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 삼발이가 누비는 동네, 서울 필동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필동. 충무로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명동, 동쪽으로는 장충동, 북쪽으로는 예장동 그리고 남쪽으로는 남산과 맞닿은 동네다. 동네에는 동국대학교, 남산한옥마을, 한국의 집, 리라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다.
동명에 ‘붓 필筆’이 있어 예로부터 붓을 만드는 동네일까 생각해 보지만 필동은 붓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조선 시대 한성부의 5부 중 하나인 남부 관청의 부사무소가 있어 원래 ‘부동部洞’이라 부르다 이것이 ‘붓골’이 되고 이 붓골의 한자어 표기로 ‘필동筆洞’이 되었다. 필동은 남산과 뗄 수 없는 관계다. 1998년에 남산 자락에 문을 연 한옥마을은 조선 시대부터 맑은 물 흐르는 산골짜기에 천우각이 있어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난 곳이었다. 청학이 사는 선향이라 하여 청학동이라 불렀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다워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으로 손꼽혔다. 이곳에 한옥마을이 들어서면서 다시 물이 흐르게 하고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고 사대부가부터 평민가까지 전통 한옥 다섯 채를 옮겨 놓았다. 철종의 부마 박영효의 관훈동 저택,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의 친가인 해풍 부원군 윤택영의 제기동 대저택, 구한말 오위장 김영춘 가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등이 건축 당시 모습으로 모여 있다. 한옥에는 사랑채, 안채, 행랑채, 재사 등이 있고 그 안에 물품까지 그대로 재연했다. 한옥마을에는 타임캡슐 광장이 있다. 서울 정도 600년이던 1994년 11월29일 당시의 시민 생활상과 서울시 모습을 대표하는 문물 600여 점을 캡슐에 넣고 묻었다. 개봉 예정은 서울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 11월29일이다. 앞으로도 373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또 하나 필동의 시그니처로는 ‘삼발이’가 있다. 삼륜 오토바이인 삼발이는 지게차와 함께 필동의 골목, 특히 인쇄 골목을 그야말로 누비고 다닌다. 삼발이에는 종이, 인쇄물이 가득하고 이 물품들은 후가공을 위해 각처로 운송된다. 필동에 인쇄 업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이곳에 자리한 영화사에 필요한 영화 포스터, 전단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인쇄가 이제는 영화사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여전히 필동을 상징하고 있다. 이 지역과 인쇄의 연관성은 600여 년 전이다. 조선 건국과 함께 국가에서 필요한 각종 서적 인쇄를 총괄하던 주자소를 지금의 남산스퀘어 빌딩 자리에 세웠다. 당시부터 인쇄에 관련된 이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니 필동과 인쇄는 필연인 모양이다.
동국대학교 후문 입구부터는 서애길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 선조 때의 명재상 유성룡이 태어난 곳이 이 근방이라 서애길을 만들어 거리와 상점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스트리트 뮤지엄이 자리한 예술통길 벽화, 조형물, 공연,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또 충무로 지하철 역에는 ‘오! 재미동’ 문화 공간이 숨어 있다. 영화관, 갤러리, 영화 자료와 책도 대여해 읽을 수 있어 이 지역이 ‘충무로’로 상징되던 영화의 메카였음을 인증한다. 1958년에 개관한 대한극장은 앞에는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진양상가가 있다. 지금은 낡은 느낌이지만 완공 당시에는 엘리베이터, 중앙 난방 등을 갖춘 최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였다. 진양상가 바로 옆에는 폭 2m, 길이 200m의 인현시장이 있다. 120여 가게가 들어선 이 시장에는 10년은 보통이고 50년에 육박하는 이력의 가게들이 지금도 여전히 맛과 멋을 자랑한다. 생선구이집 ‘잊지마’, ‘통나무집’, ‘진미네 식당’ 등은 젊은 세대들의 SNS 인증 코스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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