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돌을 들여다보니 제주가 다시 보인다

2021. 4. 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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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디를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게 돌이다. 한라산을 비롯해 수많은 오름도 돌이고, 바닷가의 이국적 풍광을 만드는 너럭바위도 모두 돌이다. 이 많은 돌로 제주 사람들은 담도 쌓고, 돌하르방도 만들었다. 이번에는 제주의 역사와 생활 문화 흔적이 담긴 돌을 살피며 여행하는 코스를 제안한다.

1. 돌 사이에 석회를 넣어 쌓아 올린 토석담을 두른 제주의 민가들 2. 제주의 밭담. 농지의 경계를 돌로 쌓아 이웃과의 분쟁도, 가축으로 인한 피해도 예방했다. 3.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 수호신과 금표(출입금지) 역할을 해 왔다.

제주가 화산섬이고, 용암이 분출할 때 떨어진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이 제주도의 태반을 이루고 있다는 건 상식이지만 이번에 제주 전래 설화 중 하나인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듣고 그 스토리텔링에 감동받아 짐짓 제주의 돌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정말 돌이 많다는 것과, 그 많은 돌을 생활에 다양하게 활용해 온 제주 사람들의 지혜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제주의 돌을 찾아 다녔던 여정을 소개하려 한다.

제주에서는 흙보다 돌이 흔해서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지을 때 돌을 많이 썼다. 밭의 경계를 나타내는 ‘밭담’은 고려 시대부터 가축에게서 농작물을 보호하고 이웃과의 분쟁을 예방하는 용도로 쌓았는데, 최근에 제주 전통문화 산물로 평가받아 FAO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돌 그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신의 집이라 할 수 있는 ‘당터’도 돌로 쌓아 올렸다.

농사짓기 위해 돌을 골라내서 밭 가운데 쌓은 돌무더기를 ‘머들’이라 하고, 바닷가에 해녀들이 불을 쬘 수 있게 돌로 만든 공간을 ‘불턱’이라 한다. 용천수 둘레에 네모난 담을 쌓아 식수를 구하고 빨래도 하던 ‘도구리통’도 돌담으로 만들었다. 멀리서 오는 배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옛 등대 ‘도댓불’도 돌로 쌓았고, 동네 어귀에 세워 마을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하는 수호신 역할의 ‘돌하르방’ 역시 돌을 깎아 만들었고, 돌에 1~5개의 구멍을 뚫어 나무를 가로질러서 주인이 집 안에 있고 없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농사 도구였던 ‘연자방아’도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막돌을 쌓아 ‘막돌담’을 만들기도 하고, 돌 사이사이에 흙이나 석회를 넣어 ‘토석담’을 쌓기도 했다.

제주의 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구경할 수 있는 조천의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시작해 세화해변의 도구리통, 해안 도로를 따라 평대리 도깨동산의 불턱과 옛 등대, 김녕의 청굴물, 행원리의 말랭이물 그리고 제주의 북쪽에 쌓아 올린 북촌환해장성 등을 돌아보았다. 제주의 돌과 식물을 그대로 간직한 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낸 핫 플레이스 ‘카페 공백’ 구경은 덤이다. 코스 중간에 ‘하도리 숨비소리길’이 있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내는 ‘호잇~ 호잇~’하는 숨비소리를 테마로 해녀들의 삶의 터를 콘텐츠로 만든 코스로, 기회가 되면 꼭 들르길 권한다

▶가장 제주다운 곳, 제주돌문화공원

나지막하게 지어 지형과 어우러진 형태의 제주돌박물관
시작은 제주돌문화공원이었다. 제주에 일보러 간다 하니 지인이 “다른 데는 다 가봤을 테고 이번에는 제주돌문화공원을 보고 오라”고 추천을 했다. 관광객들이 잘 안 가지만 가장 제주다운 곳이라는 말을 들으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제주공항에서 20㎞, 승용차로 40분을 달려 조천읍으로 들어서니 넓은 평원에 뾰족뾰족 검은 돌들이 솟아 있는 공원이 나타났다.

