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균 칼럼] 산업 지원? '반기업'부터 벗어나야

임상균 2021. 4. 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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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든 나라는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이다. 하지만 영국은 내놓을 만한 자동차 회사가 없다.

영국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실패자로 남게 된 이유로 1865년에 만들어진 ‘붉은 깃발법’이 자주 거론된다. 증기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6.43㎞로, 도심에서는 3.2㎞로 제한했다. 차량 60야드 앞에는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앞서 이동해야 하고 이 사람의 신호에 맞춰 차량은 정지해야 한다는 규제도 담았다.

자동차 속도를 사람의 도보 수준으로 제한했던 이유는 새로운 기술 혁명으로 설 땅을 잃게 된 마차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마차꾼들이 정치인과 왕실에 실력을 행사해 마차보다 느리게 가는 자동차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자동차 산업 주도권은 독일, 프랑스, 미국으로 넘어가버렸다. 정치와 규제가 산업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15일 청와대로 주력 산업 대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거 불러들였다. 반도체, 배터리 등 산업 지원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속내는 격화하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 정부도 ‘뭔가 했다’는 표시를 내려는 의도가 컸다.

반도체 품귀는 작년부터 예고됐고, 올 연초 이후 현실화했다. 국내에서도 현대차·GM 등이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공장을 여러 차례 멈춰야 했다. 이리되자 미·중·유럽 등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포함한 수백조원대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칩과 웨이퍼를 흔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수출의 20%를 반도체에 의존하는 우리의 정부는 뭐하고 있냐”는 비난이 빗발치자 부랴부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급조하다 보니 콘텐츠는 보잘것없었다. 문 대통령 발언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우리가 계속 주도해나가야 한다”는 ‘공자 말씀’이 핵심이었다. 산업부 대책은 ‘K-반도체 벨트 전략’ ‘배터리 산업 발전 전략’ 등을 올 상반기 중에 내놓겠다는 게 골자였다. 당장 총알이 부족하고, 부상병이 속출하는 가운데 힘겹게 전쟁에서 버티고 있는데 이제 와서 “군수공장과 훈련소, 병원을 지을 계획을 곧 마련하겠다”는 허망한 말만 늘어놓은 꼴이다. 이미 수개월간 펼쳐진 전쟁을 보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문 정권에서 보여준 ‘반기업적’ 행태를 돌이켜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기업 혼냈다”고 자랑하는 인물을 4년간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핵심 요직에 중용하던 정권이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에 오른 것은 협력업체를 쥐어짰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하던 의원은 여당 당대표 후보에 올라 있다. 그는 삼성전자 순이익 20조원을 200만명한테 1000만원씩 나눠줄 수 있다는 반시장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문 정권은 돈 많이 버는 대기업 이익을 빼앗아 코로나 피해 계층에게 나눠 주자는 ‘코로나 이익 공유’까지 추진하고 있다. 민간의 거센 반발에도 기어코 ‘기업규제 3법’을 통과시켰고,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대표이사가 징역형을 받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만들었다. 국민들이 노후자금을 맡겨놨더니 그 돈으로 기업 총수를 퇴진시키겠다고 나선다.

이 정도면 문재인정부에서 우리 기업과 기업인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놓고 문 대통령은 “기업과 정부는 한 몸”이라고 한다.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반기업적’ 행태부터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안 그러면 우리 주력 산업이 조만간 영국 자동차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5호 (2021.04.21~2021.04.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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