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歷知思志)] 과거(科擧)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은 독학으로 글공부하는 흑산도 청년 창대에게 이렇게 접근한다. 두 사람은 다른 세계의 스승이 되어 서로를 인정하고 벗이 된다. 갈등도 있다. 서자 출신인 창대는 과거시험을 통한 출세를 열망하지만, 정약전은 이를 안쓰러워하며 ‘다른 길’을 권한다.
정약전이 살았던 18세기 말~19세기 초 조선은 서울 집중화가 뚜렷해지던 시기였다. 1789년(정조 13년) 과거 급제자를 보면 당시 서울의 인구(18만 9153명)는 전국 인구(740만 3606명)의 2.6%에 불과한데, 급제자는 45.9%를 차지했다. 과거엔 퇴계학파·율곡학파 등 학맥을 중시했지만, 이 무렵에 이르면 ‘인 서울’이냐, 아니냐가 훨씬 중요해졌다.
그래서 흑산도 옆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정약용은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혹여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한양(漢陽) 근처에서 살며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사대부 집안의 법도이다…내가 지금은 죄인이 되어 너희를 시골에 숨어 살게 했지만, 앞으로 반드시 한양의 십 리 안에서 지내게 하겠다.…분노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먼 시골로 가버린다면 어리석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칠 뿐이다.” 그도 자식 문제에서는 현실과 타협하며 성공을 바라는 아버지였다. 이런 정약용의 편지를 창대가 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가재·붕어·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라지만, 그 위에는 ‘내 자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실학자도 넘지 못한 ‘벽’이었던 모양이다.
유성운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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