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말고 '꿈을 그리는 작가'로 불러주세요

황인호 2021. 4. 20. 03: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최석원(21)씨는 자신을 "브릿지온 아르떼 소속 작가"라고 소개했다.

사람들은 최씨 이름 앞에 '자폐성 장애를 가진' 혹은 '발달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최씨 본인은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 뒤에 작가라는 말을 붙였다.

최 작가가 속한 브릿지온 아르떼(아르떼·Bridge on Arte)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 아래 밀알복지재단이 운영 중인 발달장애인 예술단이다.

진로 선택의 기로 앞에서 최 작가는 대부분 발달장애인이 그렇듯 장애인 직업훈련 시설에서 직업교육을 받고 햄버거 가게 주방 보조로 취직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브릿지온 아르떼' 소속 작가로 전시회 참여한 최석원씨
최석원 작가가 지난 7일 서울 강동구 아르떼 화실에서 작품 작업을 하다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이젤 위 그림은 ‘블록 색깔의 나라 이야기’라는 작품으로 일몰 시간 빌딩숲을 표현했다. 신석현 인턴기자


최석원(21)씨는 자신을 “브릿지온 아르떼 소속 작가”라고 소개했다. 사람들은 최씨 이름 앞에 ‘자폐성 장애를 가진’ 혹은 ‘발달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만 최씨 본인은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 뒤에 작가라는 말을 붙였다.

최 작가가 속한 브릿지온 아르떼(아르떼·Bridge on Arte)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 아래 밀알복지재단이 운영 중인 발달장애인 예술단이다. 이름에는 장애와 비장애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장애인을 부족한 사람이 아닌 고유한 개성과 재능을 가진 한 사람으로 봐 달라는 ‘아임 언 아티스트(I'm an Artist)’ 캠페인도 하고 있다. 최 작가는 1년 전 이곳에 합류했다. 지난 7일 서울 강동구 아르떼 화실에서 최 작가를 만났다.

최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는 “동물과 곤충 등 좋아하는 걸 스케치북에 그렸다”며 “엄마와 아쿠아리움에 갔던 일 등 좋았던 기억도 그림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그림은 최 작가에게 언어와 같았다. 자신이 상상하는 걸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따로 그림을 배우진 않았지만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타왔다. 고등학생 땐 발달장애인 사생대회에 나가 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진로 선택의 기로 앞에서 최 작가는 대부분 발달장애인이 그렇듯 장애인 직업훈련 시설에서 직업교육을 받고 햄버거 가게 주방 보조로 취직했다. 창의력을 요하는 예술 쪽 직업은 생각도 못했다.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대면 업무를 많이 줄였음에도 최 작가에겐 어려움이 따랐다. 결국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최 작가의 어머니 임은화(51)씨는 “그땐 정말 막막했다”며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께 절박하게 기도했다”고 말했다. 모태신앙인 임씨는 “학교 입학, 사춘기, 고등학교 진학, 진로 등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를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덧붙였다.

기도 덕분인지 최 작가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2019년 서울시와 한양대가 주최한 장애청소년 미술교육 지원 사업에 대상자로 최 작가가 선정된 것이다. 최 작가는 1주일에 한 번씩 한양대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최 작가에겐 첫 정식 미술 수업이었다. 이는 이듬해 최 작가가 아르떼 단원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최 작가는 아르떼 합류 이후 거의 매일 화실에 나와 4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최근 지난 1년간 작업해 온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아르떼 소속 작가들과 함께한 단체 전시회였지만 그의 작품도 10점이나 전시됐다. 자폐성 장애 특성상 사물을 바라볼 때 숲보단 나무에 초점을 두게 되는데 이게 오히려 최 작가만의 색깔이 됐다.

최 작가를 지도해 온 노재림 강사는 “아직 전문 재료에 대한 사용법은 능숙하지 못하지만 짧은 시간 최 작가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물에 대한 최 작가 본인만의 관점이 명확하다”며 “최 작가가 갖고 있는 순수함이 그림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전했다.

최 작가는 요즘 캔버스에 새로운 주제를 그리기 시작했다. 바로 가족이다. 단순 인물화가 아닌 가계도를 그린다. 임씨는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그리고 싶어 하는데 최근 가족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다”며 “석원이가 요즘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진 사랑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 작가는 “사랑하는 걸 계속 그리고 싶다”고 했다. 임씨는 “장애인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이룰 수 있는 과정이 비장애인에 비해 험난하다”며 “그럼에도 석원이 말처럼 본인이 즐거워하고 행복한 일을 열심히 꾸준히 하며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석원이 본인이 만족하면서 성장하는 작가, 그리고 주변으로 좋은 영향력을 주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