제주돌문화공원은 1998년 제주시에 있던 탐라목석원에서 2만여 점의 전시 자료 기증을 약속받으면서 사업이 시작되어 제주시 조천읍 일원에 100만 평 부지를 확보해 2006년에 개원했다. 지난 16년간 제주의 돌과 관련된 설화와 문화를 집대성해 박물관이자 생태 공원으로 운영해 왔다. 얼핏 보기에는 제주의 돌과 나무를 곳곳에 무심하게 펼쳐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제주의 생성과 문화의 뿌리가 되어 온 신화를 주축으로 지질학적 자료를 덧붙여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맞춰 구성해서 공원 곳곳에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개관하자마자 문화관광부의 문화·생태·관광 자원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을 정도다.

어머니의 방에 전시된 모자상 형상의 용암석. 그림자가 포인트다, ‌지질에 따른 암석 표본들이 전시된 박물관 내부, ‌기기묘묘한 형상의 자연석 전시실
관람 시작에 앞서 제주돌문화공원의 주제인 한라산 영실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를 알아야 한다. ‘옛날에 큰 불기둥이 솟아올라 하늘과 땅이 생길 때 바다에서 거대한 여인이 떠올라 화산재와 돌덩이로 바다 가운데 섬을 만들었다. 섬 중앙에 높이 산을 만들다가 꼭대기를 꺾어 내던졌더니 안덕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고, 흐트러진 흙들이 쌓여 360여 개의 오름이 되었다. ‘설문대할망’이란 이름의 그 여인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왼발은 제주도 북쪽의 관탈섬에, 오른발은 남쪽 지귀도에 걸쳤을 정도다 (키가 약 50㎞라는 계산이 나온다). 성산일출봉 분화구를 돌구덕 삼아 빨랫감을 담고, 우도를 돌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고, 제주와 육지를 잇는 돌다리를 놓으려 시도했던 흔적으로 조천의 엉장매코지가 남아 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서양 신화에나 있는 줄 알았던 티탄(tita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있다는 게 신기하고, 열거하는 숫자들의 어마어마함에 기함하면서도 그 장대함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상징탑, ‌‌화산 폭발로 속이 빈 바위인 용암구들이 전시된 통로
설문대할망 설화의 진수는 오백장군 이야기다. ‘지독한 흉년이 들자 설문대할망의 아들 오백 형제가 양식을 구하러 나갔는데, 설문대할망이 아들들을 위해 죽을 끓이다가 발을 잘못 디뎌 죽솥에 빠져 죽었다. 아들들은 돌아와서 그런 줄도 모르고 죽을 먹었는데, 막냇동생이 죽 속에서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 살을 끓여 만든 죽을 먹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막내는 통곡을 하며 차귀도로 달려가 바위가 되었고, 남은 아들들도 날마다 통곡하며 울다가 바위가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한라산 영실의 기암절벽이고, 5월이 되면 그 아들들의 피눈물로 물든 철쭉이 만발한다’는 이야기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로 제주의 생활력 강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몸을 바친 제주 여인들의 이야기이자, 제주에 숱하게 뿌려진 돌의 거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는 5월을 설문대할망의 달로 정해서 매년 5월15일에는 설문대할망제를 지내고 있다. 제주의 한라산부터 우도, 차귀도, 지귀도, 관탈도까지 동서남북으로 이야기의 가지가 뻗어나간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를 빌어 제주의 지형을 파악하고, 제주 여인들의 기개를 확인하면서 범우주적 모성을 기리는 의도다.

공원을 구경하는 데는 크게 3코스가 있다. 제1코스는 신화의 정원으로 돌 박물관과 오백장군갤러리, 어머니의 방을 돌고, 제2코스는 선사 시대부터 내려온 제주의 돌문화를 볼 수 있으며, 제3코스는 제주의 전통 초가들을 돌아본다.

