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품격⑤] 핏빛 느와르와 넘치는 제주 감성 그리고 '물회'

홍종선 2021. 4. 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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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낙원의 밤'

<편집자 주> 명작은 시대가 흘러도 명작입니다. 대중과 첫 만남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한 작품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때론 세세하게 때론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범죄 조직의 2인자지만, 실질적인 중심인 태구(엄태구 분)는 어느 날 아픈 누나와 조카를 교통사고로 잃는다. 태구는 이를 사고가 아니라 판단하고 라이벌 조직의 회장과 조직원들에게 복수한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태구는 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일단 제주도로 몸을 피한다. 그곳에서 태구는 시한부를 선고 받은 재연(전여빈 분)을 만난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감정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그런 사이 라이벌 조직의 2인자인 마이사(차승원 분)가 태구 조직의 양사장을 협박하고, 결국 태구를 제거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제주도로 쫓아온 마이사와 양사장에게 태구는 목숨을 위협받고 재연 역시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그들에게 제주도는 더 이상 낙원이 아니게 된다. (줄거리)


홍종선 : 돌직구 질문. ‘박훈정은 신세계 이후 진보하고 있나’.


유명준 : 차라리 신세계 2편이나 스핀오프로 뭔가 만들었으면 나았을 텐데. 이번 시도는 진짜 ‘길 잃은 느와르’에요.


류지윤 : 전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했어요.


홍종선 : 나는 ‘신세계’ 때 ‘와우!’ 한 뒤 ‘대호’ 때 흥행과 별도로 다른 장르도 잘 만드는구나 했다가 ‘브이아이피’에서 ‘음 뭐지?’ 했고 ‘마녀’ 때, 그래 다시 희망을 걸어보겠어! 했는데, 이번에 ‘아, 우리 박 감독께서 파도를 타시네’ 이런 느낌.


유명준 : 아 중간 영화까지 포함해서요? 그렇다면 선배 말대로 갈지자에요. 기대했던 ‘브이아이피’를 망치고, 기대를 안했던 ‘마녀’를 살리고.


홍종선 : 누구나 계속 잘하는 건 너무나 어렵지.. 그건 당연한데. 평차가 좀 큰 것 같아요


류지윤 : 스토리가 너무 단조롭고 진부하고 ‘신세계’와 비슷한 설정도 많았고, 이건 일부러 그런 건지 궁금했는데 이번에 인터뷰를 진행 안해서 아쉬웠어요. 병원에서 누나 맞이할 떄 자성이 정청 공항에서 맞이하는 장면 생각나고, 엘리베이터 ‘드루와 신’이 차량 내부에서 피 터지는 싸움장면에서 또 생각났고. ‘신세계’가 석회장 교통사고로 갈등 시작되는데, 누나-조카 교통사고로 복수의 시작되고. 넷플릭스 시사회 때는 그런 부분이 안 보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몇몇 장면이 겹쳐 보이더라고요.


홍종선 : 그러네요. 감독이 특정 장르를 계속해서 하는 것도 좋고. 자기가 자기를 오마주 할 수 있는데, 이게 자칫 자기복제가 될 수 있는 함정이 있어.


유명준 : 제주도 창고에서 모습도 황정민이 송지효 잡아들이고 한 모습과 비슷하고. 뭔가 ‘신세계’와 연결시키려 한 느낌은 분명 들어요. 그런데 배우들이 ‘신세계’에 비해서 약해서인지, 장면마다 힘이 빠지는 느낌. 엘리베이터 신과 차량 신은 분명 겹쳐 보이기는 한데. 약해요. 황정민의 ‘드루와’를 넘기에는.


류지윤 : 맞아요. 그 때 만큼의 임팩트는 없죠.


유명준 : 차승원은 분명 악역을 연기하려 하고, 조폭으로 힘을 주는데 뭔가 웃기고. 그나마 박호산이 빌런 역할을 제대로 밉게 해서. 즉 진지한 놈, 웃긴 놈, 미운 놈 느낌이 나서. ‘신세계’를 연결시키면 엄청 약한 느낌이.


