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게 얻은 정의.. 세상을 바꾸려는 변화 지금 시작"

전웅빈 2021. 4. 22. 04: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플로이드 유죄평결
평결 소식을 접한 흑인 청년이 두 팔을 뻗은 채 환호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고통스럽게 얻어진 정의가 이곳 공동체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평결은 이 나라와 세계에 중대한 함의를 갖습니다.”

지난해 5월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숨지게 한 전직 경찰관 데릭 쇼빈에게 20일(현지시간) 배심원 만장일치 유죄 평결이 내려지자 유족 측 변호인은 이 같은 환영 성명을 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세상을 바꿀 거야’라고 했던 플로이드의 딸 지아나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 그 변화를 시작하려 한다”고 위로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유명인사들도 이번 평결을 높게 평가한다는 입장을 연이어 발표했다. “현대 미국 인종주의에 대한 가장 폭발적 시련 중 하나”(뉴욕타임스·NYT)로 평가받는 이번 사건이 전 세계에 던진 메시지가 커다란 파문을 낳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인종차별 철폐 운동 새 이정표”

쇼빈은 지난해 5월 25일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한 혐의로 플로이드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그의 목을 무릎으로 9분29초간 짓눌러 숨지게 했다.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5월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직 경찰관 데릭 쇼빈이 20일(현지시간)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유죄 평결이 내려진 이후 수갑을 차고 구금시설로 이송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쇼빈은 2급 비고의적 살인, 2급 과실치사, 3급 살인 등 모두 3가지 혐의로 기소됐고, 배심원단은 각 혐의 모두에 유죄 평결을 내렸다. 백인 경찰관이 흑인 범죄 혐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에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는 미국 사회에서 전례가 드물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모든 미국인에게 정의가 구현되는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사건이 커진 데에는 현장을 찍은 흑인 여고생의 동영상이 있었다. 사건 당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몸싸움 과정에서 의학적 사고를 겪고 숨졌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었다. 그러나 당일 현장에 있었던 여고생 다넬라가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과잉진압 문제로 여론이 바뀌었다.

NYT는 “지난 11개월 동안 터져 나온 인종적 정의에 대한 외침이 미국인의 삶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1960년대 시민권운동 이후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규모”라고 분석했다.

NYT 설명처럼 미국에서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는 해시태그를 다는 인종차별 항의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됐고, 다른 나라에서도 동조 시위가 벌어졌다.

항의운동은 초기 구체적인 성과도 냈다. 여러 치안 개혁법이 주 차원에서 도입됐다. NYT는 30개 주 이상이 경찰 감독 및 개혁법을 통과시켰다고 분석했다. 대부분 경찰의 무력 사용 제한, 징계 시스템 점검, 민간 감독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기업들도 인종적 평등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내셔널풋볼리그(NFL)는 흑인 선수들의 경찰 폭력에 대한 시위를 지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분열과 인종 불평등 문제 경종

대선이 다가오면서 반대 움직임이 시작됐다. 일부 강경 시위를 문제 삼아 플로이드 사건의 의미를 폄훼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들을 ‘폭도’로 규정하며 강경 진압에 나서 미국 사회가 극단적 분열 상황으로 치달았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해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는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미국 사회가 이번 판결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차별에 기인한 미국사회의 분열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우려감이 깔려 있다. 로이터 통신은 “문제투성이의 미국 인종차별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이자 공권력의 흑인 처우에 대한 질책”이라고 평가했다.

플로이드 사건 재판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진행되며 불평등 문제도 자극했다. NYT는 “이번 재판은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진행됐고, 이는 국가 내의 인종 불평등에 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유색인종은 바이러스와 그에 따른 경제적 혼란에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비공화주의 백인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종 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개혁 지원에 대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미국 사회에 던진 숙제

이번 평결은 미국 각계와 해외 유명인사로부터도 환영을 받았다. 공화당 소속 래리 호건 메릴랜드주 지사는 “이제야 정의가 구현됐다. 이번 평결이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다주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팀 스콧 상원의원은 “이번 결과가 우리 사법 시스템의 진실성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심어줬지만 아직 할 일이 더 많다”고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오늘 평결을 환영한다”며 “플로이드 가족과 친구들에게 위로를 보낸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 여러 숙제를 안겼다. NYT는 “최근 발생한 단테 라이트 총살 사건을 보면, 흑인 미국인들에게 진정한 변화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플로이드에게 인정되지 않았던 정의가 모든 미국인에게 보장되도록 하는 데 전념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한다. 진정한 정의는 평결 이상이어야 한다”며 미국 사법 시스템 개혁을 촉구했다.

반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조지아주처럼 공화당이 이끄는 지역에서는 투표권을 줄이고 경찰을 보호하는 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비영리 시민단체 ‘컬러오브체인지’ 라사드 로빈슨 대표는 “플로이드의 죽음은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변화가 얼마나 지속할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