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확장 지향의 대학 정책이 필요하다

2021. 4. 2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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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지난 몇 년간 신남방 협력 차원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정책 전문가 그룹을 만나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산업화의 중간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의 정책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고등교육과 기술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일찍이 산업화의 단계 단계마다 고등교육과 기술혁신의 요람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우리나라 대학에 지금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2020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대한민국의 지속적 번영을 이끌기 위해 대학 발전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도 지금 대학의 수를 줄이는 정책만 추진되고 있다.

이런 축소 지향의 소극적 대학 정책을 확장 지향의 적극적 대학 정책으로 신속히 전환하지 않으면 조만간 한국 사회가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학 진학 인구 감소에 맞춰 정원과 대학 수를 축소하는 소극적 정책은 첨단지식과 고도기술이 이끌어갈 미래 사회에 대한 대비 능력을 약화시킨다. 둘째, 이런 축소 지향 정책은 청년세대를 위한 수준 높은 고등교육과 고용 기회를 감소시키고, 그 결과 결혼과 출산의 경제적 조건도 악화시킨다. 셋째, 축소 지향 정책은 지방 소재 대학들에 집중되고, 그에 따라 지역 경제 황폐화와 수도권 집중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넷째, 시간이 갈수록 인구·대학·지역 소멸 과정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최종적으로는 국가의 왜소화와 존립 기반 약화를 초래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세 가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대학생 연령은 만 18~21세라는 고정관념이다. 이 같은 연령대 구분은 현재의 100세 장수 시대와 탈산업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 대학이 젊은이부터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평생교육을 실현하는 곳으로 확장되고 재설계돼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대학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전공 구조라는 고정관념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근대 대학들이 설립된 이후 오늘날까지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의 분류 체계와 다양한 전공 분야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급격한 지식 변화와 기술적·산업적 변화 속에서 적합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따라서 모든 학문과 전공을 서로 연결하는 매트릭스 구조 속에서 다양한 학문적 융복합과 새로운 전공의 생성이 가능하도록 하는 대학 내부의 유연화가 필요하다.

셋째, 대학 교육 수혜자는 국가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국적자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대학 교육은 특정 국가의 민족 정체성 외에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우리 대학 문호를 더 넓게 개방해야 한다. 공적개발원조도 적극 활용하고 대면 교육과 비대면 교육을 적절히 결합해 동남아를 비롯한 개도국과의 국제 협력을 증진해나가야 한다.

이 세 가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초저출산의 악조건 속에서도 학생 인구와 대학 교육의 영역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 나아가 청년·지역·국가의 미래를 확고히 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 다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모든 대학이 부실 대학 정리를 포함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개혁을 추진하고, 학생과 국민의 다양한 학습 요구에 부응해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의 자기 혁신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적극적 대학재정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투자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이고 사적 투자 비중은 0.4%인데 반해 한국은 각각 0.6% 대 1.0%로 나타난다.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대대적 대학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현재의 11조원대 고등교육 예산에 추가해 연간 1조~2조원의 예산을 더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의 자기 혁신과 정부의 재정 혁신을 통해 확장 지향적 대학 혁신을 추진해간다면 저출산에서 시작해 대학·지역·국가의 축소로 귀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대학 정책은 축소 지향에서 벗어나 조속히 확대 지향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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