홍종선 : 엄태구는 좋은 배우지만 조금 더 커야지. 벌써 황정민과 에너지가 비슷하면 ‘괴물’.


유명준 : 그러다보니 배우 개인 개개인보다는 연출이 확실히 뭔가 진부하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느와로인데 갑자기 중간에 애정 어린 제주도 로드무비 느낌도 나고.


류지윤 : 감성 느와르. 갑자기 재연 삼촌 일에 목숨 걸고 나서는 것도 조금의 포용력이 필요했어요. 재연이 누나처럼 종양 있어서 대체제인건가를 상기시켜야만 가능한 일들이죠.


홍종선 : 박훈정 감독에 관한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진 건, 이 영화가 박 감독이 배우 힘 덜 입고 자신의 연출력을 보여 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엄태구, 전여빈, 박호산 너무 좋은 배우고, 솔직히 차승원은 힘 보태 준 거고. 그렇지만 빅스타 주연은 아니니까. 과연 ‘박훈정의 느와르’라는 것만으로 통하느냐의 문제였다고 생각하는데요. 뭔가 속도감이나 긴장감이 덜한데, 그 원인이 ‘신세계’ 때보다 사람 냄새 나게, 또 멜로도 살짝 넣어서인. 나름 박 감독이 변화를 추구한 영화인가 생각해 보았는데.


유명준 : 그런데 전반적인 평은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연출이 진부하다’ 로 빠지고 있죠.


홍종선 : 그보다는 영화의 리듬과 탄력 자체가 부족하다 싶어요. 저도 그 말에 결국 동의하는 거죠.


류지윤 : 그나마 전 조금 그래도 느와르 영화지점에서 새롭다고 느낀 건, 밤엔 조용하고 낮에 칼부림이 난다는 것?


홍종선 : 오. 그러네. 그래서 ‘낙원의 밤’이구나. 그들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태구에게는 쫓겨서 간 제주도가 낙원이고, 그 중에서 낙원의 밤에 평화롭고 행복했네요.


유명준 : 그냥 ‘제주도의 밤’ 느낌이. 주인공이 3명이라는 평도 봤어요. 엄태구, 전여빈, 제주도.


류지윤 : ‘제주도 가고 싶다’ ‘물회 먹고 싶다’란 생각을 자꾸 했네요.


홍종선 : 나도 제주도 물회.


유명준 : 사실 엄태구와 전여빈은 연인 보다는 가족 느낌이 강했죠. 전여빈이 자자고 할 때 엄태구가 “나도 취향이 있어”라고 말한 부분이 거절 보다는 가족으로서 말하는 느낌이.


홍종선 : 그러게 류 기자 말대로, 누나 대신 지키고픈 사람이었네요. 배우 얘기 해 볼까요. 엄태구 어때요?


유명준 : 연기가 되니까, 보는 거 자체는 편했어요. 너무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전여빈과 상대역으로 할 때 힘을 너무 빼지도 않았고.


류지윤 : 그리고 엄태구 배우가 그 동안 해왔던 거친 연기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그 허스키한 목소리가 주는 쓸쓸한 감성?


홍종선 : 배우로서 얼굴 되고 표정 좋고 움직임 훌륭하고 목소리도 개성 있는데, 발음 전달력이 아쉬워요


유명준 : 발음은 이상하게, 전에 ‘구해줘2’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삼 뭔가 아쉬움이.


