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퓨전 한복은 한복인가?
한복이 케이팝 스타들 덕분에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아이돌 가수들이 한복을 입고 찍은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한복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마침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서울디자인재단 공동주관으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케이팝×한복’을 주제로 전시가 열리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가 봤다. BTS, 청하, 지코, 오마이걸 등 케이팝 한류의 주역으로 꼽히는 여덟 팀이 실제 무대에서 입었던 한복을 보여주는 전시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신한류’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현장을 직접 감상해 보라는 홍보 문구에 끌려 잔뜩 기대를 품고 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스러웠다. 실망을 넘어 화가 났다. 무슨 전시를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했는지 어이가 없었다. 주제도, 맥락도 없이 그저 ‘무언가’를 걸친 마네킹을 늘어놓고는 그게 전부였다. 흰색 민머리의 마네킹 탓인지, 단순 나열식의 디스플레이 탓인지 순간적으로 1960년대 백화점에 들어온 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촌스러웠다. 전시 자체도, 의상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메시지도 없었다. 참여 디자이너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개별 작품에 대한 평을 할 생각은 없지만 전시된 의상들을 아무리 곱게 보려 해도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거나 한류 콘텐츠의 무한한 성장을 이끌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김영민 교수가 쓴 ‘공부란 무엇인가’ 중 ‘모순 없는 글쓰기’에서 ‘고래상어는 상어인가, 무표정도 표정인가, 무의미도 의미인가, 단절된 관계도 관계의 일종인가’를 자문하며 머리가 복잡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본다. 퓨전 한복은 한복인가?
얼마 전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왜곡 문제로 비난받다가 16부작 가운데 2회만 방영하고 전격 폐지됐다. 드라마 제작비 320억 원의 일부가 중국 자본이라는 설과 함께 중국의 문화공정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문화공정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드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문화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중 사례로 드는 것 중의 하나가 한복의 ‘한푸 논란’이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우리나라의 한복이 중국 명나라의 ‘한푸’를 당시 속국인 고려가 가져다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해에는 중국의 패션 스타일링 게임 ‘샤이닝니키’가 한국판 출시를 기념해 캐릭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의상에 한복 의상을 추가했다가 ‘한국 전통의상’이 아니라 ‘명나라의 한푸 혹은 조선족 고유의상’이라며 중국 유저들이 반발하자 한국 서비스를 중단했었다. 중국의 주장을 헛소리일 뿐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이 한복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면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그런 것으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한복을 ‘코리안 키모노‘라고 부르는 곳이 많은 게 현실이다. 아름다운 우리 한복이 분명히 우리의 전통 의상이라는 것을 만방에 알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퓨전한복으로는 안된다. 퓨전 한복도 한복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퓨전한복은 한복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현대적인 감성과 섞거나 한복의 소재를 사용해 만든 ‘한복스러운’ 의상을 말한다. 전통 한복을 외면하던 젊은이들이 현대적 감성의 퓨전 한복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행이며 특히 케이팝 스타들이 직접 퓨전한복을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복스러운 것이 한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강력한 주제가 있은 다음에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법이다. 전통한복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중국의 문화공정론이 대두되는 시점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할 일이다. 케이팝 스타들 무대의상을 늘어놓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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