1코스는 거석을 도열한 전설의 통로에서 시작해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상징탑을 지나 하늘연못을 거쳐 제주돌박물관에 이른다. 박물관 옥상에 설치된 지름 40m의 하늘연못은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은 죽솥과 물장오리, 한라산 백록담을 상징적으로 디자인하였으며 수상 무대로도 사용된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제주돌박물관은 오랫동안 생활 쓰레기 매립장이던 곳에 지었다. 노출 콘크리트 외벽의 박물관은 지하 2층에는 수장고, 지하 1층에는 형성 전시관과 자연석 전시관을 만들어 건물이 자연 경관과 유려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지구의 지질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용암구와 풍화혈 등 자연이 빚었지만 조형미를 지닌 자연석을 보다 보면 자연의 오묘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박물관에서 나오면 야외 전시장이 이어진다. 탐라목석원에 있을 때부터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갑돌이 일생’을 스토리텔링한 두상석 전시장, 연자방아나 정주석 등 농사나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돌 도구들, 제주의 상징이 된 돌하르방도 다양한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제주 목사가 수호신적·주술적·금표적 기능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의 상징과도 같은 조각품이다. 돌하르방들을 지나면 거대한 바위 위에 사람 모양으로 머릿돌이 올려진 돌들이 도열해 있다. 오백장군 군상이다. 돌의 빛깔과 모양이 각각인데, 허허벌판에 수백 개의 석상이 서 있는 모습이 장관으로, 엄마인 설문대할망을 그리는 오백장군의 효심이 장대하게 다가오는 공간이다. 오백장군 석상 사이를 지나면 큰 머들 형태로 지은 ‘어머니의 방’이 나온다. 원래 밭 가운데 쌓은 돌무더기를 제주어로 ‘머들’이라 하는데 이 형태로 용암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진귀한 용암석 하나를 설치했다. 모성애의 화신인 설문대할망이 아들을 안고 서 있는 모습처럼 보이는 것으로 벽과 수면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 더욱 확연히 보인다.

이후 제2코스 야외 전시장에서는 선사 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돌 문화를 볼 수 있고, 제3코스인 제주 전통 초가 마을인 ‘돌한마을’에서는 세거리집이나 두거리집 등 제주 전통 초가를 볼 수 있다. 둘러보려면 각각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해맞이해안로를 따라 찾아보는 제주 돌의 유적

‌평대리 불턱. 해녀들이 물질하고 나와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우던 곳, ‌평대리 불턱 옆 집 벽에 해녀들의 모습을 그린 벽화, ‌세화 바닷가에서 나는 용천수를 식수로 쓰기 위해 만든 도구리통
제주돌문화공원에서 나와 세화 방향으로 30㎞를 달리면 아름답기로 소문난 에메랄드빛 세화 앞바다가 나온다. 모래사장을 걸어 나가면 해변 끝에 검은 너럭바위가 이어지면서 네모난 돌담이 바다 위에 앉아 있다. 도구리통(세화해수욕장 동쪽 끝)이라 해서 용천수가 나오는 곳에 돌담을 네모지게 쌓아 식수를 얻고 빨래도 하던 곳인데, 바닷물과 정교하게 쌓아 올린 새까만 돌담이 어우러져서 근사한 그림을 만든다.

도구리통을 등지고 파란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해맞이해안로를 따라 2㎞ 서쪽으로 가면 오른쪽 바닷가에 평대리 불턱(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240-3)이 보인다. 해녀들이 추운 겨울에 물질을 끝내고 불을 지펴서 몸을 녹이는 나지막한 턱이란 뜻으로 돌담 안에 동그랗게 둔덕을 재현했다. 불턱 옆 집 벽에는 벽화로 해녀들의 활동 상황을 그려 아이들도 쉽게 해녀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꾸몄다.

평대리 불턱에서 300m 더 가면 암초 많은 평대리 해안에 어선들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옛 등대(일제 강점기 용어로 도댓불)가 있다. 돌을 차곡차곡 쌓고, 꼭대기에 불씨를 유지할 수 있게 바람막이 기둥을 세워 구조적으로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근처에는 평대리 주민들이 목욕탕으로 사용했던 용천수 보관소인 대수굴(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2026-17)도 있다.

대수굴 옆에 앉아 햇볕을 쬐는 할머니들의 도저히 알아듣기 힘든 제주 사투리를 뒤로하고, 5㎞를 더 가면 구좌 방파제 인근에 행원리의 말랭이물과 지서물(행원로7길 30-7 인근)을 볼 수 있다. 바다에서 마을 쪽으로 들어오는 곳에 돌담을 쌓아 물을 모아 목욕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동쪽에 있는 말랭이물은 남자들이 사용하고, 서쪽에 있는 좀 더 타원형의 담을 쌓은 지서물은 여자들이 제사용으로도 쓰고 목욕과 생활용수로도 사용했다고.