홍종선 :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고. 특히 영화 초반에 관객이 적응하면 훨씬 듣기 쉬우니까 좀 더 또박또박 말하더라고요. 책 읽은 또박 말고, 연기하면서 또박. 근데 아무래서 피 흘리고 싸우고 발음을 똑바로 하지 말아야 하는 신들이 많다 보니 그런 장면들에선 좀 덜 들리는 게 사실이더라고요. 좋은 배우가 아니면 이런 아쉬움도 없을 거예요. 너무 좋아하니까 조금 더 전달력이 나아지기를 바라게 되더라고요. 전달력은 정말 기본이니까


유명준 : 장면마다 다른 톤으로 들렸군요. 전 엄태구는 괜찮은데, 전여빈과 차승원이 많이 아쉬웠죠. 전여빈의 총기 액션을 누가 '마녀'와 비교하는데, 어중간했어요. 그리고 '멜로가 체질'에서의 모습도 가끔 보이는 거 같아서. 곧 죽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액션이라 당연히 파괴력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복수를 적진에 뛰어든 사람치고는 어설픈? 그 중간 사이.


류지윤 : 저도 전여빈은 아쉬웠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캐릭터의 활용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마지막 5분에 폭주하기 전까지 좀 기능적이고 답답하게 그린 것 같아요. 그 5분을 극대화 시키려는 감독님의 의도인건가. .


홍종선 : 나는 전여빈의 날 것 같은 연기, 막 살아서 펄떡 거리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 얼마나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할까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할까. 문소리가 감독한 영화 최고의 감독에 전여빈이 나오는데. ‘오, 신선! 에너지 굿!’ 문소리가 좀 야무진 눈으로 캐스팅 했을까 싶더라는.


유명준 : 전여빈이 나온 영화는 처음 봤는데, 전여빈이 드라마에서는 초반에 좋은 평은 못 받다가, 중반 넘어가면서 호평으로 바뀌어요. ‘멜로가 체질’도 그렇고, ‘빈센조’도 그렇고.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 초반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뭐랄까 본인이 잡아놓은 캐릭터를 시청자에게 설득시키는 배우랄까. 2시간짜리 영화에서는 다소 힘들죠.


홍종선 : 아. 초반엔 훅 못 끌어당기는구나. 난 전여빈 단편영화 등에서 처음 보고 ‘와와와!’ 했어요. 정은채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그런데 정은채 ‘더 킹’ 보면 한참 더 공부해야겠던데, 전여빈은 그에 비하면 성장 속도가 빠른 것 같아요. 정은채도 어서 껍질 깨고 나오길 바라고. 박호산은 어때요? 난 이 배우 너무 좋음.


유명준 : 얄미운 역할이 잘 어울리죠.


류지윤 : 너무 연기 잘하시잖아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끝까지.


홍종선 : 어쩜 그렇게 조금도 멋있으려고 안 해. 진짜 양아치를 제대로 연기해. 그리고 차승원이 이 영화에 왜 출연했을까를 생각해 봤어요. 유일하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태구는 누나와 조카에게 못 지켰고, 양 사장은 하나도 안 지키고, 삼촌도 누구도 못 지키는데. 마 이사는 뱉은 말은 지켜. 또 계산을 받아내기도 하지만 자기가 치를 계산이 있으면 치러(마지막 신). 진짜 제대로 옛날의 '건달'이라는 생각. 양아치 아닌 건달.


류지윤 : 전 차승원 배우 연기 너무 좋았는데, 각 잡고 무게 잡는 것보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 더 무섭고.


유명준 : 어찌보면 계산적이죠.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그래서 양사장을 죽이지 못하는.


홍종선 : 제일 멋진 역할. 마 이사. 분량 적어도 할 만. 박 과장과의 약속이 있어서 참는 거. 그것조차. 태구의 미래가 양 이사일 수도 있었을 수도. 그래서 태구의 마지막을 관객이 아쉬워하지 않게, 선을 지킨다 해도 깡패는 깡패, 결말은 같다.


유명준 : 다른 이야기지만 박과장 역의 이문식에게 중국집에서 마이사가 계속 “산수” 이야기 하잖아요. ‘공공의 적’에서 이문식 별명이 산수. 전 그거 보고 웃었는데.


홍종선 : 맞네 산수. 이문식 배우 오랜만에 봐서 넘 좋았어요. 연기 진짜 열심히 제대로 하는 배우인데. 배역 위해서라면 생니도 뽑고 검은 잇몸 드러내 연기하고.


