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지 새가 먼저냐" 반발 속 친환경 발전 올스톱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2021. 4. 20. 0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체 결정된 4대강 보 돌아보니
미얀마 근로자 희망 주는 미나리
보 열면 수위 낮아져 재배 어려워
환경단체 "보 철거해야 생명 회복"
정부 "보 해체 4~5년 이후 가능"

지난 15일 오후 1시 24분, 광주광역시 남구 영산강 승촌보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잠시 뒤 보의 수문이 열리자 콸콸 소리를 내며 강물이 보를 빠져나간다. 승촌보는 정부가 지난 1월 4대강 보의 해체 여부를 발표하면서 상시 개방 대상으로 결정했다.
산책을 나온 인근 주민 최 모(82) 씨에게 보 해체와 상시 개방 결정에 관해 묻자 "미친 짓이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밉다고 그러는 건데, 멀쩡한 보를 왜 건드리냐"고 말했다. 이 동네서 태어나 82년을 살았다는 그는 “자기들이 보가 생기기 전에 어땠는지 아나? 물이 없을 땐 개울이 되고 큰비가 오면 물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1. 미나리
정부가 상시 개방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승촌보에 물을 채워둔 사실이 의아했다. 영산강 보 해체를 주장해온 김도형 영산강살리기네트워크 사무총장은 “현재 승촌보는 5m 이상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 운영을 잘 아는 관계자가 “미나리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미나리꽝을 찾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릎 높이로 물이 찬 미나리꽝을 발견했다. 허리를 숙이고 일하는 세 명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말씀 좀 여쭤볼게요.”
“….”
한 젊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지만,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자세히 보니 외국인이다.
“전부 외국인입니까?”
“예, 다 외국인.”
“미나리꽝에 쓰는 물을 어디에서 끌어오나요?”
“몰라요. 미나리 많아요.”
더이상의 취재는 무리였다. 인근 지역 농민에게 물으니 “마을에 젊은이가 부족해 외국인 아니면 농사를 못 지을 판”이라고 말한다. 미얀마 등지에서 온다고 한다. 우리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 ‘미나리’에서 재미교포에게 빛이 된 미나리가 한국에선 외국인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4월 15일 오후 광주 영산강 승촌보 인근 미나리꽝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김대중 전남 나주 학산2리 이장은 “보를 개방하면 양수장이 물을 품지 못하는데 농민들은 다 죽으라는 거냐”며 “사람이 먼저지, 새가 먼저냐”고 언성을 높였다. 영산강과 금강의 보를 개방한 뒤 황새와 큰기러기 등이 관측됐다는 환경부 발표에 대한 반박이다.
그는 “겨울에는 미나리에 지하수를 충분히 뿌리지 않으면 얼어서 상품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농민들의 사정 때문에 겨울엔 승촌보 수위를 6m까지 높인다고 한다.

#2. 홍어
승촌보에서 영산강을 따라 하류로 차를 타고 30분가량 달리니 나주 죽산보가 나타난다. 해체하기로 한 시설이다. 주민 반발도 강하다. 양치권 영산강 뱃길복원 추진위원회 회장은 “ 보를 해체하면 예전처럼 도랑에 불과해진다”며 “보가 생기고 물이 깨끗해졌는데 수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될 일을 예산 낭비해가며 해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보를 개방한 뒤 수질이 개선됐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그런데 죽산보는 BOD 등이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나왔다. ‘보 개방 후 수질이 악화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환경부는 즉시 반박 자료를 냈다. 박미자 환경부 4대강 조사ㆍ평가단장은 “BOD 등은 보 개방뿐 아니라 강수량이나 오염물질 등 외부조건에 영향을 받는 수치며, 보 개방에 직접 영향을 받는 수질 지표들은 다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승용차로 17분 거리인 영산포 홍어거리에도 해체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홍어 맛집이 줄지어 선 거리에 들어서자 특유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죽산보 건설 후 수심이 깊어져 황포돛배가 다닌다. 영산포 등대와 더불어 지역 명물로 관광객 유치에 한몫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5일 전남 영산포 홍어거리에 영산강 죽산보 해체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최지현 광주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죽산보를 해체해야 생태계가 복원된다”며 “황포돛배는 하류로 옮겨서 운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 반대가 심하자 정부는 “주민이 동의할 때까지 기다려서 해체할 것”이라고 물러섰다. 환경부 관계자는 “죽산보를 해체하려면 최소한 4~5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경제성 평가 등을 조작해 보 해체라는 잘못된 결론을 냈다"고 비판했다.

