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2030의 슬픈 암호화폐 투자
젊은이의 절망·냉소·비관주의 내재
이판사판 위험 투자는 정책 실패 탓
# “요즘 매일 삼성전자 주가를 봅니다.”
지난 1월 하순에 만났던 국토교통부 고위 관료가 농담처럼 이런 말을 했다. 당시는 삼성전자 주가가 9만원대까지 오르며 ‘10만전자’ 얘기가 나올 때였다.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부가 왜 삼성전자 주가까지 신경 쓸까 잠시 의아했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 대응을 위해 풀린 돈이 증시 우량주에 몰리면 기업에 온기가 퍼져 실물경제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하면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 가격을 더 불안하게 할 수도 있어서다. 삼성전자 주가가 꾸준히 올라 넘쳐나는 시중자금을 계속 빨아들여 줬으면 하는 그의 다소 엉뚱한 바람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국토부 정책 당국자가 체크해야 할 게 더 늘었다. 이제는 증시 흐름뿐 아니라 암호화폐 시장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자금이 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더군요. 급등락하는 시세를 보면 정신이 없어요. 미친 것 같아요.”
최근 시험 삼아 소액으로 암호화폐인 도지코인 투자를 시작했다는 지인은 혀를 내둘렀다. 심할 때는 하루에 100% 넘게도 오르내리니 현기증이 날 만도 하다. 지난 16일 도지코인의 하루 거래대금이 17조원으로 코스피 거래대금을 넘어섰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애정을 담아 트윗을 몇 차례 날린 덕분에 도지코인 가격은 올 들어 6000% 가까이 폭등했다.
도지코인은 2013년 미국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의 패러디로 장난삼아 만든 암호화폐다. 도지코인 이미지도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일본 시바견의 사진과 영상인 밈과 비트코인을 합성해 만들었다. 놀이처럼 시작했고 딱히 쓸 데도 없는 도지코인이다. 그런데도 19일 현재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마켓캡에 시가총액 47조원으로 6위에 올라있다. 이날 하루 거래액이 26조원에 육박하니, 대략 하루에 절반 넘게 주인이 바뀌는 셈이다. 이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 “걱정 마. 우리 저기까지 갈 거잖아.”
판교 테크노밸리의 직장 문화를 생생하게 그려낸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의 젊은 소설가 장류진이 2030세대의 암호화폐 투자기를 담은 장편 『달까지 가자』를 냈다. ‘저기까지’는 소설 주인공이 달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달까지(to the moon)’는 암호화폐의 폭등을 기원하며 투자자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일론 머스크도 달을 향해 짖는 개의 그림을 트윗하기도 했다.
소설은 암호화폐 이더리움 투자에 뛰어든 ‘흙수저’ 3인방의 얘기다. 괜찮은 회사에 취업했지만 5평, 6평, 9평 원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처지. “누구든 좋은 걸, 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암호화폐는 세 주인공의 탈출구였다.
소설은 해피 엔딩이다. ‘떡상(시세 폭등)’과 ‘떡락(폭락)’을 지켜보며 ‘존버(힘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기)’한 끝에 투자에 성공한다. 장류진은 언론 인터뷰에서 “설탕 가루를 발라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기분이라도 좋으라고, 몸에 좋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자 모두가 ‘달까지’ 갈 수는 없다. 폭탄 돌리기 같은 장세에서 누군가는 마지막 폭탄을 떠안고 몸서리를 칠 것이다.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변동성이 큰 위험 투자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그저 교과서 같은 말씀으로 치부하기에 십상이다. 젊은 그들을 리스크에 둔감한 고위험 투자자로 만든 장본인은 기성세대요, 정책 당국이다. 특히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급등한 집값을 보며 절망한 2030 투자자는 어차피 이판사판, ‘모 아니면 도’와 같은 마음으로 불나방같이 투기판에 몰려들었다. 2030의 암호화폐 투자에서 이들의 깊은 절망과 냉소, 비관주의를 읽는다.
한때 ‘개천에서 용(龍) 나는’ 계층 이동성이 있는 사회가 화두였다. 교육이라는 계층 사다리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조국 전 장관은 2012년 SNS에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고 ‘10대 90 사회’가 되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줄었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가 말했던 ‘예쁘고 따뜻한 개천’을 만드는 데 문재인 정부는 실패했다. 예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개천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자기파괴적 열정에 휩싸여 달을 향해 슬픈 나래를 펴고 있다.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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