유명준 : ‘낙원의 밤’ 전체적으로 웃음 포인트 세 장면이, ‘산수’, “나도 취향이 있어”, 그리고 마지막 차승원이 “문 닫으면 사냐 저게 비비탄이냐”. ‘낙원의 밤’이 극장에서 상영했다면 어땠을까요?


류지윤 : 전작들처럼은 히트 못했을 것 같아요. 오히려 넷플릭스에서 밤에 맥주마시면서 혼자 보고 싶은 영화.


유명준 : 난 혹평이 더 많이 가해졌을 거 같다는 생각이. 그래서 넷플릭스 선택이 오히려 신의 한수인 듯.


홍종선 : 가수에게 인생곡 있는 게 큰 행운이면서도 발목을 잡듯이. 엄청난 명작을 하나 일찌감치 냈다는 건 쉬운 인생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견디며 점점 성장하는 박찬욱, 봉준호, 윤종빈, 이준익, 김용화, 김성훈 등은 대단한 거죠. 박 감독도 다 성장의 과정으로 그래프가 그려지기를.


류지윤 : 전 그럼에도 ‘마녀2’ 기대를 걸어봅니다.


유명준 : ‘원히트원더’ 가수들이 인생이 쉽지 않듯이요. 물론 박 감독은 히트작이 많지만, 앞서 선배가 말했듯이 굴곡이 심해서. 만약 ‘마녀2’가 ‘낙원의 밤’처럼 뭔가 애매하면, 박 감독은 후속작 못 만드는 감독으로.


홍종선 : 엉뚱한 얘기인데, 낙원의 밤 보신 관객들께 ‘시시콜콜한 이야기’ 추천. 엄태구의 달달 멜로. 피 없이 칼 없이 아주 좋은 엄태구를 만날 수 있어요. 30분 정도 짧은데, 그 영화 보고 ‘아, 엄태구 주연 되는구나!’ 함.


류지윤 : 이게 더 본체와 어울리는 거 같아요. 인터뷰 하는데 ‘엄블리’.


홍종선 : 기자들이 목소리 작다 하니, 손을 모아 확성기 만들어 얘기했다면서요. 너무 귀여워, 상상만 해도 귀요미.


류지윤 : 네 그리고 진짜 킬링포인트가 ‘쉴 때 뭐하세요?’라고 했더니 우리 집 강아지가 엄지인데 엄지 보거나 부모님이 엄지 사진 찍는 거 보거나 부모님이 보내준 엄지 사진 봅니다. ‘나가고 싶은 예능은요?’이란 질문에는 ‘동물농장이요!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반전 매력.


유명준 : 전에 어느 자리에서 엄태구 이야기 나왔는데, 가장 인상적인 영화나 장면을 꼽으라고 하니 대부분 ‘택시운전사’를 꼽더라고요. 짧은 등장에 임팩트가 너무 강했던.


류지윤 : ‘안시성’에서도 좋지 않았나요?


홍종선 : ‘안시성’ 좋았지. 파소. ‘밀정’ 하시모토도 좋고, ‘차이나타운’ 우곤. 신스틸러죠. 생각해 보니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인간 중독’. 다 좋았네. 분량 적어도.


<‘낙원의 밤’은>

홍종선 : 엄태화 감독 동생인 줄 알았는데, 그냥 배우 엄태구로 성장 중. 그의 필모그래피를 비축하는 마음으로 봐둬야 할 ‘낙원의 밤’. 극장에서 한 번, 집에서 또 한 번은 무리일까. (극장 얘기를 한 건 나중에 재개봉이 되기를 바라는 축원!)


류지윤 : 엄태구의 쓸쓸함, 전여빈의 처연함, 차승원의 긴장감 있는 위트가 살린 영화. 신작에 실망했는데 다시 기대하게 만드는 박훈정 감독의 이상한 ‘낙원의 밤’.


유명준 : 느와르인데 애정 넘치는 로드무비 느낌이. 제주도에서 스쿠터 타고 물회 먹으러 가고 싶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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