‌북촌리 앞바다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창문 모양의 창꼼바위, ‌평대리 앞바다의 암초를 피할 수 있게 불을 피워 올렸던 옛 등대
동복리의 카페 공백. 앞에는 제주의 자연을 보여 주는 돌과 풀이 정원을 이루고, 옆 전시동은 제주의 자연 위에 세련된 인테리어로 단장해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여기서 7㎞를 더 가면 유명한 김녕 청굴물(구좌읍 김녕리 1296)이 나온다. 용암대지인 제주의 바닷가에는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고 해안선 부근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김녕 청굴물은 차갑기로 소문이 나서 여름에 이 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묵어가는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육지에서 용천수까지 돌을 쌓아 길을 만들고 동그랗게 돌담을 쌓고, 가운데 축대를 만들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조형미가 뛰어나다. 김녕 지역의 지질을 탐방하는 14.6㎞(4시간 코스)의 김녕지오트레일 코스 중 하나다.

청굴물을 보고 다시 4㎞를 가면 동복리. 여기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유명한 카페가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 가족이 운영한다 해서 방탄카페로 소문난 공백(구좌읍 동복로 83). 드라이브 중의 휴식을 위해서도 좋지만, 제주의 돌과 자생 식물이 자아내는 ‘제주 속살’ 같은 풍경을 그대로 인테리어로 활용한 전시장이 구경거리다. 통창으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나와 돌과 갈대가 얽혀 있는 자연의 정원을 지나면 옆 동이 전시장이다. 오래된 건물을 보수해서 만든 전시장에는 마치 로봇의 팔처럼 움직이는 거울 사이 계단이 포인트.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유리창도 벽도 없이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아래층에는 제주의 돌과 구불구불 자라는 덩굴과 나무 등이 낡은 건물 속에서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순간 곶자왈 속에 시설을 만들었나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가끔 예술 작품을 걸어 놓고 전시회도 하지만 아무 것도 걸지 않고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제주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감각 전시장이다.

‌김녕 지오트레일 코스 중 하나인 청굴물, ‌제주올레길 20코스에 속해 있는 김녕금속공예벽화 마을 풍경. 제주도 문화 예술 단체인 다시방 프로젝트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다.
제주의 북쪽 해안 방어를 위해 쌓은 환해장성, ‌세화에서 북촌리까지는 제주올레길 19코스(조천~김녕)와 20코스(김녕~세화)가 이어진다. 올레길 곳곳에는 빨강과 파랑 리본이 묶여 있어 길을 알려준다.
제주의 돌을 살펴보는 돌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북촌의 북촌환해장성(조천읍 북촌15길 14 인근). ‘탐라만리장성’으로 불리는 곳으로, 고려 시대부터 외침을 막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현무암을 허튼층쌓기(불규칙한 돌들을 줄눈을 맞추지 않고 흐트려 쌓는 일)로 올리고 그 내부를 잡석으로 채워 쌓은 성벽이 200m가량 남아 있는 제주의 역사 유적이다. 북촌환해장성 표지판이 있는 위치에서 바다 쪽으로 나가면 ‘창꼼바위’라 해서 바위에 저절로 생긴 동그란 구멍을 볼 수 있다. 그 구멍을 통해 건너편 다려도가 보이는 풍경도 좋다.

성산에서 공항에 갈 때면 해안 도로와 내륙 도로를 고민하곤 했다. 효율성을 따져서 내륙 도로를 우선하지만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바다를 보며 달리는 해안 도로를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바닷가를 달리면서 파란 바다만 보고 달렸다. 바다가 더 파랗게 보이던 것은 새까만 제주의 돌들이 바닷가에서 경계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고, 그 제주의 돌에는 태초부터 있던 너럭바위도 있지만 제주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친 고된 노역으로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환해장성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제주를 새롭게 보는 법으로 제주올레길 걷기를 많이 이야기한다. 제주올레길 19와 20코스를 걸으며 밭담길의 돌을 다시 봐도 좋고, 올레 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해안 도로를 걸으며 환해장성의 돌담을 다시 봐도 좋겠다.

[글과 사진 신혜연(헤이컴 대표,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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