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성훈 (4) 어학 시험 불합격.. 아내와 함께할 유학계획에 차질

양한주 2021. 4.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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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간 후 처음 1년간 생활은 한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일에 오기 전에 반년 정도 한국에서 만나다가 독일에 와선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를 이어갔다.

아내가 유학 준비를 마치고 독일에 오기까지 1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우연히 독일에서 알게 된 장우형 박사가 나에게 한국교회를 위해 파이프오르간 제작을 공부해보라고 제안했던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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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입학과정인 어학 공부 뒤로한 채
유학생과 1.5세들에게 한국문화 가르쳐
학생비자 끝나가는데 대학 입학 길 막혀
홍성훈 파이프오르간 제작 장인이 1989년 8월 독일 하민켈른 딩덴에서 열린 클라우젠호프 한독가정세미나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봉산탈춤을 추고 있다.

독일에 간 후 처음 1년간 생활은 한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년 후 어학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선 공부에 집중해야 했지만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1.5세들에게 탈춤과 사물놀이 등 한국문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문이 나면서 재독 교포들이 자녀들을 가르쳐 달라며 연락을 해왔다. 1987년 여름부터는 방학마다 ‘클라우젠호프’라는 현지 교회 단체가 주최하는 ‘한독가정세미나’에 매년 강사로 초청됐다.

당시는 60년대 독일에 일하러 가서 정착한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의 자녀들이 성장해 10·20대가 됐던 때였다. 아이들은 독일인처럼 독일어를 유창하게 했지만 정작 부모님과는 문화가 다르고 대화가 잘 안 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나는 장구채를 쥐여줬다. 탈춤과 노래를 들려주며 함께 춤을 췄다. 한국의 문화를 구구절절 설명해 주기보다는 그저 한국의 춤과 소리를 직접 알려줬을 뿐이었다.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국악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우리의 소리를 좋아했다. 한 아이는 서툰 한국어로 “장구소리만 들으면 피가 끓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음식도 함께 해 먹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독일에 계속 살더라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고 스스로 자존감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독일인들도 아이들을 더 존중할 거라고 여겼다.

실제로 우리 문화를 알아갈수록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당당해졌고 방황하던 아이들도 올바른 길로 돌아왔다. 300여명의 아이들에게 크고 작게 영향을 미쳤다.

86년 12월엔 아내와 결혼을 했다. 아내는 국내 유수의 음대를 졸업한 플루티스트였다. 독일에 오기 전에 반년 정도 한국에서 만나다가 독일에 와선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를 이어갔다. 결국 아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듬해 3월 아내도 독일에 와서 함께 유학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대학에 정식으로 입학하려면 치러야 하는 어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기타 레슨도 꾸준히 받고 있었지만, 시험에 떨어지면서 하려던 기타 공부도 접어야만 했다.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학생비자도 끝나 한국에 돌아가야만 했다. 아내가 유학 준비를 마치고 독일에 오기까지 1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유학 가면 적어도 박사학위를 받아와야 금의환향이라는 강박감이 있었다. 어떻게든 독일에 남아야 했다.

그때 우연히 독일에서 알게 된 장우형 박사가 나에게 한국교회를 위해 파이프오르간 제작을 공부해보라고 제안했던 것이 떠올랐다. 선명회어린이합창단(현 월드비전어린이합창단)을 설립한 장수철 박사의 아들인 장 박사는 당시 독일에서 음악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1년간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렸던 내가 다시 장 박사를 찾아갔다.

정리=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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