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스토킹, 그 섬뜩한 범죄
관련법 발의 22년 만에 통과… 가해자 처벌보다 피해자 보호 시급
피해자 동의 없이 처벌 가능하게 서둘러 제도 보완에 나서야
살인으로까지 이어져 참혹
서둘렀다면 살릴 수 있었던 세 모녀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지난해 11월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남자였다. 오프라인 소모임에서 세 번 만난 게 전부였다. 싫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도무지 먹히지 않았다. 지난 1월 그놈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사귀고 싶다며 자꾸만 연락을 해왔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집 근처에서 검은 패딩을 입은 그놈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톡방에 무심코 올린 사진 속 택배 운송장을 보고 집 주소를 알았다고 했다. 어디선가 그놈이 나타날까 봐 무서웠다. 지난달 23일 외출했다 돌아오니 그놈이 집에 들어와 있었다. 섬뜩했다. 엄마와 여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보냈어.”
김태현은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여자가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연락이 닿지 않자 결심했다. 인터넷으로 사람 빨리 죽이는 법을 검색했다. 가게에서 흉기를 훔쳤다. 택배기사로 가장했다. 집에는 여자의 여동생이 혼자 있었다. 의심한 여동생이 물건을 밖에 놓고 가라고 했다. 김태현은 집요하게 기다렸다. 얼마 후 문이 열리자 뒤따라 들어갔다. 몇 시간 후 여자의 엄마가 들어왔다. 그리고 여자가 왔다. 김태현은 세 여성을 차례로 잔인하게 죽였다. 그러고는 3일 동안 시신과 함께 같은 집에 머물렀다. 거기서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사이코패스나 다름없었다.
스토킹 피해자인 큰딸은 가장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다. 밝고 주변을 걱정하는 착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세 모녀가 같이 살았다. 넉넉하진 않지만 화목했던 가정이 한 스토커의 극단적 행동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김태현은 피해자를 죽여서라도 소유하고자 했다. 최악의 스토킹 범죄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전에 경찰에 신고했다면 김태현은 처벌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세 모녀가 세상을 뜬 다음 날에야 스토킹은 비로소 중범죄로 인정받았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됐으나 지난 3월 24일에야 비로소 국회를 통과했다. 무려 22년이 걸렸다. 그동안은 경범죄로 10만원 벌금형에 그쳤다. 노상방뇨와 같은 수준이다. 오는 9월 법이 시행되면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스토킹은 당하는 입장에선 매우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 쫓아올까 계속 뒤를 봐야 하고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해진다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스토킹을 개인 간의 애정 문제로 가볍게 치부해 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같은 속담이 스토킹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법이 통과된 건 다행이지만 보완할 점이 수두룩하다. 스토킹 법은 피해자가 직접 피해 사실을 알리고 처벌을 원해야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러한가. 신고하면 너뿐 아니라 가족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의 협박 또는 한 번만 봐주면 다시는 안 하겠다는 회유도 있을 수 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 괴롭힘’이라는 규정도 모호하다. 김태현이 피해자를 스토킹 한 기간은 3개월 정도다. 신고로 이어졌다면 지속성과 반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영국은 피해자가 상대의 괴롭힘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두 번 이상 반복되면 스토킹으로 간주하고 처벌한다. 또한 데이트 상대방의 전과 기록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했다.
법에 피해자 보호 부분이 빠진 점도 문제다. 가해자 처벌보다 더 시급한 게 피해자 신변 보호다. 신고가 접수되면 우선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수사관이 필요하다. 성폭력 보호시설 등 쉼터에 스토킹 피해자가 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일본 등은 우리보다 20~30년 전 스토킹 법이 제정됐고 처벌 수위도 높다. 미 미시간주에선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대부분 피해자의 동의가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스토킹 범죄 대책이 실효성 있게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완하면 되는지에 대해서는 참고할 사례가 많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서둘렀다면 살릴 수 있었다. 우리 모두 ‘공범’이다. 혼자서 두 딸을 키우느라 힘들었을 엄마와 채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두 딸, 이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 믿고 AZ 접종… 돌아온 건 아내의 사지마비”
- “저걸 확!”…속 끓이는 ‘민폐 주차’, 없앨 수 있을까?
- “김태현의 ‘죄송’은 반성 아닙니다” 먹먹한 유족의 글
- “백신 모범? 성급한 파티”… 이스라엘·칠레·영국 교민 인터뷰
- 허사가 된 文의 통화…홍남기 “상반기 모더나 못들어와”
- “소중한 내 남편은 몰랐다” 정인이 양모 또 반성문
- 또 다시 ‘불매운동’…창사 이래 최대 위기 남양유업
- “성폭행 정당방위” 93세 아버지 때려 숨지게 한 여성 반전
- 대구FC 가혹행위 영상보니…알몸 기합에 “좋아 좋아”
- 고문으로 망가진 얼굴들… 끔찍한 미얀마 전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