 15년 전후 단지 중 재건축이 불가능한 단지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잠실 5대장’이라고 불리는 엘리트레파(엘스, 리센츠, 트리마제, 레이크팰리스, 파크리오)가 대표적이다. 모두 2000년대 후반 준공한 단지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만약 잠실주공5단지나 잠실우성 등 인근 대단지 구축 아파트가 재건축에 성공하면 엘리트레파 단지는 가격이 안정되거나 조정을 거칠 가능성이 있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그동안 집값 상승 피로감이 높고 정부의 대출, 세제 규제가 강력한 상황”이라며 “신축 아파트나 재건축이 가능한 구축 아파트와 달리 준신축 아파트는 상승 동력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재건축 활성화는 리모델링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 중 상당수는 재건축 기대 이익이 크지 않은 곳이다. 게다가 한계도 뚜렷하다. 리모델링이 완료된 단지는 대부분 내부 구조가 다른 신축 아파트와 비교해 선호도가 떨어진다.
한태욱 동양미래대 경영학부 교수는 “그동안 재건축 규제가 강했기 때문에 일부 단지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려고 했다”며 “전반적인 재건축 활성화는 역설적으로 리모델링 시장에 좋지 않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5호 (2021.04.21~2021.04.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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