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을 뛰게 하자①] 반도체·배터리·미래차..글로벌 패권 경쟁 한복판에 놓인 한국

4차산업혁명 시대 신성장 사업으로 주목..車 반도체 공급난으로 중요성 부각
대변혁시기에 美-中 국가간 경쟁 심화 속 기업 투자와 국가 대응력 향상 중요
한 발 늦는 정부 대응..외교력·협상력 향상에 기업인 적극 활용 목소리 높아져

중국 산시성 시안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 신규라인에서 직원이 반도체 설계도가 새겨진 마스크를 살펴보고 있다.ⓒ삼성전자

반도체·배터리·미래차 등 미래 성장산업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술 주도권을 잡기 위한 패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넘어서 국가 경쟁력 확보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와 합종연횡 움직임 속에서 각국 정부들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면서 기술과 시장의 대변혁의 파고가 일어날 전망이다. 변화의 혁신의 시대에 신성장산업 주도권 확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에 놓여진 국내 기업과 우리 정부의 현실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미래 산업 기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이제 기업과 경제계 이슈를 넘어 국가와 정치적 사안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반도체·배터리·미래차 등 4차산업 혁명시대에 고 성장을 구가할 산업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상황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반도체는 차량용 제품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글로벌 공급부족 사태로 산업과 시장을 둘러싼 환경과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수요자인 자동차업체들은 수급 조달에 목을 매고 공급자인 반도체업체들은 생산 확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 공급 부족 사태를 기회로 삼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타이완 TSMC는 이달 초 생산 확대를 위해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3조원) 투자를 발표하는 등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앞서 지난 1월 올해 설비투자액(케펙스·Capex)으로 250억∼280억달러(약 28조~32조원)을 제시한 것에 이어 적극적 투자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또 미국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은 지난달 23일 파운드리 서비스 사업부 신설과 함께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새로운 팹(공장)을 건설해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 반도체·배터리·미래차, 기업 넘어 국가적 이슈로 부상

전 세계적인 쇼티지(Shortage·부족) 상황이 도래하면서 반도체는 이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사안으로 부상한 상태다. 반도체가 국가 핵심 안보 자원으로 부상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필요성이 제기된 가운데 미국에서는 자급론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현재 정치적 이슈에서부터 무역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는 ‘빅2’ 미국과 중국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향후 국가간 경쟁이 넘어서 갈등으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 초 출범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반도체 부족 문제 해결책을 논의하는 온라인 화상 회의 자리에 삼성전자를 초청하며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중국 정부도 지난 3일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에 반도체와 5세대(5G) 이동통신 분야에서 협력할 것을 요구하는 등 양국의 압박이 거세질 조짐이다.

특히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수급난 해소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 상황으로 자국 내 생산기지 확보 등을 위해 삼성전자에 강력한 협조를 구하는 모양새다.

미국 정부의 행보에 경쟁사인 인텔과 TSMC 등이 적극적인 호응과 함께 보조를 맞추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백악관 화상 회의 직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6~9개월 내에 실제 생산한다는 목표 아래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자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반도체 생산 비중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셀.ⓒSK이노베이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국내 업체들간 불거진 배터리 분쟁에서 미국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에 나선 것도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포석이 깔려 있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년여간 지속돼 온 양사의 분쟁이 종지부를 찍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이는 합의를 이끌어내야 SK가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킬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국 자동차 기업으로의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을 가능하게 하면서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성공했다.

반도체와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은 미래차 산업 육성하고도 맞물려 있는 이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자율주행 전기차로 미래 자동차 산업의 기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이번 글로벌 공급 부족 사태로 반도체는 이미 경제를 넘어서 정치적 이슈로 부상했다”며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사안으로 떠오른 만큼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민·관의 상호 협력을 통한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 글로벌 패권 경쟁 속 중요성 커진 정부의 역할

산업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단지 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정부가 전 세계 각국 정부를 상대로 외교력과 협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장 반도체만 봐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미국과 중국간 극심한 경쟁과 갈등의 한복판에 놓일 수 있는 상황으로 대응력 부족은 기업의 실기(失機)를 넘어서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로서는 미국과 중국이 주요 생산기지이자 시장이라는 점에서 보다 면밀한 대응전략으로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외교적 채널을 통한 지원군 역할이 분명 필요하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대응력 향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 부총리는 지난 16일 “반도체·배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인프라로 향후 자국내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패권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시스템반도체·미래차 부문 경쟁력과 글로벌 시장 점유를 위해 정부·기업 모두 촌각을 다투는 총력 대응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기자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내정자도 지난 19일 "여러 선진국이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생태계를 재건하려는 움직임 있다"며 "우리가 잘하는 산업인만큼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하려면 핵심 기술과 핵심 인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 업계와 열심히 소통하면서 대안을 모색해 함께 노력하면 기회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한발씩 늦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지난해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이제서야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9일에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과 대책 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반도체 수급난으로 생산라인 일시 중단 및 감산 등의 조치가 이뤄지고 삼성전자가 미국 백악관 반도체 대책 회의 초청 소식이 전해진 한참 뒤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21일 국회 차원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담은 특별법 마련에 속도를 내기 위해 ‘반도체 기술 패권전쟁 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를 출범시켰지만 다소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 배터리 분쟁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지역적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지난 2년여간 국내 업체들간 분쟁을 정부가 중재에 나서 해결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정부의 대응력 부족에 대한 우려가 기저에 깔려 있다.

정부가 국가 산업 경쟁력 지속을 위해 각국별로 다른 환경과 입장이라는 복잡한 정치적 방정식을 플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대외 외교력과 협상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는게 재계의 인식이다.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지적으로 현재 영어의 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산업의 대변혁기로 이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국가적으로 높은 대응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도움이 된다면 정치인이나 기업인 누구를 막론하고 한 사람의 힘이라도 보탤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 자율주행차 개념 및 기술구분.ⓒ산업통상자원부

데일리안 이홍석 기자 (redstone@daili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