금강 영산강 보 처리 방안

#3. MB
금강에서도 의견 대립이 심하다. 하류에 있는 백제보가 그나마 주민과 갈등이 가라앉은 상태다. 보에 이르는 금강 변에 비닐하우스가 가득하다.

왼쪽에 흐르는 금강 백제보 인근 제방 너머로 광활한 비닐하우스 지대가 형성됐다.

몇 년 전 농민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갑자기 지하수가 안 나왔다. 이유를 알아보니 백제보 수문을 개방해 수위가 낮아진 탓이었다. 물이 많이 필요한 수막 재배로 각종 작물을 길러 전국에 유통하는 마을로서는 충격이었다.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정부에서 비용을 대 50m 깊이의 지하수 시설 수백 곳을 설치하면서 반발이 진정됐다. 이길한 부여군 자왕리 이장은 "지하수를 충분히 확보하게 해준다면 수문 개방은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백제보에 관광객이 꽤 많이 온다'며 "부여의 발전을 위해서도 보를 해체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백제보에 가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금강새물결’ 석재 조형물이 눈에 띈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돌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지역 주민과 당국이 타협점을 찾으면서 백제보는 해체하지 않기로 결론 났다.

부여 백제보에 설치된 4대강 공사 기념 조형물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4. 소나무
금강을 거슬러 25km 정도 가면 공주보를 만난다. 지난 16일 오후 공주보에선 비가 내리는 가운데 포크레인과 트럭을 동원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보 시설은 철거로 결정됐지만 당장 보수가 필요해 이뤄지는 작업이다.

정부가 4대강 금강 공주보를 부분 해체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6일 오후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공주보에서 중장비를 이용,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공주보는 주민과 환경단체 사이에 대립이 가장 심각한 곳이다. 지난달 찾았을 땐 보 양쪽 난간에 찬성 측과 반대 측의 플래카드가 촘촘히 걸려 살벌한 분위기였다.

지난 3월 공주보 인근에 보 해체 찬반 단체의 플래카드가 가득 걸렸다.

정부는 공주보를 부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경기도 김포에서 자전거길로 왔다는 손 모 씨는 "오다 보니 강 오염이 심각하다"며 "보는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보 중 위쪽에 있는 세종보는 해체로 결론이 났다. 보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안내판에는 연간 12GWh의 전기를 생산해 소나무 250만 그루의 효과를 낸다고 적혀있다. 보 수문을 여는 실험으로 인해 수력발전소를 가동하지 못한다. 83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는 시설은 무용지물이 된 상태다.

2017년 가동이 중지된 세종보 친환경 수력발전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설명한다.

4대강보 전체의 전기생산량은 2억7000만 kWh로 소나무 5602만 그루의 효과를 낸다고 적혀있다. 다른 4개 보도 가동을 못 한다. 정부 결정대로라면 금강ㆍ영산강보는 더는 친환경 발전을 하지 못한다.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 중립’과 거꾸로 가는 셈이다. 2017년 보 수문을 개방하면서 수력발전 중단 우려가 나오자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발전 손실도 최소화하도록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공주보 등 4곳의 수력발전소는 2017년 세웠고 백제보도 2020년 전기생산을 중단했다.

정부가 보 해체를 발표했지만, 주민 반발에 "동의할 때까지 설득하겠다"고 물러섰다. 이번 정부에서 해체에 나서긴 힘든 상황으로 판단된다. 이런 어정쩡한 딜레마는 보 주변에서도 느껴진다. 보를 소개하는 게시판은 낡고 찢겨 나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게 많다.

누더기 상태로 방치된 금강보 홍보 게시판.


대조적으로 인근 시설에 비치된 홍보물들은 해체될 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독창성과 측우기의 과학성, 연기군의 상징인 제비와 금강 물결의 패턴을 상징하는 구조’(세종보)
‘봉황의 머리 및 여의주 형상을 적용하고 봉황의 힘찬 날갯짓을 정형화한 디자인’(공주보)
‘2000년을 흘러온 남도의 숨결, 새롭게 태어나는 영산강이 힘차게 굽이치는 기운을 형상화하여 디자인’(죽산보)

금강, 영산강 주변 곳곳에 비치된 홍보물엔 해체될 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내용이 실려있다. 죽산보, 승촌보는 영산강 8경으로 선정됐다.


각각 150억, 1051억, 599억원 들여 세운 세 개 보를 해체하는데 898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