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광주가 DMZ서 멀어 다행이다"

2021. 4. 2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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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총격으로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보고서는 "(당시 광주가 속했던) 전라남도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다행"이라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욱 폭발적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선 민주화를 외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시민들이 가장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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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해 특파원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총격으로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같은 날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선 ‘한국 상황 후속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이 작성됐다. 보고서는 “(당시 광주가 속했던) 전라남도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다행”이라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욱 폭발적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 날 만들어진 NSC의 다른 보고서에선 미국이 북한 도발을 막기 위해 중국에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미국 정부는 주중 미국대사인 레너드 우드코크에게 “한국 상황을 악용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중국이 저지해줄 것을 촉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밀해제된 두 건의 미국 정부 보고서는 5·18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한국에선 민주화를 외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시민들이 가장 중요했다. 또 미국이 나서 전두환 신군부를 막아주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정세 불안을 틈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제일 걱정했다. 미국은 북한 도발을 막기 위해 실제로 뛰기도 했다. 다행히 80년 5월에 북한의 무모한 행동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라는 한쪽 눈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보면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들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지금 시점에서도 필요한 잣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말 “새로운 대북정책 마련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혔다. 조만간 바이든 상표가 찍힌 새 대북정책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워싱턴에선 뜸만 오래 들였지, 낯익은 레퍼토리의 반복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미 사이엔 시각차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대북 제재 완화 문제다.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대북 제재 완화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여권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우회적으로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됐다.

하지만 미국의 책상 위에는 전 세계 지도가 놓여 있다. 북한 말고도 중국 러시아 이란 미얀마 베네수엘라 등이 지금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 북한에 제재 완화라는 특혜를 안길 가능성은 낮다. 제재라는 채찍의 약발이 전체적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뻗대는 국가에 제재 완화라는 선물을 덜컥 줄 경우 다른 불량국가들에 잘못된 신호를 줄 위험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선 “미국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다”는 의회 내 매파들의 비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제재에 동참했던 국가들이 발을 빼면서 촘촘해야 할 제재 그물망에 구멍이 커질 우려도 있다. 미국이 한국보다 팽창하는 중국을 더 의식하는 것도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낮게 만드는 요인이다.

시간도 문제다. 문재인정부의 임기는 1년밖에 안 남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는 3년9개월이나 남았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 일각에서 대북 제재 완화만 외치는 문재인정부에게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올 한 해는 상황 관리에만 전념하고, 새로운 대북정책은 한국의 차기 정부와 공조하겠다는 구상을 채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는 지금 북한 문제를 놓고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 같다. 시각차야 어쩔 수 없다지만, 41년 전처럼 그 피해를 한국만 입을까 그게 걱정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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